글쓰기 모임 에세이
이 글은 제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Chromatography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사주에 많은 게 두 개가 있단다.
돈과 일.
돈과 돈 이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거나 내 사주에는 그게 흘러넘치다 못해 쌓아두고 살 정도라고 했다. 누가 봐도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버는 것 같은, 가성비가 한없이 떨어지는 소리로 들리는데, 엄마는 늘 그런 사주를 내게 전해주며 자랑스러워했다. 마치 아직 실체는커녕 찍어내지도 않은 돈이 엄마의 지갑으로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참고 1)
그러고 보면 돈이 끊길만하면 다시 돈이 들어오고. 없어질만하면 원래 벌던 것보다 더 많은 액수의 돈이 통장에 들어와 꽂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주가 그래서 그런 거라며 내 뒤에서 조용히 내가 건넨 봉투 안의 그것들을 세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치 이걸 기다렸노라는 듯 흥 가득한 콧노래를 돈 세는 소리에 착착 맞춰 부르면서.
그 점쟁이가 용하긴 용한가 보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은 내가 갑자기 경력에 비해 너무도 난이도 높은 일을 처음으로 떠맡았을 때였다. 일의 양을 생각만 해도 잠이 깰 정도로 일이 많았다. 그런데 참 희한하기도 하지. 용하네.라는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그 모든 일들이 원래 내 것인 것 마냥 걱실걱실 소화를 잘 해 내는 사람이 되어있곤 했다.
일 하나가 끝나면 돈이 쌓여있고, 또 일 하나가 끝나면 쌓인 돈은 금괴로 바뀌어있었다. 돈을 저만큼이나 쌓아뒀으니 이제 배나 두드리며 쓰는데 여생을 보내면 될걸. 나는 그 형체도 없는 일을 욕심내기 시작했다. 아마도 돈 따위는 시시했겠지. (참고 2)
여기 일 귀신 붙은 애 하나 있다는 소문은 참 빨리도 퍼졌다. 돈은 쓸 시간이 없어 덕분에 저절로 모였다. 나와는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던 일들 마저도 돈 냄새를 맡고 더 빨리 모였다. 그리고 내 주위는 일과 돈으로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여전히 나 대신 돈을 세느라 바빴고, 나는 그 돈을 다 세기 전에 또 다른 돈을 벌어들이느라 밤을 새웠다. 각자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시간을 기꺼이 쏟아붓는 낮과 밤들의 연속이었다.
즐거운 비명이 점점 절규에 가까워지기 시작할 때 즈음이 되어서야. 동화 속 주인공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끝나는 일이 나에게도 찾아오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활화산 마냥 타오르느라 바빴던 내가, 이제는 다 타오른 채 식어가는 숯이 되고 있음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모를 내 동력도, 엄마의 돈 세는 소리도. 함께 내 가슴과 귓가에서 꺼져갔다.
이걸 좀 넘겨줄 사람은 없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잠시만 숨을 두어 번만 크게 들이내쉴 동안 나 대신 들어줄 사람은 없을까. 찾고 또 찾아보았지만.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일의 크기는 한 사람분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내 일(Work)은 마치 보라색과 같았다.
한국어로는 보라색이지만 영어로는 Purple과 Violet으로 크게 나뉘는, 게다가 색깔마저도 다르지만 같은 단어인, 보라색.
한때 내게 일이 희열이었다면, 누군가에게는 마지못해 하는 것이었듯. 이제는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는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 능력을 감사하라고 하는 것만 같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태로 이고 지고 가야만 하는 그 무언가가 뒤엉켜버린 것이 이제 내겐 '일'이라는 단어에 담긴 이율배반적인 감정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미 너무도 지쳤고. 이 무거운 것을 내 모든 힘을 그러모아 던져버리고 싶지만. 또 언제였나 싶게 이런 무게를 자랑하며 다시 씩씩하게 메고 이 길을 걸어갈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이런 기분을 느꼈던 나를 또 원망하거나 어렸다며 등 뒤로 던져버린 채 또 좁은 시야로 살아가겠지. 단지 나는 이 보라색 베일을 쓴 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직도 배우고 있는. 나만의 보라색에 대한 정의를 지금 이 순간에도 내리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보라색.
보는 사람에 따라 이 색은 "맞는" 색깔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일지 모르지만. 결국엔 의견 차이만 존재하는 같은 단어 안의 다른 정의들일 뿐. 틀린 것은 없다. 내가 여태 보라색의 붉은 면만 보았지만, 이제서야 시퍼런 면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참고 1
관(관직)이 없어서 공무원은 못 하는 대신 그거 외엔 다 있다 그랬음. 부모님이 너어는 공무원을 해야 한다며 협박하실 때마다 저 말을 써먹었음. 근데 저 말도 정말 맞는 말은 아닌 게, 내가 월급 받는 것은 거의 세금에서 받는 것임.
참고 2
먹고사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음.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모든 직업들을 그만둔 것임. 오죽하면 엄마가 너는 무인도에 가서도 호텔 짓고 살 사람이라고 했었음. 그리고 어차피 평생 일할 거. 꼭 하나의 직업만 가지라는 법도 없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거지.
추신.
예약을 걸어놓은 글이기 때문에. 지금 상태와 매우 다를 수 있음 주의. 우디르급으로 감정이 변화하는 인간이라.
추신2.
크로마토그래피는 현재 두 반으로 운영되는데 1반과 2반의 성격이 매우 달라서 신기하다. 저번에는 1반의 성격에 맞게 글을 써 보았고 이번에는 2반과 유사하게.
[이 글의 TMI]
1. 보스가 잠을 안 자고 데이터 미팅에 참여한다면. 차라리 재우세요. 뭔 말을 해도 못 알아먹음.
2. 내 기준 보라색은 라벤더 보라색임. 그래서 늘 라벤더색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음.
3. 봄 뮤트톤임.
4. 사실 봄뮤트가 뭔지 모름. 내가 아는 뮤트는 말라뮤트에서 멈춤.
5. 더위를 잘 안 타서 한여름에도 얇은 긴팔 티셔츠 잘 입고 다님.
6. 물론 엄마한테 등짝 .
7. 라면 두개 못 먹음. 비빔면도 두개 못 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