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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31. 2021

핸디캡을 가지고 살아가기, 그것도 멋지게

책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리뷰

무엇이 그리도 두려워 그들을 막은 것일까.
세상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인 오스틴

여자들의 삶은 남자들 삶의 감춰진 진실이야. 유색인들의 삶은 백인들 삶의 감춰진 진실이다. 부자들의 감춰진 진실은 그들이 그 돈을 누구에게서 어떻게 가져갔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다-메리 메카시

나는 모든 이의 삶이 완전한 자유이기를 소망한다-시몬 드 보부아르

믿기 어렵지만. 한때 이혼이라는 타이틀이 누군가의 인생을 막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여자일 경우에는 더더욱 심하던 시절이 있었죠. 물론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 시절에는 아예 금기시되는 것이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네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결혼보다도 더 떠들썩했던 이혼을 경험한 여자입니다.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길 선택했지만. 생활고와 그녀의 전부였을 두 아들은 그녀를 다시 전장에 나타나야만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금기시되던 이혼이라는 타이틀을 당당히 달고서 말입니다. 아니 뗄 수 없었던 채로 말입니다.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고 하죠.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았고, 통째로 편집을 당하는 굴욕도 겪어야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현실 속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에서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오스카 여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다시 한번 사회로 밀어 넣었던 두 아들에게도 감사를 잊지 않는, 너무도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 후에도 그녀의 행보는 참 인상 깊습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다음 작품을 향한 노력을 계속하죠.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며. 겸손함까지 갖춘 말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책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을 읽으면서. 저는 이상하게 윤여정 언니(멋있으면 다 언니임)의 생애에 대한 고통과 힘듦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예전에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글을 쓰지 못하게 하거나 그녀들의 작품을 까내리는 방법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 두 권에서는 여자들이. 그러니까 타고난 핸디캡을 가진 예술가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놓았습니다. 읽는 내내 놀라웠습니다. 화가 날 때도 있었고 그 핸디캡 따위는 코웃음치며 제끼는 원조 걸크러시 격의 작가들을 보며 손뼉을 칠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글 쓰는 여자들의 공간]에서는 그녀들의 일터였던 작업실의 모습 또한 담고 있어, 마치 비밀의 화원에서 책을 읽는 내내 길을 잃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글은 어떤 의미였는가. ;왜 글을 써야만 했는가. 
사진출처:허핑턴 포스트/어머 얘 이거 진짜 내 이름인 거잖아. 나 너무 놀랬어.
우선, 예술을 하지 못하게 공식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공식적인 금지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빈곤과 여가시간 부족은 예술 활동을 방해하는 강력한 원인이다. 

집은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다. 

의욕 꺾기는 여자들이 뭔가를 배우려들 때 포기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행위이며 여전히 만연해있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 해-윤여정

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어딘가 고상해 보이고. 또 어딘가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글의 연장 선상에 있는 독서 역시 아직까지는 신선놀음에 가까운 취미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기에. 선뜻 다가가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덕분에 작가라는 사람들에 대한 아우라, 혹은 신비감이 더 커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늘 고상할 것만 같은 작가들의 삶이 여자들에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더메치"(참고 1) 한 경우가 많았죠."여"작가들은 그녀들에게 주어지는 집안 일과 육아의 벽을 뚫고 남는 시간이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시대에는 가장 위대한 여자는 훌륭한 책을 쓴 여자가 아니라 훌륭한 아이를 가진 여자다.라는 말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시대였기에. 그 유리천장을 뚫고 갑갑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치열하게 글쓰기를 해야 했죠.


그것이 밥벌이로서의 의미였건. 자신을 드러내는 의미였건. 그녀들에게 글쓰기는 생존의 수단이었습니다. 그 수단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녀들에게는 숨 쉬고 있는 입과 코를 막는 의미와 비슷했던 거겠죠. 생존과 직결된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녀들의 글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단단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자답게 썼다"라는 이유로. 그녀들의 글은 늘 천대받고 과소평가받았습니다. 그녀들의 글 쓰는 의욕 자체를 꺾으려는 시도였던 것이죠.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그녀들의 글쓰기는 늘 반대되어 왔습니다.



그녀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걸크러시 쩌는 그녀들 덕에 우리가 있다.
글 쓰는 여자의 공간은 술술 잘 넘어가요. 그러니 가볍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쓴다. 성, 인종, 계급에서 부적절한 집단은 종종 적절한 가치, 즉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일하고, 요리조리 피하고, 심혈을 기울이고, 혹은 남몰래 하면서 모든 비공식적 금지 사항들을 뻔뻔하게 밀쳐낸다.

앞서 산 이들에 대한 기억이 묻혀 버릴 때,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정이 지속되고 각각의 여성 세대는 자신들이 모든 것을 처음 하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쓰고, 쓰고 또 써내렸죠. 주류 집단이었던 남성들은, 그런 여자들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폄하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그녀들의 작품 활동을 저렇게 막아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지금 들어봐야 헛웃음이 나오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말들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본보기를 잘라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 쓰는 여자들을 그대로 놔뒀다간. 우후죽순처럼 그녀 하나만을 보면서 다른 여자들도 글을 쓰기 시작할 테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남성들이 누렸던 특권들이 분산되거나, 자신들의 세력이 약해질 수도 있을 테니. 기를 쓰고 막았을 것입니다. 권력이 좋긴 좋나 봅니다.


저 역시 짧은 시간이지만 일을 해오면서. 주위에 여자 선배가 없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제게는 희생의 아이콘이었고. 저렇게는 절대 살지 않는다.라는 모델은 될 수 있었지만. 일터에 남아있는 버티는 법을 알려줄 수 있는 여자 선배들은 손에 겨우겨우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마저도 늘 제 곁을 떠나곤 했고요.


물론 희생이 숭고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너희의 원래 역할은 그것이다.라고 고정해 버린 사회에서는 절대 제 딸을 크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버티고 버티며 여기까지 왔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들이 원하는 "여자 직업"이 아닌,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도 너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는 것과.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 오로지 너의 몫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저는 반드시 제 딸에게 알려줄 셈입니다. (아직 결혼도 안 함 주의)


숱하게 자신의 인생을 바쳐 여자들도 기깔나는 글을 쓸 수 있음을 알려준 그녀들 역시.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각오를 하고 그 전쟁터에 뛰어든 것이겠지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게 남은 숙제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족적을 남길 것인가. 
사진 출처:에포크 타임스/뮤지컬 배우 정영주 님. 진짜 멋있음.ㅠ
최고의 복수는 글을 잘 쓰는 것이다-도로시 파커

죽이거나 죽는 것 외에도 방법이 있다. 살아내는 것이다.-크리스타 볼프 

본보기가 없으면 성취하기 힘들다. 맥락이 없으면 평가하기 어렵다. 동료가 없으면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직 당대의 여성 신인들만이 어떤 수치상에든 반영되므로, 여자는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까지 살아 있어야 할 만큼 비범해야 한다

면접을 볼 때였습니다. 충분히 입사 가능한 점수와 서류들이었죠. 가지고 온 볼펜으로 연신 머리를 긁적거리던 담당자는. 제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다 좋은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연봉을 좀 줄이거나 학위를 하나 더 따면 생각해 볼만 한데. 어때요? (참고 2)


그때의 저는 연이은 탈락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모아둔 돈은 점점 떨어져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월세조차 내지 못할만한 상황이기도 했죠. 나 하나 먹고살자 했으면 눈 딱 감고 그러겠다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딴 회사에 있어봐야 뭐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디에선가 저처럼 힘든 상황에서 다른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 버둥거리던 사람의 싹조차 나 때문에 잘라버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분명 제가 네.라고 해 버리면. 적어도 이 회사에서는 그런 선례가 되어버리겠죠. 그러면 지금의 저보다 더 떨고 있을 미래의 누군가는. 볼펜 없으면 머리도 못 긁는 저런 놈들이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어야 할 겁니다.


예전에도 누구 씨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연봉 줄여도 된다고 해서 돈을 좀 덜 받고 일을 했거든요... 생각 있어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서류와 가방을 챙겨 면접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당황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말이죠. 모든 것이 억울하고 짜증 나서 대낮부터 편의점에 앉아 맥주를 한 캔 까긴 했지만. 그래도 안되는 건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안 되는 거죠.


가끔 이렇게 세상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며 우리를 밖으로 밀어낼지도 모릅니다. 작은 개인 하나가 행하는 일 자체가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뿐인가요. 그 누구도 서럽지 않은 세상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죠.


그러나 그런 시도조차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안에 갇힌 채 살아야 했을 겁니다. 우리는 절대 뒤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올바른 길을 만드는 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죠. 비록 그것이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기약 없어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것이 글이건. 여자의 인생이건. 민주주의의건. 말입니다.


추신.

솔직히 면접 볼 때 남자친구 있어요? 같은 거지 같은 질문할 거면 차라리 AI 갖다 놨으면 좋겠다. 열받으면 부수기라도 하지.


참고 1.

아더메치=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일의 앞 글자만 딴 말. 60년대 유행어였다고 하고 영화 하녀에서 윤여정 배우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참고 2

저 말을 들었을 때 개가 말을 하네.라는 생각이 바로 떠올라서 사실 웃음 참느라 힘들었음.


[이 글의 TMI]

1. 5월의 마감이 시작되었고. 나는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지.

2. 요새 책장이 잘 안 넘어가는 책을 계속 잡는 듯. 다음 책도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3. 내일은 빙수를 먹을 예정.

4. 그리고 3만보를 걸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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