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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31. 2021

사이코 키우는 사회와 사람들

책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리뷰

이 글은 도서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스포일러를 약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TED 강연/미국의 Serial Killers

살인자.라는 단어와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제가 있다면. 상위권에 항상 랭크되는 것은 아마도 사이코패스. 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뉴스에 나오는 흉악 범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책에서도. 우리에게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살인자. 혹은 잔인한 범죄의 용의자, 연쇄 살인마. 희대의 살인마 정도가 되겠죠. 우리가 보통 성격이 미치도록 이상한 사람들에게도 저 shake it 사이코패스야.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아마도 미치광이 정도의 뜻을 가진 단어이기도 하겠네요.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는 이렇게 범죄자, 혹은 소름 끼치도록 위험한 사람들, 그것도 아니라면 매일 짖어대는 우리가 다니는 회사의 부장님 같은 성격 파탄자만 포함되어 있을까요. 불행히도 그렇지 않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고, 단지 형태와 정도만 다른 형태로 존재합니다. 바꿔 말하면.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무조건 범죄자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죠.



사이코패스인데 뇌과학자?
괴물의 심연이라는 책을 좀 다듬어서 이리도 자극적인 제목으로 책을 다시 냈음.

이 책의 저자는 제임스 팰런입니다. 사이코패스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 히스토리를 감옥에서 쓴 글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이고. 놀랍게도 그는 박사학위까지 있는 과학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박사를 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미쳐버렸겠지.라고 믿고 싶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죠. (참고 1)


어째서 사이코패스인데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박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언뜻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랬듯이. 저자 역시도 자신이 이상한, 그러니까 경계성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죠. 참으로 자신의 직업처럼 과학적인 계기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모든 실험에는 대조군(Control)이 필요합니다.(참고 2) 그래서 자신을 비롯한 가족의 뇌 사진을 찍어놓았죠. 비교하려고 하던 뇌사진은 모두 연쇄 살인마들에게서 가져온 것이었기 때문에. 당. 연. 히 자신의 것은 정상 일 것이라 그도 생각했습니다. 아니. 믿어 의심치 않았겠죠. 그러나 자신의 뇌 사진이 연쇄 살인마들의 뇌와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에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처음엔 저자 역시 이 모든 것을 부정했었습니다. 물론 저자 충분히 나쁜 놈이긴 했지만 살인도, 개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살아왔죠. 하지만 저자의 어머니가 알려준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자신의 뿌리, 그러니까 자신의 조상들 중 연쇄 살인마들이며 바람둥이들이 즐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흔이 다 된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죠.


사이코패스의 뇌는 쉽게 이야기하면 불이 꺼진 길거리와 비슷합니다. 무서움을 담당하는 부분과 감정을 처리하는 부분이 완전히 꺼져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겁도 별로 없고. 감정에 대한 반응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성장기를 책에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할애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인생을 통해 그가 아슬아슬하게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의 선을 넘나드는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이코패스는 태어나는가, 길러지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느 쪽인가. 
사진출처:구글 사이코패스 뇌과학자/ 제가 이거를 쥐를 상대로 찍어서 실험에 씁니다. 제 뇌도 찍고 싶은데 머리 크다고 안 해줌
세 개의 다리란, 안와 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 기능, 전사 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 신체적, 성적 학대였다

저자는 세 개의 다리 이론에서 말하는 것들 중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PET 및 fMRI 사진 결과 그의 뇌가 놀랍도록 사이코패스들의 결과와 비슷하다는 것이 책에도 그림으로 실려있죠.(참고 3) 그리고 그 원인이 된다고도 할 수 있는 전사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세 개의 다리 중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저자가 우리나라로 치자면 9시 뉴스에 뻔질나게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가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환경(Epigenetics, 후성 유전학)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쉽게 이야기하면 유전자는 우리를 벼랑 끝에 서 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벼랑 끝의 위험한 우리를 발로 뻥 차 버리는 것이 바로 환경입니다.


벼랑 끝의 그를 가만히 안아준 것은 바로 저자 부모님의 훈육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마치 그런 아들의 이상함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를 사랑과 헌신으로 돌보았고, 그 결과 아들은 물려받은 유전자를 고이 잠재우거나 아주 가끔만, 그것도 약하게 날뛰게 하는 사람으로 클 수 있었던 겁니다.


다시 말해 영화에서 주로 그리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사이코패스가 어릴 때부터 새를 죽인다던가. 하는 괴팍한 행동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 보니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생각났습니다. 어릴 적 가난했던 탓에 회비 등을 제때 내지 못해 담임으로부터 심한 말들을 많이 들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때 자신 안에 있던 악마가 눈을 떴다.라고 말했었죠.


물론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지만. 우리 모두는 어쩌면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떨어지는 게 더 빠르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사이코패스들에게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아닌지 역시 생각해 봐야 할 책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봐도 나는 그냥 이상한 애 인데.;그리고 나 역시 부모님께 감사한다. 
사진출처: 구글 셜록 홈스/I'm high functioning sociopath, with your number. 언제 들어도 명대사.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소시오패스 기질만 있고 사이코패스 기질은 없는가. 내 가족 중에는 이런 범죄 전력을 가졌거나 내가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학대의 흔적은 없는가. 등등.


저자가 부모님께 감사함을 돌렸듯이. 저 역시 이 과정에서 부모님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 안에서 조용하고 교묘하게 자라는 독버섯이 되려고 할 때마다. 부모님은 이를 알아채고 늘 저를 사랑으로 보듬어주셨죠. 저는 그들에게는 유혹적이고 매력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엇을 빼앗아가는 것 같은 소시오패스가 아닌. 그저 어릴 때부터 일을 너무 많이 해 사회에 지쳐버린 냉담하지만 불쌍한 딸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다 큰 딸을 안방에서 꼭 안고 주무시는 엄마.


경상도 남자답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지만 할 말을 한가득 적은 편지를 늘 엄마의 반찬과 함께 몰래 숨겨놓는 아빠. 그리고 낄끼빠빠 못하고 계속 안겨대는 스트릿 출신 강아지. 이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도 주위 사람들을 휘두르며 조용히 미소 짓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늘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는. 이런 소시오도 무너뜨릴 만큼 강합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에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말이라도 친절한 사람이 되시길.


희한하게도 뇌과학 책에서, 사람과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네요.



참고 1

멘탈이 그래도 좀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대학원 시절에 멘탈이 털려나가다 못해 바스러지는 걸 많이 경험했었음. 얼마나 멘탈 바사삭 상태였는지, 술도 못 먹는 애가 맥주를 여섯 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주말 이틀 내내 울기를 반복하는 나날들이었음.


참고 2

컨트롤 그룹(Control group)은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은 군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유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고 싶으면 컨트롤 그룹은 물만 마시거나 아무것도 마시지 않는 그룹을 말함. 말 그대로 우유를 마셨을 때와 일상생활에서 마시는 물을 마셨을 때 나타나는 차이를 보여주기 위함임. 이거 실험에 안 넣으면 욕먹기 딱 좋음. 그리고 보통 실험 못 하는 사람들이 이 그룹을 Dog 무시하다가 결과를 말아먹지.


참고 3

MRI와 X-ray 보는 법을 배우면 은근 재밌음. 비교도 할 수 있고 이게 이렇게 잘못되었군... 하면서 볼 수도 있는데 저 사진은 책에서 보자마자 소리 질렀음. 저자가 사실을 알고 나서 부정할 만 했음.


[이 글의 TMI]

1.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난 이 일을 너무 사랑하지.

2. 콩비지찌개 질리지도 않고 일주일째 잘만 먹네.

3. 아몬드를 에어 프라이기에 돌려서 먹으니까 바삭바삭해...... 뭔가 위험한 팁을 알아버린 것 같아..

4. 이번 주 책 겨우 두 권 읽음. 주말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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