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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31. 2021

결국은 우리의 머지 않은 미래

책 [타인의 미래]리뷰

오래간만에 재밌었다.

세상에는 아직 제가 읽지 않은 책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책들을 놓치는 것이 가끔은 허무할 때도 많습니다. 그 허무함과 안타까움은 제가 좋은 책을 늦게 만난 만큼 증폭되죠. 게다가 그 책이 제 스스로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멀리했던 분야의 책이면. 저의 아둔함에 더더욱 허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 멀리했던 분야의 책 중 하나는 SF 장르입니다.


한국에도 SF 소설. 혹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용기 내어 읽은 김초엽 작가의 최근 소설 역시 실망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내게 테드 창밖에 없다며 늘 독서 리스트 중 뒤에 위치하는 장르이긴 했죠. (참고 1)


그러다 이웃 아듈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정말 보기 좋게 제 선입견을 많이 날려준 책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아듈 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몇 개 있다. ;그래도 재미는 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톰 히들스턴은 여기서도 춤을 춘다. 근데 그것도 너무 잘 춤

SF 장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는 많은 이미지들이 오고 갑니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 장르 자체가 주는 기묘함을 선사할 수도 있죠. 그러나 이 책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부작용과 그림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작품은 [블랙 미러]와 영화 [하이-라이즈] 정도일 것 같습니다. 아예 몇 가지 에피소드들에서는 대놓고 이 작품들이 바로 연상되는 배경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기도 합니다. 두 작품 모두 현대 사회, 혹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보기 좋게 말살되는 인간성에 대해 그리고 있죠. 보고 있으면 답답함과 먹먹함이 가슴을 계속 메우는 것이 특징입니다.


덕분에 책 자체는 조금 우울합니다. 읽으면서도 성가실 정도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습니다. 기술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기반이 되기 때문에 더. 보는 내내 섬뜩할 정도로 아픈 이야기가 많아, 중간중간 책을 덮어야만 했죠.



점점 빠져든다. ;좋은 구성.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아라크네 이야기가 나오죠. 아라크네는 자신의 베짜는 솜씨를 과신해 신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녀의 무늬 넣는 솜씨는 신들마저도 감탄시켰지만 불경한 무늬를 짜 넣어 버린 덕에 결국 평생 베를 짜야 하는 운명의 거미가 되고 말죠. (참고 2)


저는 책을 읽는 내내 그런 화난 아라크네의 거미줄에 서서히 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드는 작은 챕터 세 개만 넘어가면. 그 뒤로는 모든 인물들이 절묘하게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책 자체의 구성이 저를 옥죄어오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죠. 결국 이 긴장감과 묘한 연결 덕에. 책을 집어 들었을 땐 반만 읽고 자겠어!!라고 당차게 소리쳤지만 결국 책을 모두 다 읽고 난 뒤에야 자리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매우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참고 3) 아주 간단한 트릭으로 뒤의 이야기들과 인물이 앞서 언급된 사람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센스도 눈에 띕니다.(물론 난 다 알아챔)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생각하는 시간마저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더군요.



과연 허구의 이야기일까. ;소설보다 소설 같은 현실의 이야기 
딱 이 색깔의 책임.

책은 2035년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제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낯설긴 하지만 현재의 모습을 절묘하게 따라가고 있는 미래를 책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때쯤 되면 진짜로 일어날법한 일을 책에서는 다루고 있죠. 이 소설이 가진 장점이 극대화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나 할까요.


미래.라는 단어에는 참 많은 꿈과 희망이 한없이 예쁘고 보송한 파스텔톤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그리고 있는 가까운 미래.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그 어떤 고통도 없어지지 않은 곳이죠. 오히려 기술의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그 기술을 일궈낸 사람들은 너무도 소외된 모습을 보입니다.


책 제목 역시 한몫합니다. 타인의 미래. 마치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미래처럼 말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 역시 그 미래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만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라고나 할까요. 제목의 진짜 의미를 깨닫는 순간. 정말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마무리합시다. ;오늘은 자야 한다. 자야만 한다. 그런데 이제 이미 틀렸지.

살다 보면. 참 많은 책을 읽게 될 거야. 아니. 읽게 되기를 바란다. 책이란 참 칼 같아서 예리하게 마음을 베어내는 책도 있을 거고. 톱날처럼 너를 서걱서걱 썰어내는 책도 만나게 될 수 있어. 하지만 너희가 진짜로 만났으면 하는 책은. 바로 뭉툭한 과도 같은 책이란다. 근거리에서 공격해 너희들을 공격한 사람의 눈과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책 말이다. 섬뜩함과 충격이 남아 너희가 얼마나 방심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책을 많이 만나기를 바란다.


어쩌면 중학생에게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문학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은 제가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서 더 와닿았습니다. 책 [동창생]을 만났을 때도 선생님의 그 말이 번뜩 떠올랐거든요.


이 소설 역시 매우 얇습니다. 읽기에는 부담이 없죠. 하지만 내용 자체는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때 마음 한 켠이 아파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SF 소설에서 뭐 기대할게 있겠어.라고 방심했던 제게는 더 치명상이었죠.


덕분에 책의 임팩트는 컸고. 읽고 나서 멍한 상태로 새벽 세 시까지 침대에 그냥 앉아있었습니다. 아마도 책에서 언급하는 문제들에 대한 걱정들이 제 마음속에 가득한 요즘이었기에 더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좋은 책이었습니다. 아듈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참고 1.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SF 작가라고 한다면 최애이긴 했지만. [타나토노트] 외에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참고 2

그 대결에서 아라크네는 잠시 가오가 육체를 지배하는 바람에 제우스의 밀회 장면을 멋들어지게 직물의 무늬로 짜 넣었음. 어린 나이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도 이건 아라크네가 선 세게 넘었다고 생각했음.


참고 3

He loves me 같은 구성을 좋아하긴 함. 아까 걔가 걔 더라. 이런 거. 복잡한 거 좋아하고 분절된 거 연결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딱 그랬음.



[이 글의 TMI]

1. 블랙 미러 중 가장 최애는 샌 주니 페로.

2. 망고를 끊고 아몬드에 중독되었다. 뭐 그냥 대충 먹지 진짜.아효.

3. 요새 최애는 운동하고 마시는 홍초 한 잔.

4. 회사 일이 너무 바쁘다. 울고 싶다 진짜.

5. 엄마 그림 그리고 싶어.라고 했더니 엄마가 그건 안 돼.라고 하셨음.

6. 왜? 어렸을 때 나 사생대회도 곧잘 나갔잖아? 하니까 나갈 수는 있지.라고 하심.

7. 이번 달 부모님 용돈은 없다.


#타인의미래 #도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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