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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06. 2022

양다리 걸친 과학자로 살아남기

책 [식물학자의 노트]

과거 장래희망의 대명사였던 과학자.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연구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조금은 동떨어져 보이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최근 발간된 [식물학자의 노트]의 저자 신혜우 작가님이죠.


작가님은 영국 왕립원예협회 보태니컬 아트 국제 전시회에서 세 번이나 금메달을 수상한 경험이 있을 만큼, 과학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꽤 이름을 날리고 계십니다.


과학이 그림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극과 극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그러나 저는 작가님이면서 동시에 이 식물학자님께 감사의 말씀을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음이, 그리고 제가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저의 미래의 모습도 언뜻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물이 주는 아름다움.;과학으로서도, 생명체로써도. 
사진출처:중앙일보/피부병 흔적까지 그렸습니다.
그러나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식물에서 특히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서양의 경우 초상화를 그릴 때 작가의 재량에 따라, 혹은 주는 돈에 따라 조금씩 각색해서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사람의 손으로 포샵을 한 초상화를 가질 수 있었죠. 그러나 동양의 경우(우리나라라고 한정하겠습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것 또한 어명인 경우가 많아 생긴 그대로를 그림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작가님이자 과학도인 저자의 일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초상 화가들이 했던 것처럼. 한 개체의 특징을 모두 담은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식물의 잎이 몇 개 인지, 뿌리와 줄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열매는 무슨 색인지 등등 식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도록 보정 없는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죠.


있는 대로 그린다.라는 인상 때문에 자칫 책이 딱딱하게 느껴질 것만 같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수목원이나 식물원에 온 것처럼 눈앞에서 식물들이 느껴질 듯 생생한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그림 그리기가 이렇게 예술적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죠.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존재라는 게 바로 이런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책에 그려진 모든 식물들을 알 수는 없지만, 작가님의 이야기와 함께 해서인지 페이지마다 피어있는 식물들은 조금 친근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큐레이션이 잘 된 누군가의 야생 정원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책은 참 많지만, 지구상의 유일한 생산자이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식물에 대한 책은 잘 없죠. 그런 비주류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매력적인 책입니다.



양다리 걸친 과학자로 살아남기. 
사진출처:트위터
저는 물을 대하는 식물의 모습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이 늘 풍족할 수는 없다고요. 때론 부족한 것을 잘 활용하면 장점이 되기도 하고, 넘치는 것이 때론 부족함만 못하기도 합니다. 부족하다면 채워질 때까지, 때가 올 때까지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하며 기다려야 하겠죠. 또 넘치게 있다면 그 또한 지혜롭게 조절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자연의 섭리 속에 살아가는 인간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요새는 대기업들도 글 쓰는 과학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을 자신이 공부를 해서,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까지 쉽게 풀어내 글로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생긴 것이죠. 비전공자들에게는 쉽게 교양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대기업들은 그만큼 친근하고 전문적인 이미지로 인해 부수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겠죠. 저 역시 백신에 대한 기본 지식을 쓴 글에서 노린 것이 딱 그것이니까요.


그러나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른 것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 시간이 남아 도네. 혹은 쟤는 과학적인 마인드가 없어.라는 말로 치부하기 딱 좋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발표를 해야 하거나, 혹은 글을 써서 계약을 성사해야 하는 경우가 오면 글 좀 써 본 사람 없냐며 회사에 수소문을 하는 웃픈 경우도 발생합니다. (참고 1)


나는 과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글쓰기는 필요 없어.


과학계에 종사하고 있으니 감정적인 반응은 끌어내면 안 돼.


글쓰기는 전통, 혹은 정통의 과학이 아니고 그런 거는 과학에서 변두리야.


라는 반응이 매우 흔합니다. 덕분에 열심히 일하고 퇴사나 정년퇴직을 한 뒤엔 연구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그저 손을 놓고 놀아야 하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하죠. (참고 2)


작가님은 한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묻어있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 역시 그림 그리는 것도. 과학에 대한 열정도 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식물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쪽으로는 예산도, 일자리도 없었을 거고. 결국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으셨겠죠. 주류가 아니라는 시선 또한 어느 정도는 감내하셨을 겁니다.


왜 연구 외의 딴 것들은 없다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인지. 새로운 분야와의 융합은 왜 아직도 힘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작가님 같은 분들 덕에 변화가 더 빨리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조금씩 과학 역시 접하기 힘든 것이라는 유리벽을 깰 때가 되었죠. 저 역시 제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작가님의 용기 있는 한 걸음이 책에서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작가님 응원합니다.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의 포맷;뭔가 배웠다.
버킷 리스트의 한 줄입니다. 제 책을 쓰는 것. 언제 되려나.
식물의 다양한 잎모양은 저마다 환경에 맞게 진화해온 산물입니다. 어떤 모양도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더 섬세하게 계산된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식물의 다양한 잎을 보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책은 어떤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이 식물이 가진 특징을 사람에게 빗대어 적용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미는 7년 동안 땅에 있다가 한 철 울고 갑니다. 우리도 매미처럼 그 따스한 한 여름을 위해 7년을 버팁니다. 이런 식이죠.


저도 만약 책을 쓸 기회가 온다고 가정했을 때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제일 편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식물을 다루지는 않으니 실험 방법이나 제가 쓰는 기계, 혹은 쥐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에 빗대어 쓰려고 했었죠.(참고 3)


이 책의 등장은 제게는 먼 훗날 나올(?) 제 책의 프로토타입 테스터와도 같았습니다. 덕분에(?) 이런 구성을 가진 과학교양서가 가진 단점을 발견할 수 있었죠.


책을 통틀어 위와 같은 어조를 고수하고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읽다 보면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눈에 빤히 보이는 지점이 생깁니다. 자칫 잘못하면 지루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죠. 저도 독서를 하면서 세 편의 에피소드까지 읽고 나서 '다 이런 구성인가?'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습니다.


또한 조금 더 과학자의 고뇌가 느껴지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책의 포인트가 식물에 약간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것이 반갑기도 하면서 과학자가 가진 힘듦에 대해 더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동물 쪽을 연구하는 "주류"과학자들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주류가 아닌 무언가를 한다는 건 언제나 결핍 속에서 산다는 것이니까요.



마치면서 

사실 저는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는 직업군 중 하나입니다. 식물이 아닌 사람을 포함한 동물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신약 개발과 가장 맞닿아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죠. 또한 면역체계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한 사람이라 시쳇말로 "굶어 죽을 일은 없는"직군에 속해있습니다.(대신 야근하다 죽을 수 있음 주의)


식물이라는, 어쩌면 과학계에서조차 비주류에 속한 것을 연구하는 와중에 또 다른 도전을 하는 선배 과학자의 모습에서. 그녀가 가진 우아한 집요함에 책을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언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생각도 들어 반갑기도 했고, 묵묵히 자신만의 일을 자신만의 신념으로 해나가는 한 사람의 노트 덕에 저는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것 또한 가끔 중요하겠지만. 내 신념대로 나는 얼마나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참고 1

어느 정도로 심각하냐면. 장모님 생신 축하 편지를 못 쓸 정도로 심각함. 맨날 딴짓(=독서) 하더니 이럴 때는 쓸모 있네.라는 말을 듣고 바로 이직함. 대필해 줄 사람 없어서 이제 어쩌나. 아련.


참고 2

생각보다 우리나라는 연구원의 수명이 짧음. 한 우물을 열심히 판 사람들이니 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연구 외의 모든 것을 모르기 때문에 금전적인 사기나 이런 것을 당하는 경우도 꽤 많음. 직업적인 성공이 삶의 성공과 직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음.




[이 글의 TMI]

1. 이 책 때문에 그림 다시 시작함.

2. 그리고 망하는 중.

3. 혼자 밥로스 놀이하는 중

4. 카페에서 그림 그리고 있으면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긴 함.

5. 한 꼬맹이가 추상화에요?라고 해서 다시 접기로 마음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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