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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14. 2022

오 캡틴, 마이 캡틴

책 [공감의 시대]리뷰

우리는 힘들 때 전화 한 통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삶이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의 그런 마음을 들킬까 봐. 혹은 그랬다가는 약점이라도 잡힐까 봐. 그저 짙어지는 밤과 아무것도 모르는 듯 고요한 달을 보며 울음을 삼킬 뿐이죠.


세상은 어쩜 이렇게 차가운지. 그에 비해 자신의 마음과 심장은 아직도 무엇을 그리 바라며 이렇게도 뜨거운지. 그 사이의 괴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는 왜 이리도 작고 또 무능력한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뜨거운 한숨 외엔 그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는 비참한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은, 그저 편의점 봉투에 담긴 차가운 음식들뿐인 날이 우리 모두에겐 가끔. 하지만 필연적으로 있는 법이죠.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다수 중 한 사람이라서 눈물이 절로 날 때가 있습니다. 못내 자신의 마음을 읊을 사람을 찾는 데 미련을 버리지 못해, 길고 긴 카톡 프로필을 괜스레 훑어보지만. 그런 날엔 카톡 친구 목록의 길이만큼이나 쓸쓸함과 공감의 부재로 인한 상처도 깊어지게 되죠.





사진출처:브런치 /조용히 못해?
공감이 동행으로 이어지려면 우선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분명히 경쟁도 우리 모습의 일부이지만, 인간은 경쟁만으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대뇌만 떠받들며 감정을 연약하고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비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쩜 이렇게도 내 맘 날같이 공감해 줄 이(참고 1)가 없을 때는 이 세계에서 배척당하는 느낌은 물론 우주 외톨이는 따놓은 당상일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 같았으면 엄마 아빠는 내 맘도 모른다며 방문이라도 쾅 닫겠지만. 그런 것조차 이제 철 지난 객기처럼 보일 나이가 우리 모두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언제든 그런 짓을 했다가는 등짝 스매싱을 당하는 것도 당연하겠죠.)


세상에 홀로 남은 둘도 없는 피해자 같을 때도 있지만. 우리 역시 공감에 있어서 만큼은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는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소싯적 무수히 쾅 하며 닫혔을 방문 너머의 부모님께는 더욱 그렇죠.


사람은 하나인데 양쪽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건. 공감의 부재가 결국 서로 간의 눈높이 차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재 헬조선이라 불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도 공감의 부재로 인한 갈등이 참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기성세대는 우리에게 노력이 부족하니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현재를 사는 MZ 세대에겐 토익 시험 접수비도 얼마인지 모를 그 기성세대들의 말이 어이가 없을 뿐인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 2)


사진출처:구글 Lifehack
원숭이들은 자기 자신의 작은 비눗방울 안에서 산다. 

우리는 사회적인 다리와 이기적인 다리라는 두 개의 다리로 걷는다.

누군가와 "공감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쉬운 쪽에 속합니다. 오히려 너무 남발해서 쓰는 단어 중 하나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는 것은 공감이 아닌 다른 형태의 것들일 때도 많습니다.


공감의 탈을 가장 자주 뒤집어쓰는 것은 [이해]입니다.


언뜻 보면 똑같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 비슷함 혹은 모호함 때문에 제대로 된 공감의 뜻을 알고 실행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주위에 조언을 해준답시고 소위 말하는 간섭을 하는 사람들도 공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쪽에 속하기 때문이죠.


만약 여러분이 바쁜 식당에 갔는데 합석을 해야만 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부대찌개를 방금 만난 사람과 나눠먹어야 했는데. 함께 밥을 먹은 상대방이 에이즈 환자였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마주 보고 밥을 먹었다고 가정했을 때 기분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찝찝하다.라고 말합니다.


공감과 이해는 그만큼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단어를 매우 혼동해서 쓰고 있죠. 제대로 된 공감의 뜻을 알지 못하고, 공감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 덕에. 이제 우리는 일터에도 소시오패스를 피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는 날이 온 셈이죠.



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우리는 모두 충분한 공감 능력을 갖추고 태어납니다. 공감 능력은 우리 종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주는데 기여했습니다. 이 타고난 습성이 무뎌지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이 타고난 능력을 불러낸 것은 어떤 사회에서도 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은 이 세계에서 석유보다 더 부족한 게 되었다.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화 [굿 윌 헌팅]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윌은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가슴으로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습니다. 덕분에 머리와 가슴 간의 끊어진 길에서 헤매는 인생을 살고 있었죠.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윌을 대신해 더 마음 아파하는 숀(로빈 윌리엄스) 덕에 윌은 끊어졌던 머리와 가슴의 길을 재정비 한 삶을 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와 진정한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아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야 할 때. 조언을 들어야 하는 사람만큼이나 마음이 아파야 합니다. 그런 마음에서 나온 충고가 아닌 이상에야. 모든 충고나 조언은 쓰레기에 불과한 셈입니다.


영화이긴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진정한 공감 만으로도 어제와 완벽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공감이 주는 큰 힘이 시쳇말처럼 사람 하나 살린 셈이죠.


물론 우리에게 그런 역할을 기꺼이 해 줄 사람이 쉽게 나타날 리도 없지만.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 또한 인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는 부정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중앙일보

한낱 글 하나로 제대로 된 공감을 배울 수는 없겠죠. 배운다 해도 여전히 세상은 우리의 심장을 얼릴 만큼 차가울 겁니다. 마치 내가 수단인지 목적인지도 알 수 없는 이 삶은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힐 것이고요.


그럼에도 우리 인간들은 서로의 불완전한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여,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리고 우리를 바꾸는 것은 거대한 그 무언가가 아니라. 나를, 혹은 서로를 들여다보는 눈빛. 혹은 네 잘못이 아니었다.라는 말 한마디일 뿐이니까요.


모든 것에 공감하며 내 상처인 것처럼 온갖 아픔을 끌어안을 필요는 없지만. 단 하나. 혹은 단 한 번의 공감이 우리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오늘따라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어둡고 추워 보인다면. 그 길의 한 귀퉁이에서 쓸쓸하고 눈물 나는 퇴근길을 맞이하고 있을 누군가가 마음에 그려진다면. 그 누군가를 위해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오늘도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메아리는 더 빨리. 그리고 더 명확하게 당신에게 돌아올 테니까요. 여러분이 공감을 필요로 할 바로 그 시점에 말입니다.



추신.

우리는 로빈 윌리엄스에게 어느 정도의 빚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정작 수많은 사람에겐 많은 구원의 손을 웃으며 내밀었지만. 그는 결국 자신만큼은 구원해내지도. 구원받지도 못했기 때문이죠.


천국에 도착한 그의 앞에 책상에 번쩍 올라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그를 마중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어리둥절함과 웃음과 감동이 이리저리 뒤섞여 마음의 눈물을 겨우 추스르고 있을 그의 어깨를 꼭 안아주며 당신이 겪은 모든 일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준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부디 그곳에서만큼은.


드러낼 수 없었던 마음을 실컷 털어놓으며 공감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준 만큼. 그리고 당신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준 만큼 말입니다.




참고 1

[내 마음을 아실 이]라는 시.


참고 2

영국에서 살다 왔는데 토익이 왜 950점이죠? 만점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던 면접관이 있었음. 나란 인간은 매우 되바라졌기 때문에 노홍철도 토익 만점이었지만 영어 못합니다. 토익 시험료가 얼마인지는 아시나요?라고 물었고. 그렇게 합격했음(?). 어째서.



[이 글의 TMI]

1. 다들 며칠만 더 참읍시다.ㅠ설날이 코앞입니다.

2. 시간이 없어서 40분 만에 쓰고 집에 간다.ㅠ

3. 독일어랑 달리기는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4. 점점 날씨가 좋아져서 산책 시간을 늘렸더니 꿀잠자서 너무 좋음.





#위아크 #이상한마음쓰기 #심리글쓰기 #심리모임 #공감의시대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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