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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an 06. 2022

너희들이 나보다 더 낫다.

연구원의 일상 에세이 

사육실에 있는 쥐는 어쩌면 저보다도 평온한 삶을 삽니다. 항온 항습 장치 아래에서 살아만 있어도, 멸균복을 입은 사람이 와서 직접 새 깔집이 들어 있는 집도 바꿔주고. 깨끗한 물도 주고. 새우깡 냄새가 나는 사료도 주죠. (참고 1)


동물 윤리라는 것도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실험도 불가합니다. 스트레스 받아 폐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은 향수는 물론 섬유 유연제도 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소리도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저희는 너희가 나보다 낫다고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평생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몸 하나 뉘일 방 하나 살 수 없는 MZ 세대이기에 더 그렇게 느끼곤 하죠.




대충 내가 쥐를 괴롭힌다는 뜻.

물론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해 주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렇게 비슷한 조건 속에서 자란 쥐들만이 저희에게 일정한 실험 결과를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험자의 입장에서는 쥐의 상태가 곧 제 실험의 결과이기에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처럼. 열심히 먹이고 키워놓은 뒤에 잡아먹기 위함 정도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쥐가 어느 정도 크고 비슷한 조건을 가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참고 2)는 이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던 관계가 바뀌기 시작하죠.


사람에 의해 실험 대상이 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제가 하는 실험은 쥐를 상대로 하는 실험들 중에서도 난이도가 좀 높은 편입니다. 수술 자체의 테크닉도 그러하지만. 수술 후에 쥐들을 반드시 살려 내는 것 까지가 실험의 일부이기에 마취약의 농도나 양을 조절하는 것에도 예민한 편입니다(참고 3)


일단 수술이 시작되면. 마치 외계인의 침공을 받은 것처럼. 쥐들은 제 손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쁩니다. 쥐들이라고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눈과 귀와 털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은 제게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들게 하기 충분합니다.


그러나 불쌍함 이란 감정 때문에 실험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제 손아귀를 요리조리 잘 피해 가는 쥐를 잡아 마취하고, 쥐에게는 정말 청천벽력 같다는 말 외에는 갖다 붙일 수 없는 일생일대의 수술을 한 다음 다시 집으로 돌려놓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쥐 실험할 때 제일 싫은 것 중 하나:항온 항습실에서 수술복 입고 일하기.

아직 마취가 완전히 깨지 않아 몽롱한 상태의 쥐를 조심히 손바닥에 올려 원래 있던 곳에 가져다 놓은 후, 다음 실험 쥐를 마취하는 그 잠깐 사이에 저는 늘 가슴 아프면서도 부끄러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분명 한 시간 정도(참고 4) 전 까지만 해도 함께 장난치고 놀던 친구가. 온몸에 이상한 냄새가 잔뜩 묻은 것도 모자라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돌아온 것이죠. 아직 수술 당하지(?) 않은 쥐들은 수술한 쥐 근처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낯선 냄새를 맡느라 망설이고. 두 번째엔 아까 같지 않은 친구 상태에 망설이지만. 자신의 친구임을 확신한 그 순간부터 나머지 쥐들은 마취 때문에 체온이 내려가 있는 친구를 자신의 몸으로 덮어주기 시작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닐 텐데. 앞다투어 그 친구를 보호해 주기 시작하죠. 짧고 작은 두 앞발을 활짝 펼쳐서.


분명 몇백 번도 더 본 장면인데. 저는 그 모습을 보면 반드시 울어버리고야 맙니다. 눈물 때문에 수술하는 동안 현미경을 볼 수 없는 것도 낭패이니, 얼른 안경을 벗고 눈물을 뻣뻣한 수술복으로 닦아내며, 다시 정신을 차리곤 합니다.



그렇게 터져버린 울음보는 수술 중 정신이 몽롱한 아까 그 쥐에게 약을 먹일 때 저를 기다려주지 않고 마음대로 더 터져버리곤 합니다. (참고 5)


자신의 친구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은 냄새를 풍기는 이상한 것이 불쑥 들어와 친구를 데려가는 것을 본 나머지 쥐들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미래인 것을 알아챈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친구가 사라진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최대한 다른 쥐들에게 보이지 않게 천으로 케이지를 덮어두긴 하지만. 쥐들의 눈까지 가릴 수는 없기에. 저는 그들의 눈에 박힌 감정을 기어코 읽어내고야 맙니다. 그들이 고개를 떨구는 것을 보면 저도 어쩐지 나쁜 짓을 한 것 마냥 부끄러운 마음이 함께 들기도 하죠.




쥐로 실험을 할 때는 그래도 조금 나은 편입니다.


가끔 비글로 실험을 할 때가 있는데 그땐 정말 정이 쌓여버려서 꾹꾹 참다가 몰래 펑펑 울고 들어온 적도 많기 때문입니다.(참고 6) 하지만 동물 실험은 제 연구주제에 숙명과 같기에 피할 수도, 그렇다고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없습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돈을 받고 이것 때문에 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이죠.


누군가가 제게 너는 이런 것에도 감정 이입을 하는 걸 보니 연구원 자격이 없다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라곤 합니다. 이제 동물 실험 따위 하지 말라며 화를 내주기를 기도할 때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도 그들 때문에 고통받지만, 사람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마음들을 배우는 시간을 맞이합니다. 무뎌질 법도 한데 그게 되지 않아 힘든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조용히 깔끔한 케이지 안에서 자신들의 미래도 모르고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쥐들을 보며. 저는 너희들이 나보다 낫다는 찬사를 보내는 것 외엔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뭐가 그들에게 최선인지 알 수 없지만. 제가 행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반드시 건네는 것이겠죠.


매일매일 저는 제가 키우는 쥐만큼이나, 겸손해지는 계기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 1

진짜 처음에 사육실에 들어가면 노래방 새우깡을 한 백 봉지 정도 뜯어놓은 것 같은 새우깡 냄새에 뒤덮이게 됨. 그러나 점점 익숙해지면 새우깡의 고소한 냄새보다 비릿한 냄새가 올라와서 머리 아플 때가 많음.


참고 2

보통 생후 6~8주의 쥐를 가장 많이 씀. 실험실마다 선호하는 성별이 있어 성별도 잘 맞춰야 함. 물론 섞어서 쓰는 곳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훨씬 많음.


참고 3

논외(?) 이긴 하지만 성형외과 등의 병원에 마취 전문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임. 마취 잘못하면 수술 자체가 잘못되는 것과 같음. 마취가 덜 되면 지옥이고 마취가 너무 많이 되면 영원히 눈을 못 뜨는 것임. 내 실험에도 마취제를 써야 하는데 실험할 때 유일하게 계산 체크를 세 번 이상 하는 부분이기도 함. 한 마리가 죽는다는 것 자체에 드는 돈은 둘째 치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한 마리 죽는다는 건 진짜 내 우주의 일부분이 없어지는 것과 같음.


참고 4

한 마리 수술하는데 드는 시간이 보통 30분~1시간임. 오늘 만약 내가 16마리의 수술을 해야 한다면? 아침에 들어가서 못 나오는 것임. 연구원은 안됩니다 여러분. 가만히 있으세요.


참고 5

마취 후 수술을 시작하면 잠깐 비는 시간이 있음. 그때 바이탈 체크하면서 방금 수술을 마치고 난 쥐에게 진통제를 먹이곤 함. 절대 자투리 시간이 남으면 안 됨. 그러면 진짜 다음날 실험실에서 나가야 되니까.


참고 6

그래서 보통 비글 실험할 때 집에 반려동물이 있는 사람은 제외하는 경우도 있음. 나는 서울에서는 키우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의 다 참여하긴 하는데 진짜 괴로움. 진지하게 너무 괴롭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임. 특히 여자들 경우에는 석사나 박사 때 동물 실험 관련 트라우마 비슷한 게 생겨서 취업할 때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케이스도 많음.



[이 글의 TMI]

1. 힘드네.

2. 실험에 걸리는 시간

=쥐 키우는 시간 두 달+실험 재료 준비 기간 2주+수술 후 대기 2주+대기 2주 후 본격 실험 최소 한 달+데이터 정리 무한대=쥐 죽으면 이 시간 다 날리는 거.=연구원들이 성격이 ㅈ같은 이유

3. 실험동물을 위한 위령제가 1년에 한 번~두 번 있음. 

4. 이렇기에 동물실험 들어가면 모두 예민해짐. 나도 그러함. 매일 동물실에서 살아야 함. 

5. 실험 중간에 물 못 먹음. 화장실 못 감. 나가려면 옷 다 벗고 다시 샤워하고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안 함. 

6. 진짜 이제 좀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안되더라고요.



#연구원 #동물실험 #실험 #실험용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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