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메이커]리뷰
승리한 사람의 시각으로 쓰이는 역사는, 언제나 승자 외엔 관심도 없는 것처럼 차가워 보일 때도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 역시 그렇다.
승자는 손을 번쩍 들어 웃고 패자는 울며 다음을 기약하지만 가끔은 과연 승리란 것이 무엇인지. 패배란 것이 정말로 정치생명의 끝을 말하는지 아리송할 때도 있다.
마치 나의 답답함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에 선거 뒤엔 사람과 신념도 있다고 소리치는 영화가 있다.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잡고 멀리 가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려주려 하는 영화 [킹메이커]가 바로 그것이다.
각각 김운범과 서창대를 연기하는 설경구와 이선균을 앞세워 2022년 설날 극장가에서 왕좌의 자리에 앉을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지. 영화 [킹메이커]가 주목받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너무 진지한 정치극은 아니다.;이토록 댄디한 영화라니.
정치 이야기는 건조하기 쉽다.
낯선 단어로, 복잡한 이야기로, 혹은 이야기만큼이나 무거운 분위기를 잔뜩 얹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관객을 따분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검은 양복 군단으로 점철된 영화로 빠지기 쉬운 작품을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은 올드하지 않고 스타일리시 하게 잘 꾸며냈다. 덕분에 1960년대부터 시작하는 영화가 낡아빠졌다거나 너무 예전 이야기처럼 느껴져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출한 덕분에,
영화가 매우 오랜 시간을 거슬러올라 오고 있다는 피로감도 주지 않는다. 시대 배경에 따라 인물을 배치한 것이 아니기에, 인물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관객들에게 주는 셈이다.
영화의 큰 축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도전을 하는 김운범(설경구)과, 그 어떤 것도 알려지지 않은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의 이야기가 이루고 있다. 또한 [이태원 클라쓰]의 유재명, [내부자들]의 조우진까지 합세해 그 어떤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둥을 세워 영화를 지탱한다.
뻔하거나 예상 가능한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 덕에, 그들이 만나고 부딪치고 합을 이루는 장면들에서 느껴지는 시너지는 이들이 여태 연기해왔던 기존의 작품들을 모두 잊게 하기 충분하다.
체스의 목적;두 사람의 앙상블이 이뤄내는 갈등의 묘미
서창대와 김운범 모두. 자신들이 임하고 있는 이 선거가 체스와 같은 게임임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목적은 승리로 같았으나, 그들의 신념은 정 반대였다.
창대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빠른 승리를 원했고, 운범은 자신의 군사를 지켜가며 정당한 승리를 원했다.
그러나 이 게임의 왕은 운범 하나였고, 창대는 늘 자신이 원하는 것에서는 한 발짝씩 멀어진 채 구경해야 했다. 그 덕에 승리에 대한 갈망은 그가 지닌 아쉬움만큼이나 커져만 갔다. 마치 운범이 자신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는, 혹은 모른체하는 것만 같아 서운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범이 이를 몰랐을 리가 없다. 창대가 없었다면. 그는 연거푸 승리한 선거의 끝에 있는 대통령 후보라는 자리에는 손조차 뻗을 수 없었을 테니. 단지 자신은 왕좌에 올랐을 때 부끄럽지 않은 승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부딪칠 수밖에 없는 두 인물을 영화는 조명과 의상으로 극명하게 드러낸다.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옷이 흑백으로 나뉘는 것도.
운범의 그림자에 창대의 모습이 가리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창대가 어둠에서 등장하는 연출로 말이다.
이런 장면으로 영화는 간접적으로나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운범과 창대가 가진 사상은 절대 공존할 수 없음을.
그리고 그림자는 주체를 절대 삼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제갈량의 재림일까.;이선균의 재발견.
영화는 1960,7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전략가였던 엄창록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중앙정보부에서조차 엄창록의 선거전략을 보고했을 만큼 효과적인 선거 전략을 펼쳤던 인물이다.
마치 넷플릭스 시리즈인 [종이의 집]의 교수, 혹은 삼국지의 제갈량처럼 명쾌한 답과 지략으로 김운범의 선거를 승리로 이끈 서창대 역할을 이선균은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게 재탄생시켰다.
이선균이 연기한 서창대는 지조의 높이만큼이나 야망을 쌓아 올리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의 입지와 인정에도 목마른 연약함도 내포하고 있다. 가진 능력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운범에 대한 존경도 가슴 한가득 품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마치면서
좋은 영화였다.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들이 많이 개봉하고 있는 것 같아 보는 내내 감정선을 따라가며 행복했다.
선거라는 것에 희생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주목받는 영화였기에 더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말 할 것도 없었고, 보여주는 모든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연출도 매우 행복했다.
안전하고 편안한 시간 속에서 감정 안에 풍덩 빠져 만끽할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그 와중에 커피 먹으면서 영화 보겠다고 기어코 커피를 사서 1분 전에 입장함.
2. 연기는 말해 뭐 하나.
3. 마음도 따뜻해지고 생각도 많아지는 영화였다.
본 포스팅은 영화 [킹메이커]시사회 초대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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