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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Oct 25. 2019

[연구원의 삶]
3. 알츠하이머 약은 왜 안 만들어?

나 지니 아닌데.

내 주위의 친구들을 둘러보면, 전공을 살리는 바람에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물론 이해한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그러니 이런 불규칙한 패턴을 가진 일을 계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대단하다 반, 힘들겠다 반, 안됐다 많이를 적절하게 섞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오늘은 내가 살게.라는 말을 늘 하곤 한다.


그런 내 처지(?)가 위안의 대상처럼 느껴진 것이었을까. 친구들은 내 앞에서 형편없이 그대로인 삶을 산다며 푸념을 늘어놓기 바쁘다. 그러면서도 마치 내가 살고 있는 방식이 그들이 가지 못한 길이라 그런지, 늘 질문을 던진다. 


"아니 근데 왜 알츠하이머 치료약은 왜 안 만드는 거야?"


연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니, 이런 말들을 던지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뒤에 따라오는 질문들은 나를 마치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프레젠테이션 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단상의 나를 연상케 한다.


"그냥 연구만 하고 마는 거야?" 

"실용적이게 약을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아?"

" 점점 알츠하이머 걸리는 사람 많아진다는데 연구 속도가 너무 늦는 거 아니야?"


그들과 나 사이에는 단 1도(Degree)의 틀어짐이 있었을 뿐인데, 선택 후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구나. 그리고 달라진 삶의 궤적이 생각의 차이도 만드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대화를 할 때 얼마나 많은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지. 알 수 있는 순간 역시도 지금이다. 

(게다가 나는 알츠하이머 쪽의 연구를 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친구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하물며 단 1도의 차이도 이런데, 이 분야의 문외한이 보기에는 얼마나 답답해 보이겠는가. 고향에 내려가 밥을 먹을 때 뉴스에 병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남동생은 내게 늘 그렇게 말했다.


누나의 속마음이란다 동생아.

그림출처

"그게 그렇게 어려워? 배운 거 다 어따 쓰고 있는 거야? 빨리빨리 하란 말이야."


놀고 자빠졌네 라는 말을 하며 시원하게 숟가락으로 남동생의 이마에 꿀밤을 주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 역시도 마음이 무겁다. 


 미국의 큰 제약회사에서도 이런 실정이란다 

그림출처


연구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지 아닌지를 실험을 해서 증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가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세운 가설이 맞기는커녕 틀리기도 일쑤이고, 맞다 해도 우리가 짜 놓은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많다. 오히려 원하는 실험 결과와 정 반대로 나올 때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니 실험실에서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세포 수준에서(in vitro) 쥐, 동물로 넘어가기 까지(in vivo), 그리고 사람에게서 상용화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저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힘이 쭉 빠진다. 잘못된, 혹은 희미한 가능성을 없애 나가는 것도 우리가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런 Negative data의 경우는 전혀 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연구하는 것이 더디고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장기적인 투자도 어려워지는 것이겠지. 


그 어떤 악의도 없이 순수한 궁금증만을 담아 던지는 질문들이 이렇게 위험할 수 도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조용히 테이블 위의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나 지니 아니거든? 근데 이 정도 살 수 있는 지니는 돼줄 수  있어. 내가 살게"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eyeloveuall/22157165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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