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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Dec 10. 2019

[연구원의 삶]4. 미어캣으로 살기

야, 온다 온다!!

내가 교수가 아니니 정확한 이 일의 생리를 일거수일투족 알 수는 없지만, 일하는 입장이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교수의 기분.


교수님의 기분이 좋거나 나쁘냐에 따라, 그 날 하루, 길게는 그 기분을 나쁘게 하는 "그것"이 끝날 때까지. 눈치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보통 기분 나쁘게 하는 원인은 보통은 연구 과제를 따오는(혹은 연장하는) 기간이거나 논문이 reject(거절) 되었을 때가 그때다. 말 그대로 교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연구가 거절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고, 그때 만약 눈에 띄어 "화풀이"의 대상이 되거나 하면 정말 혼이 쏙 나갈 정도로 욕을 들어먹으니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도 별로 좋지 않다.


그럼 결과를 내면 되잖아?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를 아무리 낸다 해도 이런 일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시험대에 오르는 일은 썩 유쾌하지는 않다. 연구라는 것이 끝이 없는 분야이다 보니, 이런 일은 반복되고 또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입장이라 더더욱.


그렇기에 교수님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살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온갖 촉각을 다 곤두세운다. 미치 지진의 전조 현상을 느끼는 동물들처럼. 온갖 절제된 바디 랭귀지를 써가며 교수가 기분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라는 이 단순한 문장을 랩(Lab)의 전체 사람들에게 퍼뜨려야 한다. 그것도 교수가 오기 전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러면서도 티 나지 않게.


연말이 되면 연말 과제 평가다 뭐다 해서 이런 미어캣 모드가 하루 종일 발동될 때도 있다.  연구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건비이기에. 이 시기에 박힌 미운털이 재계약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연봉 인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신중을 가한다. 정리된 데이터도 다시 한번 보고, 단어 하나도 조심해가며 데이터 미팅을 한다. 정말 살얼음판이 따로 없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참 복잡하다. 교수님을 보며 가장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일은 하지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함께.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이렇게  보잘것없는 일인가. 이렇게 눈치까지 봐야 할 일인가.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고도 약한 미어캣은 집에 가서도 두려움을 완벽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내일도 무사히. 를 되뇌며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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