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억

그늘을 찾아서.

by Munalogi

이 글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공통 주제를 받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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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미는 몸이 약했다.

남동생을 낳고 나서 고작 두 해 먼저 세상에 나온 그(자식)의 누이인 나를 돌보는 것이 괴롭고 지친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당연한 수순처럼, 나는 조부모의 집으로 몇 개의 가방과 함께 덩그러니 맡겨졌다. 물론 그때의 나는 이미 혼자서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또 혼자서 뛰어가 주름살이 가득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품에 가득 안길 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하게나마, 나물에 밥을 석석 비벼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저녁이 될 때까지 뛰어놀다 들어와 바깥 냄새를 잔뜩 묻히고 들어오는 데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미 세 번이나 벽지를 갈아야 했던 그 자그마한 신혼집의 벽들을 크레파스로 채워대는 딸을 엄마가 버거워한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


조부모가 뿜어내는 노인의 냄새는 내가 그들에게 담뿍 안겨 있는 그 순간에도 이미 조금은 그리워하고 있는 어미의 냄새 이기도, 그리고 이제 나와 맞잡은 손을 조부모에게 순순히 넘기는 아비에게 남은 서운함을 채워주는 것이기도 했다. 발을 붙이지 못하고 조금씩 땅과 멀어지던 나의 마음을 그 쭈글거리고 마디가 옹이처럼 굵어진 손으로 끌어당겨. 단단히 지면에 붙여주는 그런 것이었다. 아는 단어가 좀 더 많았다면. 그때의 마음을 안정감이라 부를 수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나를 잡아주는 힘없는 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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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손녀의 위치란 그때의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이었다. 첫 딸이라는 위치가 주는 위용이 이제 겨우 자기 마음대로 울고 웃기를 조절할 수 있는 남동생이란 위치에 밀린 것도 잊을 만큼. 어미와 아비가 경악할 만큼의 양으로 매 끼니를 이름도 모르는 나물들을 학살하며 그릇을 비웠고, 대청마루에 누워 부푼 배를 맘껏 내밀고 입으로 숨을 내 쉬며 뙤약볕 아래서 몇 시간이고 잠들어도 파리 한 마리 내 옆에 얼씬 할 수 없었다. 할미와 할비는 내 입에 그렇게 사랑을 밀어 넣고. 힘없는 손으로 부채를 저어 만들어 낸 바람으로 나를 지켰다.


그러나 그 바람과 사랑도. 모종의 버림을 받았다는 마음을 여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나의 짜증과 서러움만큼이나 여름의 햇살은 가차 없고 냉정했고. 한여름의 땡볕 아래서 할미를 따라 나물을 캐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그 마음을 숨길 일이 없어 쉬이 얼굴을 붉혀야 했다. 그러나 이 굵은 옹이가 가득한 늙은 두 나무는 행여나 내 마음에도 뙤약볕이 내리쬐다 못해 기미를 남길까 싶어. 후 후 입으로 김을 불듯 내 마음을 간질이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그에 맞춰 그제야 겨우 숨겨놓은 마음을 밭게 뱉어낼 수 있었다. 조금은 바람이 불어 살 만 해진 마음에 고개를 들고 눈을 뜨면, 늘 이 손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나이테와 상처 가득한 얼굴의 조부모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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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보면 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고작 두 해 이른 삶을 산 나와는 비교되게, 그들은 수십 년에 걸쳐 먼저 시작된 인생을 뿌리박고 조용히 살아왔다는 것을. 이 그늘 아래서 다리를 달랑거리며 바람에 몸을 맡긴 첫 손녀는 알 수 조차 없었다. 내가 다시 그 늙고 마른 할아비의 손에서, 그 사이 남동생을 돌보느라 조금은 자기의 아비와 비슷한 손을 갖게 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나는 그들이 서서히 메말라 가고 있음을. 조만간 잎을 떨어뜨리고 천천히 옆으로 누워갈 것임을. 이내 뿌리까지 말라 비틀어질 것임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않은 이 꼬마 같은 손녀를 두고 두 나무는 이제 그루터기만 겨우 남긴 채 없어졌건만. 그 사실 따윈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여름은 가차 없고 거부할 수 없는 화살을 연신 쏘아댄다. 어리고 여린 손녀 대신 그 화살을 기꺼이 등으로 막아내야 했을 그네들의 아픔은 이제 내게 오롯이 박히며 그들의 상실에 몇 곱절은 속이 쓰리고 숨이 막힌다.


모든 것이 활개를 치고 씩씩하게 뻗어나가는 여름이란 계절엔, 그리움을 떠올리는게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매번 여름을 맞이할 때마다, 여전히 두 해 먼저 태어났다는 서운함을 가진 아이가 되어. 그 바람을 그리워한다. 힘없고, 때로는 열기마저 품은 듯 후끈하지만. 나의 샘을 담은 서러움마저도 잠재워 주었던 그 바람을. 후 후 하고 내 귀밑머리를 간질였던 바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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