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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명작

영화 [화양연화;특별판]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화양연화;특별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초반부의 이야기가 아닌. 특별 편에서 공개된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므로 매우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146F1B10AC9C882415 사진출처:다음 영화

시리즈, 혹은 시즌이라 불리는 형태의 작품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영화 자막이 올라가 고난 뒤 어둠 속으로 숨은 인물들의 이야기들도. 이젠 옆집에 도착한 택배처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이야기들은 궁금증을 박탈당한 채 나중에.라는 명목으로 영원히 찜해놓은 리스트에 머무를 때도 많다. 이런 추세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오히려 단 한 번의 만남 이외엔 관객의 앞에 얼씬도 하지 않은 채 길고 긴 아쉬움과 갈망만을 남기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그런 작품들을 명작, 혹은 고전이라 부른다.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만 같은 작품 [화양연화]의 특별판 개봉은 반가웠지만, 일말의 걱정도 함께 나를 찾아왔다. 과연 이 숨겨진 한 뼘만큼의 이야기가. 첸 부인(장만옥)과 차우(양조위) 사이에 필요했던 딱 한 뼘만큼의 거리처럼 애달프게 다가올 수 있을지. 그 안타까웠던 세월만큼이나 강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작품을 아끼는 만큼이나 특별판을 향한 마음도 간절했으니까.


이 어쭙잖은 관객의 간절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익히 알고 있다 못해 눈을 감아도 재생될 것만 같은 이 작품은, 몇 십 년의 세월을 뚫고 눈앞에서 또 한 번 유려하게 나를 홀렸다. 애절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공감과 거부감 사이에서 절묘하게 널을 뛰어댔다. 그들의 모습과 대사, 눈길 한 번에 나는 또 한 번 마음이 내팽개쳐지고 부서졌고, 러닝타임 내내 나는 흩어진 파편들을 그러모으느라 바빴다.



7c6bf91662c65a42c91060319e39ddbecdeb1a27 사진 출처:다음 영화

차우가 자신의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리는 익숙한 결말까지 갔을 때 나의 손과 마음은 두 사람이 남긴 생채기와, 상처에서 파생된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 마음을. 정말로 특별판이라 불리는 마지막 추가 장면이 위로해 줄 수 있을지. 나는 벌어진 상처를 바라보는 부상자인 채로 애타게 마지막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마지막 이후로 또 몇십 년이 지난 시간. 두 사람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에서 만난다. 그렇다. 이미 그때에 이 애달픈 연인들을 만나게 해주는 멀티 유니버스 같은 결말이 존재했었다. 그들은 거추장스러운 제약이 없는 상태의 남녀로 만나, 서로를 관찰하고 또 염탐한다. 이런 노력(?)은 그들 간의 사이를 좁히고 좁히고 또 좁히다 못해 드디어 접점을 만들어 내는 기분이 들게 한다. 다른 우주에서 손쓸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관계가 좀 더 햇빛 아래로 나오는 것 같은 마음에. 알 수 없는 흐뭇한 미소마저 짓게 된다.



c3f77532676ba40be6e0ce3897d518ca1c3620a2 사진출처:다음 영화

두 사람의 확정된 해피엔딩(?)을 보면서 뿌듯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이 감정의 대부분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극명한 분위기 차이에서 온다. 분명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칼로 서로를 찔러대던 두 사람이 갑자기 서슬 퍼런 칼로 결투가 아닌 대련을 하는 느낌으로 급격히 바뀌기 때문이다. 또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특별판의 의미를 곱씹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이 추가된 부분의 시간이 짧다는 것도 한몫한다. 분명 반가운 결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이런 속도 차이가 바뀌는 감정보다 좀 더 빠르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짧은 덧붙임이 이질감으로 남을지, 혹은 후련한 결말로 남을지에 대해서는 관객의 생각에 달려 있을 것이다. 또한 영화에 대한 느낌은 개인적인 감상일 테니 이 또한 생각 혹은 결정의 영역에 달려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그 후, 혹은 다른 모습이 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이 영화를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슈뢰딩거의 상자 안 고양이처럼. 존재하는 희열이 될 지도. 혹은 존재할 것으로 생각되는 위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리뷰작성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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