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와 굴렁쇠 소년

영화 [누벨바그]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누벨바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2df4f5a3acb11d46eadad774491f3c1b51bc58f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근현대사 소설들을 보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일 확률보다는 어머니일 확률이 높고, 폐병이라 불리는 병이거나 고열에 시달리고 있을 확률이 높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부질없이도 어머니는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싶다고. 그 순간에도 잊지 않고 그러더라고. 아들은 회상하며 말한다. 넉넉지 않았던 살림으로 인해 어머니에게 약 한번 쓰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기껏해야 생각났던 것이 그 음식이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그는 탁주를 연거푸 들이킨다. 물론 그냥 고깃국이냐.라고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수저를 탁 하고 국그릇에 꽂았을 때 수저가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고기가 들어 있어야 한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조차도 그 국을 한 번만 들여다보면 슬그머니 되돌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푸짐한. 그런 고깃국.


부모가 세상을 떠난다는, 내게도 반드시 찾아오게 될 일에 대한 어림짐작으로 슬프긴 했어도. 고깃국에 이 밥이라는 대목은 늘 어린 나에겐 의문의 영역이었다. 나는 이미 그것이 흔하다 못해 오히려 순수한 쌀밥과 많은 고기가 건강을 해친다는 상념에 더 익숙한 세상일 때 태어났으니까. 그 문장이 지닌 의미의 반 정도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등장인물들의 아픔을 눈 끝으로만 겨우 넘겨짚을 수 있었다.



5ec6c402bb6a55a73c8b19315330d9aaabad4d8a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 후 몇십 년이 지나(?), 나는 영화 [누벨바그]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이와 비슷한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영화는 세트부터 대사까지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잘 짜인 한 편의 연극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네 멋대로 해라]라는 작품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박살 내버렸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게는, 이 새로운 것이(Nouvelle vague) 낯설고, 또 불친절하게까지 느껴졌다.


왜 이번 이밥의 고깃국은 이제 어엿한 영화 리뷰어가 된(?) 내게는 맞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때 결론은 비슷했다. 나는 이미 제약이 없다 못해 이제는 질 좋은 콘텐츠가 모자랄 지경인 시대를 누린 지 꽤나 오래되었으며. 심지어 AI기술을 통해 영화를 만드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 영화 속에서 혁신을 부르짖는 이 오만한 태도의 감독에게서 불편함을 넘어선 불쾌함을 느낄 수 밖엔 없었다. 내 눈에 비친 영화 속 그는 자신만이 예술을 안다고 생각될 만큼 안하무인이었고, 예술병에 사로잡혀 관습적인 영화들을 모두 비난하는 비평가였으며, 세상 물정이라곤 신경 안 쓰는 도련님 정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423d495401e6bbfd5fcfc4ee8522087d3b3cbba0 사진 출처:다음 영화

누군가는 이런 영화를 알아보지 못하는 나를 손가락질하거나 혀를 찰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미래를 살아보았기에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기념비를 세웠는지 아는 몇몇 시네필들에게만 그렇게 보일 뿐. 나처럼 아직 고전에 대한 정보가 모자라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그다지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예술적이지도 않을 가능성이 많다.


실제로 그 시대를 이끌었다는 사람들이 출연했다고는 하지만. 아바타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88 올림픽에서 굴렁쇠를 굴렸다는 소년을 바라보았을 때의 감정처럼. 큰 울림이나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으므로.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다.

이런 작품에 깊이 몰입하지 못한다는 점이.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음을 정말 간접적으로만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내가 이 시대에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잘 눈여겨보자는 생각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영화들을 보며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나중에는 또 어떤 영화의 기준이 되거나, 또 다른 누벨 바그가 되어 나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줄 수도 있으므로.




[이 글의 TMI]

3주에 걸친 입원 끝에. 아빠가 퇴원을 하셨다. 아빠와 남동생이 기차를 타는 걸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몸살기운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래도 이만하길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빠도.




#누벨바그 #리처드링클레이터 #기욤마르베크 #조이도이치 #오브리뒬랭 #최신영화 #프랑스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칼럼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Cinelab #Cinelab크리에이터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8화아이는 그럴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