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척의 일생] 리뷰
이 글은 영화 [척의 일생]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으로 부터 약 3주 전에 써 둔 글을 업로드 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우리 집에는 참 악독한 풍습이 있다.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가족 중 한 사람이 항상 대표로 모든 구성원의 신년 운세를 보고 오는. 그리고는 당당하게 후불 청구서를 내게 들이미는. 엄마는 매번 금액을 고지하면서 올해도 좋다더라. 라든가 이번에는 누굴 만난다더라. 같은 문장 몇 개로 아직 오지 않을 미래를 장밋빛으로 퉁친다. 물론 기분 나쁜 소리보다야 듣기는 좋지만. 매번 고막을 때렸다가 곧장 다시 귓바퀴로 흘러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한다. 과연 정말로. 이 예언(?)들이 실제로 이뤄질 것인지. 이뤄진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질 것인지. 그리고 이 예언을 본인이 들은 후에도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지.
나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없진 않았나 보다. 미래를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도,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몇 년이 지난 후의 내게 들려왔으니까. 이번에는 스쳐 지나가지 않고 귀를 한가득 채워 머무른 채.
척(톰 히들스턴)에게도 이런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고작해야 청소년기를 겨우 벗어날 무렵이었고,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는 저 남자는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임에는 틀림없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가지 말라고 호통을 쳤던 다락방에서. 척은 자신의 미래를 병문안했다.
병색 때문에 조금은 더 나이 들어 보일 수는 있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저렇게 누워만 있을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 중장년의 자신을 본 뒤. 척은 마치 소소한 저주를 퍼붓듯 말한다. 이미 가족을 잃은 상태의 척이 내뱉는 그 모든 말들은, 마치 운명에 대한 선전포고처럼 들린다. 더 이상은 내게서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라는 듯한.
영화는 잔인하게도 척의 생을 거꾸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말미에 만나는 어린 척의 마지막 모습은 여태껏 안고 있었던 모든 의문들을 슬픔으로 환전한다. 그것도 슬픔 쪽에 곱절이나 더 많은 양을 남긴 채. 방금 전까지 신나게 광장에서 춤을 추던 척의 심정이 어땠을지. 그리고 저렇게 멀쑥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하필 춤이라는 형태로 저렇게 흥을 발산했던 이유도. 세상의 종말 앞에서 왜 자꾸 척이라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했는지도. 저 어린 소년의 울부짖음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것이었던 셈이다.
척은, 자신의 바람 혹은 소원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다가. 죽음이라는 것만큼은 피하지 못했으니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나는 아빠의 간병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슈레드 치즈처럼 거칠게 갈려있던 상황이었고. 몇 주만에 처음 아빠와 분리되어 영화관이라는 곳에 간 것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어째서 이런 운명이 내게 찾아와야 하는지를 비관하며 눈물과 함께 억지로 늦은 저녁을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족히 사흘은 제대로 잠을 못 자 퀭한 눈을 하고, 이틀째 제대로 된 샤워를 하지 못한 몸뚱이를 겨우 가눈 채.
누군가 먼저 알려줬다면.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괴로운 구간을 거쳐 끝을 알기만 할 수 있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비참함은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혹은 모든 것을 떨쳐 버리려는 듯 춤을 추는 척을 보며 나는 그저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끝을 안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척도, 나의 인생도 실패한 것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혹은 최악의 길로 인생이 접어든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모여 만들어진 인생이라는 세계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이런 비극들로 얼룩져있다 해도 아름다울 것이며. 그 자체로도 소중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모든 순간들이 결국에는 나라는 하늘에 콕콕 박힌 별자리가 되어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이정표처럼 될 것이니까.
척의 모습을 보며. 그제야 나도 현재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영화관을 나왔을 땐, 지친 데다 울기까지 해서 더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내 옆에 자리 잡은 운명에게 척처럼 손을 내밀 용기 정도는 얻을 수 있었다. 네가 지금 나의 파트너라면. 기꺼이.라는 마음으로.
[이 글의 TMI]
아빠는 다행히도 면역항암 치료에 별 부작용이 없으시고. 나 역시 독감에서 벗어나 정상 생활을 잘 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운명이 어떤 형태이던 간에. 나는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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