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대홍수] 리뷰
이 글은 넷플릭스 작품 [대홍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오류;너무한 거 아닌가요?
하나하나 오류를 짚어내자는 말은 아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것도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서. 그리고 세계관 전체를 아우르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선. 소행성이 충돌해서 빙하가 모조리 녹았다는 설정부터 보자. 미안하지만 모든 빙하가 녹는다 해도 아파트가 잠길 정도의 물은 생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홍수는커녕 빙하기가 올 확률이 몇백 배는 더 크다. 또한 충돌로 인해 열에너지가 생성된다 해도. 그것이 구름을 생성할 만큼의 원동력이 된다 해도. 온 지구의 동네방네 비를 “그만큼”이나 뿌려댈 정도의 양은 절대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비는 줏대도 없이 왔다 갔다 하기까지 한다. 마치 이 작품 자체를 끌고 갈 구심점이 없다는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이.
그래. 백번 양보해서 설정이라 치자. 그러나 영화는 자신이 세운 설정마저 몇 초 만에 붕괴시킨다. 그것도 주인공 안나(김다미)의 대사 한 줄로. 그 물을 먹어보니 물이 짜단다. 해수면을 비정상적으로 높이다 못해 인류의 삶을 멸망시킬 만큼의 물이 빙하로 인해 범람했다면. 짜다는 말보다는 최소한 짭짤했다라던가. 소금기가 느껴졌다. 정도의 대사를 쳐야 했다. 바닷속에 실제로 계속 소금을 만들어내는 맷돌이 있지 않고서야 물이 짜다는 대사를 하다니.
그렇다면 왜 이런 대사를 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감독은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과 쓰나미가 치는 것조차 구분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해수면은 매우 서서히 상승한다. 몇십, 몇백 년에 걸쳐서. 마치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로 쌓아둔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오는 것처럼 작지만 서서히. 그러나 이놈의 작품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사이로 파도가 치듯이 해일이 쳐댄다. 모든 것을 삼킬 만큼 크게. 대체 얼마나 큰 소행성이 떨어져야 이 정도의 해일이 규칙적으로(?) 칠 수 있는지에 대한 시뮬레이션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작품을 만들다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해일은 주인공에게 필요할 때에 맞춰서 밀려온다. 마치 치트키라도 쓰듯이.
그 와중에 이놈의 아파트는 이 난리통에도 굳건하게 서 있기만 하다. 온 단지 전체가 마치 황궁아파트라도 되는 것 마냥. 뿌리째 뽑히거나, 무너져버리지 않은 덕분에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물난리만 걱정하면 되는 편안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이 아파트의 입주가격이 얼마일지 궁금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연구소장의 이름에 감히 천재 물리학자인 이휘소의 이름을 부여하다니. 코웃음이 나온다.
타임루프물로서도 실격;타임루프물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죠?
사실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작품에 실망을 했다고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제작자들이 작품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을 때 싸워야 하는 것은 다른 좋은 작품일 때도 있지만, 예고편을 보고 예비 관객들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만든 작품일 때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재난물이 아니라는 실망을 뺀다면. 과연 이 작품이 타임 루프 장르에서는 성공했는지에 대한 질문도 해봐야 하고, 대답은 당연하게도 아니오.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타임 루프물의 가장 큰 특징은. 특정 한 지점으로 계속 회귀하여 그 속에서 자신이 풀어야 하는 업보, 혹은 미션을 완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은 매번 사망을 킥으로 사용하여 실수를 할 때마다 몇 번이고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규칙 아닌 규칙이 있다. 하나는 주인공은 반드시 매번의 사망 끝에 무언가를 배워 다음 삶(시도)에서는 사망의 시점을 몇 초라도 뒤로 미뤄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주인공 혹은 조력자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배경에 가깝기 때문에 행동 패턴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몇 번이고 죽어도 다시 도전할 끈기만 있다면 결국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처럼.
그러나 이 시뮬레이션 속에서는 이런 규칙을 자기 마음대로 써대고 있다. 안나와 희조(박해수)는 몇천 몇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아니. 잊고 있다 생각난 냉장고 속 브로콜리처럼 아 맞다. 를 연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더니 후반부에서 안나는 갑자기 자기가 다 잊어버릴 것 같다며 아들 앞에서 오열을 한다. 이 혼란 속에서도 NPC들은 착실하게 진화(?)를 계속하여 주인공들을 도와주는 변수들을 매번 만들어낸다. 안나의 티셔츠에는 시도한 횟수를 상징하는 듯한 숫자가 매번 달라지는데. 이 숫자조차 줏대가 없다. 증가를 했다가 감소를 했다가 뻥튀기가 되었다가. 이러니 회귀물이라는 생각보다는 만들어낸 작품을 아무렇게나 잘라다가 마구 이어 붙였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모성애는 그만;자인 이에 대한 비난도 그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대홍수 속에서도 안나는 모성애를 잃지 않는다. 이 모성애라는 것은 참으로 힘이 커서, 분명 자신이 포기하려 했던 실험체에 가까웠음에도. 안나는 자인을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물에 몸을 던지고 위험 앞에서 고군분투한다. 게다가 소싯적 마녀였던 실력도 뽐내며 한낱 연구원인데도 불구하고 처음 잡아봤을 총 마저 탕탕 명중을 시켜댄다.
이런 모성애를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자인을 소위 말하는 금쪽이로 변신시킨다. 온 동네가 물바다가 나서 사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에도 잠수를 하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엄마를 따라다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덜렁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정신없는 안나의 속을 벅벅 긁어대는 모진 말까지 뱉어낸다.
사실 정말로 이런 상황이 온다면. 자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인 심각함을 아이는 겪어본 적이 많이 없을 테니 도피하듯이 떼를 쓸 수도 있고. 자신의 마음대로 안되다 보니 평소처럼 악다구니를 쓸 수도 있다. 그러니 이건 어떻게 보면 하이퍼 리얼리즘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태도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끝까지 완주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아이가 꼽힌다는 점에서는 일침을 놓을 수밖에 없다.
어른의 욕심으로 작품 속에서 아이를 그렇게 만들어 냈다면 책임을 지는 것도 어른의 몫이어야 한다. 어쭙잖은 레퍼런스들로 자신조차 설득하지 못할 작품을 만들어 놓고 이 안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아이를 방패막이로 내세우다니.게다가 그 모든 것을 용서할 것으로 모성애를 이용하다니. 그 어떤 면에서도 혹평을 피해 갈 수 없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마치면서
이 영화에 대한 평론(혹은 리뷰,감상)을 두고 요새 많은 말들이 오고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말 하기로 하고. 이 말 만큼은 나 역시 반드시 얹어야겠다. 관객은 사소한 것을 잡아내 그것에 실망할 만큼 마이크로 매니징을 매번 하지 않는다. 작품을 못 만드는 바람에 그런 사소한 것들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 글의 TMI]
아빠가 투병 중이셔서. 남동생과 제가 번갈아 간병을 하느라(엄마까지 드러누울까 봐 경로우대적으로다가 엄마는 간병에서 제외함) 당분간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못 보고 OTT작품으로 리뷰를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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