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기도에 답해주소서.

영화 [시라트]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시라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리뷰는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기도 형식으로 서술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특정 종교의 신에게 비는 것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에게 올리는 말임을 또한 밝힙니다.


[영화 제목의 뜻:사후세계에서 지옥과 천국을 잇는 다리를 말한다. 영화에서는 이 다리가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보다도 날카롭다고 묘사하고 있다. ]


image.png 사진출처:다음 영화

여태껏 당신을 누구보다 공평한 존재라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내게 불운이 닥칠 때도.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일말의 평온함이 조각바람처럼 귓머리를 간지럽힐 거라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걸었습니다. 바르다고 여겨지는 길을. 혹은 바름이라는 것에 가장 가까운 길을 걸으려 비틀거리면서도, 양 어깨 위에 고뇌라는 포대를 올려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 믿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가시밭길 앞에 쉽게 무릎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만난 당신은 시라트를 건너려는 모든 인간들에게 한낱 심술이나 부리는, 못난 감정만을 잔뜩 쑤셔 박은 포대였을 뿐입니다.


이미 그들에겐, 우리에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오른손이 없었고, 또 어떤 이는 발목 아래를 얇은 금속다리에 의존해야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루이스(세르지 로페즈)는 딸을 찾는 여정 중 남은 가족인 아들과 반려견마저 잃어야 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 시라트를 건너는 것조차 당신에겐 그저 질투에 가까운 휘브리스(Hubris, 참고 1)였습니까. 어찌 당신은 턱을 괸 채 옆으로 누워, 손가락 하나만으로 그리 툭 하고. 시라트 위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밀었습니까.



image.png 사진출처:다음 영화

당신의 손짓 한 번에, 인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탐욕스러운 악마들의 입 속으로 사라져야 했습니다. 소리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곤두박질치는 그들을 보며, 당신의 심술은 얼마나 잠재워졌습니까. 쏟아지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 한 조각 남기겠다며 상자의 뚜껑을 닫으러 안간힘을 쓰는 인간들의 발버둥이. 당신에게는 그저 걸맞은 유희에 불과했습니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착한, 혹은 바르게 살면 구원해 줄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리고 이 수많은 이들은 여태껏 누구를 위하여 어깨 위의 고난 앞에서 침묵했던 것입니까. 당신이 말하는 공평함이 이런 것이었다면, 우리가 삼킨 쓰디쓴 것들은 그저 스스로를 죽이는 독이었을 뿐입니까.



image.png 사진 출처:다음 영화

아직 당신의 손가락이 등에 닿기 전. 사람들은 마치 당신의 귀에라도 들리기를 바라는 듯이 큰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당신이 굽어 살펴준 이 평온한 세상이 영원하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듯이. 개개인 모두가 제사장이 되어. 당신에게 감사의 춤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춤은 당신의 장난질 이후에 완벽하게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당신에게 가닿기를 바라던 음악은 이제 제사장들의 울음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제단에 올리기 위해 추던 춤은 이제 슬픔을 덜어내는 몸짓으로 변화합니다. 믿었던 당신에게서 배반당했다는 생각조차 불경하여 머릿속에 담지 못한 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칩니다.


차라리 그들을 불태우지 그러셨습니까. 일말의 희망조차 꿈꾸지 못하게 하지 그러셨습니까. 왜 그들에게 열린 문을 보여주신 것입니까. 어째서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향기를 바람에 담아 날려 보내셨나이까. 이런 생각으로 지켜보는 제사장들의 춤이 얼마나 피눈물로 점철되어 있는지. 당신은 절대로 알 길이 없겠지요.



image.png 사진 출처:다음 영화

대답을 주소서. 어찌 그리도 매정하셨는지. 대답해 주소서. 당신은 이 모든 사건들에서, 그것이 누구이건 상관없이 그리 하였을 것인지. 어찌하여 슬픔을 추모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어찌하여 죽음마저 이리도 건조하게 성큼 다가오게 하셨는지. 그리고 대체 어떤 것이 당신이 휘브리스를 행하게 한 계기를 만들었는지를.


신이시여.

오오 신이시여.

오늘만큼은 나의 이 기도에 답을 주소서.


제 기도에.답해주소서.



[참고 1]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한낱 인간이(!) 자신이 가진 것을 넘어 오만하게 굴려고 할 때 신들이 벌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이 글의 TMI]

요새 고전문학+일리아드+그리스 로마 신화 읽고 있어서 그런가 조만간 올림포스 산에 제사드리러 갈 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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