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의 습격

영화 [휴민트]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휴민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image.png 사진출처:다음 영화

지난주에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적장자(적통)인 단종을 드디어 박스 오피스의 왕좌에 앉혔다. 이룰 수 없었던 과업을 지금에라도 끝낼 수 있어서 전하의 마음이 편해지셨을까.라는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좋은 의미로 단종의 왕위를 위협하는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


비록 조선 500년의 역사 속에서 적장자였던 왕이 7명뿐이라 감안하더라도. 왕위에 오를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이 적통의 유무이거늘. 이번 후계자의 상태는 반가움에 버선발로 뛰어 나가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의 실력이나 경력에는 의심이 없지만. 과연 그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는 쉬이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image.png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렇다.

그는 내세울 만한 배경이나 같은 고민을 나눌 커뮤니티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의 초기작들에서는 정제 따위는 되지 않은 거친 숨소리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초반에 두각을 나타냈던 육탄전의 장르적인 특성과 맞물려 있었기에, 류감독이 선사하는 작품에서는 일관성마저 느낄 수 있었다. 신나게 격파해 흩어지는 파편들 가운데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조금씩 아로새길 수 있었다.


그러나 류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 무수히 쌓인 파편들을 치우다, 손을 베이고 가시에 찔리는 일이 잦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조각들을 다듬을 수만 있다면 자신도 관객들도 덜 다칠 것이라고. 그렇게 그는 영화 [베를린]을 기점으로 영화에 짙게 깔려있는 거친 부분들을 다듬기 시작했다.


물론 트레이드 마크인 액션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베를린을 기점으로 뜨거움 보다는 서늘함을 선택한 영화들에서 조차도 이런 그의 욕심 혹은 고집이 보이기도 한다. 그로 인해 한동안은 지울 수 없는 화려하고 짜인 액션에 대한 두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영원히 이런 수준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image.png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류승완 감독은 달랐다. 그는 정확하게 한 발씩 발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 걸음씩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섭도록 정확하게 딱 그만큼씩. 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이 가진 한계를 조금씩 지워가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영화 [휴민트]는 이제 거의 그의 영화에서 우려할만한 점을 찾기 어려운 정도로 발전한 것도 모자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멜로까지 장착한 채로 나타났다. 그는 이 영화에서 화려함이 아닌 공백으로도 화면을 가득 채울 줄 알고. 자신이 잘하는 액션신에서도 절제를 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껏 자랑하려는 기세와 뽐내고 싶은 마음을 적절히 감추고 냉철함만을 남긴 채 , 숨을 죽이고 다가와 방심한 관객들의 관자놀이에 서늘한 총구를 들이댄다.




image.png 사진출처:다음 영화

현장에서만 존재하는 공기로 영화를 채우는 것을 몸소 깨우친 그는. 적통이 아닌 자.라는 단점을 훌륭하게 뒤집어버린다. 분명히 눈앞에서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가 펼쳐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독에 대한 찬사가 먼저 나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가이드 없이 배우느라 수없이 읽어 들여야 했을 현장에서의 노력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감히 “잡종의 습격”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 감독 특유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반열에 당당히 오른 그에게 한동안은 박스 오피스의 왕좌가 머무를 것이다.



[이 글의 TMI]

류승완 감독님의 오답노트를 훔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와 비판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아는 멘탈도.



#휴민트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최신영화 #한국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칼럼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Cinelab #Cinelab크리에이터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목요일 연재
이전 14화눈물자국 있는 말티즈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