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풍의 언덕] 리뷰
이 글은 영화 [폭풍의 언덕]과 원작도서의 스포일러를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다.
분명히 영화 자체가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좋으냐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는. 원작과 작품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그날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2026년도에.
우선 좋다고 생각했던 지점부터 짚어보도록 하자. 워더링 하이츠의 거센 바람과 등장인물들 사이의 평지풍파를 굳건히 이겨내던 활자 안에 갇힌 모든 장면들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하다는 말이 마침맞게 들어맞을 정도였다. 그만큼 시각적으로 재현한 원작 속의 무대는 완벽했다. 캐시(마고 로비)와 히스클리프(제이콥 엘로디)의 머리칼을 흩트리는 바람의 온도마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 무대 안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캐시의 재정 상태에 따른 의상의 변주들도 좋았다. 히스클리프를 잃은 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하는 듯한 그녀의 기분처럼, 다채로운 꽃잎들이 피어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또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넘을 수 없던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꽤 컸다. 주인집딸과 주워온 집시 정도의 사이가 조금씩 친한 친구가 되고, 의존할 수 있는 지지대가 되고, 추억이 묻은 상처가 되더니 결국 연인이 되는 과정은. 원작에서 이런 두 사람의 해피 엔딩을 바랐을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판타지의 실현처럼 보였을 테니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원작의 팬들도, 영화만 감상하려는 관객들도 놓치기 시작하는 지점이. 변주를 주려면 완벽하게 비틀어 놓았어야 하던가. 혹은 원작의 차용을 영리하게 해왔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사이에서 완벽하게 실패한다.
그 패배에 있어 큰 지분을 가진 것은 넬리(홍 차우)의 존재이다. 원작에서 두 사람은 "사회적인 통념"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큰 걸림돌 때문에 서로에겐 분신 같은 존재를 잃게 된다. 그리고 훗날엔 오히려 이를 이용해 아예 가문 자체에 복수를 하려는 히스클리프라는 괴물을 성장시키게 된다.
그러나 넬리의 호작질(손장난의 사투리)은 지독하다 못해 서로를 갉아먹는 러브 스토리의 대명사를, 한국에 있는 카페 수만큼이나 감흥이 하나도 없는 불륜극으로 격하시켜 버린다. 또한 영화가 자랑해 마지않던 영상미마저도, 초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힘이 빠지기 때문에 이런 초라함이 더 극대화된다.
애초에 완벽하게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면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원작의 뼈대중 하필이면 이 작품이 차용해 온 것은 금기된 사랑이라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모티프는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재연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더 나가봤자 삼류에도 못 들 야한 영화 정도로 그쳤을 테니까.
게다가 이 영화는 이미 제약이 있는 틀 안에서도 원작의 반 정도 되는 히스클리프의 복수를 잘라내 버린 후였다. 그러니 남는 것이라곤 소재를 예쁘게 꾸미는 것 밖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구조적으로 불만이었던 툭 튀어나온 부분은 전혀 손을 쓰지 않은 채 인테리어만 주야장천 손대고 있으니. 원작을 읽은 사람의 불쾌함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애절함 따위는 마음에 단 하나도 와닿지 않은 채로. 영화라는 모델 하우스에서 인테리어만 실컷 구경하다 나온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관객의 마음은 공허한 언덕보다도 더 비어버린 채 영화관을 나서게 된다.
[참고 1]
호작질:가락질을 하거나 무엇을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치는 짓. 또는 물건을 망가뜨려 놓는 짓.
[이 글의 TMI]
2월 말 경에 제 개인 팟캐스트에 원작 X영화를 비교하는 [원작 유전자 연구소]가 론칭될 정입니다. 첫 작품은 당연히(?) [폭풍의 언덕]이 될 것입니다. 많관부(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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