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넷] 리뷰
이 글은 영화 [햄넷]과 원작소설[햄닛]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4월 중으로 개인 팟캐스트에 원작과 비교한 콘텐츠가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사실 원작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그것도 클로이 자오 감독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향기였다. 원작에서 아그네스(아녜스)를 휘감는 신비한 분위기는 그녀가 다루는 자연의 약초가 뿜어내는 분자들의 움직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를 지배하는 듯한 향기에 대한 묘사가 영화에서는 많이 삭제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실망을 하지는 않았다. 아그네스가 영화 속에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고난의 길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기꺼이, 완벽하게 아녜스가 된 제시 버클리는 이런 허망함(?)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머무르는 모든 장면에서 향기를 입힌다. 아녜스가 자신 앞에 펼쳐진 아픔의 길을 자박자박, 걸어가는 모든 걸음걸음마다. 고뇌를 담은 발자국에는 짙고 생생하게, 비통함을 담은 자취에는 쓰고 아리게.
그만큼 그녀의 모습은 생생하다. 덕분에 아이를 먼저 잃은 부모의 고통 같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고통도 찾아와 마구마구 문을 두들기며 필사적으로 마음속으로 침입하려 애쓴다. 마침내 문을 부수고 밀어닥치는 불청객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어느새 아녜스의 마음과 동화되어 그녀가 이끄는 대로 느끼고. 그녀가 걸은 발걸음 뒤에서 눈물을 훔치게 된다.
원작만큼,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아녜스만으로도 부족했던 걸까. 감독은 소설 속에서는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린 적 없는 아녜스의 남편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또 뒤켠에 숨겨두어야만 했던 런던에서의 모습도 무대 위로 올린다. 덕분에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 몹쓸 성과주의자 정도로만 보일법 했던 장갑 장인의 큰아들의 마음도. 더 절절하고 뚜렷하게 , 자신에게도 애끓는 부정이 있음을 해명해 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두 사람, 한쌍의 부부,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가 화해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서로가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억해 내는 방법을 그려내는 후반부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극적이다. 전반부가 소설의 시점을 고스란히 따라가며 그들의 서사를 담담히 요약해 내는 분위기가 수더분했기에 더더욱. 그러나 그 와중에도 천천히.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이 상처 입은 자들은 떠난 자에게 손을 흔들고, 남은 자들의 어깨를 다정히 쓰다듬는다.
드디어 미련, 혹은 두려움을 벗어던진 채 안녕을 말하는 햄닛을 보며. 아녜스 부부도 이제는 아들이 건네는 인사에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글의 TMI]
전반부는 원작과 대사까지도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축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원작을 읽고 감상할 경우 장면장면 묻어있는 대사와 인물들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거의 마지막에 아녜스의 남편이 제작한 극을 보여주는 부분은 시점의 이동이 일어나고. 이마저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풍성하게, 혹은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다.
원작 소설에서는 아그네스 남편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리뷰에서도 최대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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