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라이드!] 리뷰
이 글은 영화 [브라이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말할 수 없었던 이유
영화는 처음부터 달려가기 시작한다. 특히 전반부에서는 브라이드(제시 버클리)가 뱉어내는 말들을 주워 삼켜야 하는 데다, 소화까지 시키느라 바쁘다 못해 끌려가는 느낌까지 든다. 이러다 체하는 게 먼저일 것만 같은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제발 그녀가 천천히 말을 좀 해줬으면. 혹은 더 나아가 제발 단 10초 만이라도 입을 다물어 주었으면. 하고 빌게 된다. 그만큼 그녀의 모습은 나를 포함한 영화 속 사람들에게 비정상으로 낙인이 찍힌 채, 머리채와 옷깃을 휘날리며 저 멀리 도망친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보이던 그녀가 점점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녀와 달리는 템포가 비슷해지는 영화 중반부가 되면, 정신 이상자 정도로만 치부했던 존재의 옆모습에서 슬픔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녀가 흩뿌린 모든 단어들은 존재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다. 그녀는 “미친”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혀를 강제로 잘린 것일 뿐. 그녀 안에서 억압된 모든 언어들은 그저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채는 순간. 그녀가 힘겹게 내디딘 모든 뜀박질은 마치 잘린 혀를 찾아다니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이건 첫 번째 레슨;문은 남자만 부순다
달리는 여자가 말을 토해내기 전의 세계는 견고한 규칙이 있었다. 모든 문은 남자들만이 부술 수 있다는 규칙. 브라이드가 열리지 않는 차 문을 잡아당기며 투덜거릴 때. 프랭크(프랑켄슈타인, 크리스천 베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창문을 박살 내 차를 훔친다.
이렇듯, 남자로 대변되는 그 당시의 목소리 큰 자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폭력을 휘두른다. 그것도 그녀들이 잃어버린 세치의 혀를 놀려서. 될 수 없다 말하고, 확실하지 않다 말하는 그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녀들이 이 당연한 진리를 거부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록 기득권들의 물리적 폭력 앞에서는 약자에 불과할지언정. 그녀들은 판 자체를 뒤집는 싸움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혀가 아직 붙어있는 자들은 언어를 뺏긴 자들의 대담한 모습에 당황하고, 지금 자신의 옆에서 벌어지는 소란 앞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비명만 질러댈 뿐이다. 그 잘난 혀를 달고서.
구마의식;괴물은 죽지 않는다.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세계가 이 한 사람(?)을 잡기 위해 달음박질치고, 결국 잡히지 않을 것만 같던 이 해괴망측한 범인의 옷자락이 손 끝에 닿으려는 찰나. 하나, 둘. 그녀처럼. 마치 비어있는 것처럼 검게 칠해진 입을 가진 여자들이 함께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딱 꼬집어 누구라고 말할 수 없어 그 어떤 처벌도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흡사 구마의식과도 닮아있다. 정확한 이름을 알아야만 이에 대한 대처도, 계획도 수립할 텐데. 그저 깡그리 모아 브라이드.라고 불릴 뿐이니까.
그녀들은 그저 기득권들의 트로피로 남을 뻔했었다. 그러나 브라이드는 "그렇게 하지 않기"를 선택했고, 보이지 않는 찬장을 깨고 뛰쳐나와 구마할 수 없는 괴물로 남기로 했다. 비록 여전히 그녀들의 목소리가 총탄세례에 파묻혀 들리지 않거나 늦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이 괴물이 또 한 번 목소리를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히 친절하지 않은 불쾌감을 지닌 채. 몇 번이고 총구 앞에 맞설 것이다.
괴물은, 죽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이 글의 TMI]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거두어 준-제목에서도- 프랭크에게 무한한 감사를.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초보 팟캐스터의 엉망진창 팟캐스트를 잠시라도 2위까지 올려준 모든 숨은 브라이드들에게 애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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