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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r 15. 2020

공길이의 삶

경계 인간으로의 한 평생

그림출처

<자신의 역사를 쓰기>

Q1. 자신의 역사 연표 만들기를 해봅시다.


공길이는 네 살 때 처음 줄을 잡았다.

네 살의 공길이에게 주어진 그 네 줄은. 공길이에게, 더 정확하게는 그때 당시의 공길이에게는, 전부였다. 굵기의 차이와 거칠기의 차이를 느끼며. 공길이는 배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공길이의 삶은 순조로웠고, 아름다웠다. 누구나 공길이의 모습을 보며 공길이의 빛남에 한 번쯤은 뒤돌아 보았다. 그 빛나는 아이의 곁을 지킨 것은, 아주 잠깐, 그리고 강렬하게 머물다 갈 줄 알았던 네 줄의 바이올린이었다. 그것도 공길이가 12살이  때까지. 아이의 전부이자, 유일한 친구였다.


새로운 학기까지 딱 두 밤이 남은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공길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모자이크 마냥 흉하게, 집의 모든 가구에 붙어 있는 붉은색의 딱지와 처절한 표정으로 거실 한가운데 앉아 있는 부모님이었다. 공길이는.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네 줄의 친구이자 분신을 잃게 되었다.


공길이의 남은 10대는, 그렇게 너무도 빠르게 지옥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공길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지옥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저항할 틈도, 힘도 없었다.


빚쟁이들이 늘 학교로 찾아왔기에, 공길이는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사정을 알음알음으로 알고 있는 담임 선생님의 도움 덕에 양호실에 숨어서 녹음파일로 수업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라도 되면 다행이었다. 몰래몰래 책을 바꾸러 교실과 양호실을 오가다 빚쟁이의 눈에라도 띄는 날이면, 그 날은 빈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주소를 말하라는 빚쟁이들의 협박 아닌 협박에 마음속으로 계속 다른 생각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자신만큼이나 상황을 모르는 반 친구들은, 매번 남자가 바뀌어 가며 찾아와 공길이를 찾고 늘 둘이서만 빈 교실에서 이야기를 하는 상황만을 근거로,  공길이가 원조교제를 하는 아이라는 소문을 만들어 퍼뜨렸다.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보려는 듯. 창틀에 매달려 자신을 쳐다보는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전교생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공길이의 마음속은 슬픔보다는 점점 분노와 악으로 채워져 갔다. 내 모두 너희를 찢어 죽일 것이다.라고. 공길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다짐했다.


공길이의 20대는. 10대의 지옥에서 20대의 지옥으로 건너갔다. 다시 말하면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공길이는 돈을 벌기 위해 룸소주방이라는 곳에서 카운터 자리로 가게 되었다.


밤은 참 화려한 세계였다.

하지만 그림자가 있어야만 더욱 화려하다는 것을 공길이는 알게 되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은 공길이에게 성추행을 넘어서는 말들을 해댔고. 이미 그런 시시한 농담에 이골이 나버린 공길이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계산을 하다 신체적인 접촉을 하려는 손님이 있을 땐 말이 달랐다. 공길이는 옆에 있던 계산기를 집어 들어 손님에게 던졌다. (성격 더럽) 고소당할 것을 염두에 두고 한 행동 이건만. 오히려 손님은 아무 소리 못하고 계산만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까지 하며 나갔다. 조금이라도 덜 비틀거리기 위해 정신을 붙잡아 가며 가게를 나서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공길이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 뒤로 공길이를 우습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끝장을  생각을 하고 덤비는 사람에게는 절대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공길이는 드디어 그곳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마음이면. 어찌 됐건 해볼 만하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갈 곳은, 아니 더 정확하게 공길이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대학생은 아니었지만 일반고등학교는 나왔기에, 공장에서도 공길이에게 우리랑 맞지 않는다는 말을 그 누구나 서슴지 않고 했고,

어디에나 있는 “보통의”알바를 하기에는 공길이는 너무도 경험이 없었다.

부모님 두 분이 살아계신 것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직업이 고위 공무원이었던 것도. 비싼 취미를 가졌던 것도. 어째서인지 주위의 사람들은 공길이를 곱게 봐주지 않았다.

애매한 .

그것이 공길이가 가진 사회적 위치였다. 줄 위를 오고 가던 손가락이, 이젠 마치 공길이의 인생이 된 것 같았다.


손가락이 미끄러져 제대로 된 음을 짚지 못해서 틀렸다고.

비브라토를 제대로 못하니 표현을 해내지 못해서 틀렸다고.

이렇게 명확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공길이가 연주해 가는 인생은 마치 자세히 들으면 느리고 거슬리게 반음 낮은 연주처럼.

애매하다고. 다들 그렇게 입 모아 말했다.


공길이는 그 애매하다.라는 말이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는 캐치 프레이즈처럼 굳어질 까 봐 두려웠지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렇게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공길이의 초라했지만 아름다웠던 20대는.  벼랑 끝에 있었고, 사람들은 신이 나서 공길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줄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공길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위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는  외에는 아무것도  수가 없었다.


그 줄이.

자신이 타고 있는 줄 자체가 느슨해져 있음을,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죽어라 버텨오던 그 무대 자체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공길이가 30대에 들어서면서였다.


그렇게 비주류라고.

너의 인생은 애매하다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쩐 일인지 공길이는 가장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토록 진절머리 내며 쓸모없다고 부정하는 모든 것들이. 공길이에게 생채기를 내고 아물면서, 두꺼운 갑옷을 입혀준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너무 일찍, 그리고 가혹하게 던져졌던 공길이에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단 하나도 쓸모없지 않았음을. 그 억울하고 참담했던 날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이제는 웬만한 것들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을. 그제야 공길이는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버렸으면. 혹은 지워져 버렸으면 하고 저주를 퍼부었던 20대의 자신에게 사과를 해야 함을. 공길이는 깨달았다.


이제야 자신의 몸을 겨우 뉘일 곳을 찾았건만.

공길이는 자신이 뒤에 버리고 온 20대의 공길이를 다시 찾으러 줄을 타야 했다. 이 판을 바꾸고. 아직 울고 있을 그 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다시 돌아오리라. 하고 공길이는 마음을 먹었다.


공길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지나온 때 묻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는 줄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길이었기에 어땠는지. 마치 그때의 기억들이 트라우마처럼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다들 이제는 잊으라고. 이제는 제발 줄에서 내려오라고 그리 만류했지만. 공길이는 알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오는 . 그리고 사과를 하는 . 또한   다시는 자신 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줄을 잘라버리는 것이 자신의 남은 인생을 바쳐해야  일이라는 것을.


공길이는 물을  모금 꾹꾹 눌러 마시고.

다시 몸을 돌렸다.

한번 놀아볼까.라는 덧없는 말장난을 중얼거리며. 공길이는 다시 왔던 길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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