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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Jun 05. 2020

한나, 생존을 넘어 용서를 빌다.

느낌의 진화

그림출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건조하고 차갑고 투박했던, 마이클의 사랑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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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는, 과거의 좋은 순간을 한층 더 멋진 순간으로, 심지어 엄청나게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좋은 기억에서 멋진 기억으로, 멋진 기억에서 특별한 기억으로의 변신은 놀랍고도 흥미롭다. 기억의 소재는 재분류되고 재평가된다. 기억은 윤색되고 조미료가 더해진다.-190p

과거의 이미지를 회상하는 것은 상상을 할 때 필수적이다. 그리고 상상은 창조력의 기반이다-132P
한나;더럽고 아픈 꼬마에 불과했던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의 이름 

성홍열을 앓았던 어린 마이클은, 좁고 더러운 골목에서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한나가 자신을 도와주었다.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 위해 다시 찾아간 마이클은 한나에게서 풍기는 성숙한 여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렸고. 둘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한나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나중엔 마이클도 즐기게 된 습관이었지만. 늘 그녀는 사랑을 나누기 전엔 책을 읽어 달라고 했고 마이클의 낭독에 울기도 웃기도 했다. 그녀의 감정 상태가 마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마이클은 그녀에게 책을 읽어 주는 일에 빠져들었다. 


한나는 대체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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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곤충들은 개체 수준으로든 집단 수준으로든 짝이나 동료가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고, 우주 안에서 자신이 차지한 위치에 질문을 던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필요성이 생기면 반응한다. 그들의 행동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단 한 가지의 선택지 밖에 없다-37p
한나; 그러다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의 이름

그러나 한나는 묘하게 자신을 밀어냈다. 늘 일정 거리 이상은 가까이 오지 않았고, 자신을 꼬마(Kid)라고 부르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곤 했다. 일터에 찾아온 마이클에게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한나에겐 정확하고 확실한 규율이 있었고 마이클은 그 규율 사이에 끼어 한나의 마음의 중앙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롯이 한나만을 원하는 마이클에게는 그 사실이 답답하고 속상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나는 결국, 마이클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물건과 마이클의 유년기를 함께 욱여넣은 가방을 메고.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성급하고 거칠게 찢긴 구멍만 남은 마이클의 마음은, 8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야 겨우 아물 수 있었다.  


재판장님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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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 힘겹게 나아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49p
한나;매달 아우슈비츠로 사람을 보낸 혐의를 자백한 피고인의 이름

그런 복잡한 감정을 한 번에 불러일으켜 자신의 온몸을 감싸게 하는 이름을 가진 한나를 법정에서 만난 마이클은, 한나를 둘러싼 사건의 진실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피고인 한나 슈미츠는 문맹이며, 그 결정적인 서류 역시도 그렇기에 가짜라는 것을. 단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놓은 comfort zone에서 나오는 것이 싫었던 도피자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미이클 자신은 그 도피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고, 지금 이 재판 역시도 그런 태도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마이클은 나치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그녀와 혹시라도 같은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다. 피고인의 무기징역형을 지켜보며 눈물만 흘릴 뿐. 용기 내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려 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에 그는 발길을 돌리고야 만다. 그렇게 영원히 잊힐 것이라고 생각한 채로. 이번엔 마이클이 한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The,,, the,,,,the,,, the.... the!!(나의 오열 포인트)
생명은 물질의 질서 정연하고 규칙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그것은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넘어가는 경향에 전적으로 기초한 것이 아니라 현재 유지되고 있는 질서 상태에 기초한 것이다. 슈뢰딩거는 이렇게 물었다. "생명의 독특한 특성은 무엇일까. 어떤 때에 ㅇ한 조각의 물질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그리고 스스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이 "뭔가를 할 때"이다. 즉 움직이거나 외부 환경과 물질을 교환하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하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생명이 없는 물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활동을 지속해"나갈 때이다. -61p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아. 내 생각이 어떤지도 중요하지 않아.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한나
한나;자신의 comfort zone에서 기꺼이 나오려는 사람의 이름

그때의 어렸고, 한나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휩싸인 마이클은 볼 수 없었다. 한나가 얼마나 위협받고 있음을 느꼈는지를. 한나는 문맹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싫어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을 것이다. 범죄자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정상을 위한 느낌"하나만을 따라 그곳까지 왔고, 그런 그녀의 삶 중간에 마이클을 만났을 뿐이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그녀의 고달팠던 여정에 대해 긴 시간에 걸쳐 깨닫고 나자. 마이클은 그녀를 그렇게 암흑 속에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이클은 예전의 자신이 그랬듯, 한나에게 자신이 소리 내어 읽은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냈다.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로, 때로는 숨죽여서. 한나가 자신의 품에 안겨 마이클의 목소리를 들으며 엉엉 울던 그때를 그리워라도 하는 것처럼. 


한나는 마이클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글을 배웠고, 마이클에게 편지를 썼다. 여러 번이나.
하지만 마이클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리고 한나는 출소하기 하루 전.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다. 


하지만 이 통(Box)만큼은 받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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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겪는 인간은 이를 보상하고 고치고, 심지어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는 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고통뿐만이 아니다. 정 반대로 다양한 상황에서 행복과 황홀감을 경함 할 수도 있다. -21p

각 존재들이 존재하는 상태로 버텨내기 위한 노력이 바로 존재의 정수이다-54p
마이클; 한나를 닮아 자신의 치부를 치유하기로 한 사람.

한나가 죽기 전, 마이클은 한나를 만나 질문을 던졌다. 감옥생활 중 당신은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고. 그러자 그녀는 늘 그래 왔던 무뚝뚝하고 서슴없는 말로 글을 배웠다.라고 답했다. 마이클은 실망했었다. 마치 그녀가 그 어떤 것도 반성하지 못한 것만 같아서. 


하지만 마이클은 한나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그렇게 돌아서 버렸던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매정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늘 등을 돌렸던 쪽은 자신이었다. 그녀에겐 생존이 문제였지만, 마이클은 늘 그녀에게 이상의 것을 갈구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정했다. 


퉁명스러웠지만, 결국엔 자신의 죄를 뉘우친 한나의 유언에 따라 그녀가 작게나마 모은 돈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 주고자 했다. 날 선 말은 아니었지만, 생존자인 그녀는 마이클을, 그리고 죽은 한나를 저주하는 듯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결국 한나의 진심은 아주 조금이지만 생존자의 마음을 살짝은 어루만져 줄 수 있게 되었다. 


한나. 여기에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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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에는 눈이 없다. 나무만이 볼 수 있다-르네 샤르

그는 사이가 좋지 않은 딸에게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다. 그리고 몇십 년 전, 재판장에서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그 말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담담히. 그리고 솔직하게. 한나의 묘비 앞에서 마치 용서를 빌듯이. 


한나.

되뇔수록 아픈 그 이름. 

한나. 

하지만 칼로 가슴을 가르는 아픔도 참아내게 하는 그 이름. 

한나. 

다시 한번 마이클을 변하게 해 준 그 이름. 

한나. 

결국은 자신을 넘어선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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