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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y 21. 2020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도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그림출처

이미 익숙하시겠지만(?) 영화 셰임(Shame)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동 억제를 할 수 없는 남자, 브랜든
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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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사회적 유대감에 따르는 주된 이점은 부끄러움과 후회보다는 다른 사람과 공명할 수 있는 자제된 행동을 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65p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먹거나 동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성행위를 하거나, 엉뚱한 젤리를 사 왔다고 신랑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우리 인간은 사회적 유대감이 있을 때 보다 고립감을 느낄 때 이런 충동을 극복하기가 어려울 뿐이다-71p

빅애플(Big Apple).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의 애칭.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고, 늘 모든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 모든 것이 찬란해 보이기만 하는 뉴욕의 중심부에 성공적으로(혹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브랜든이 있다. 말끔하게 생긴 외모와 센스로 이성의 마음을 훔칠 줄 아는 이 남자의 머릿속은 안타깝게도 섹스로 가득 차 있다. 가학적이고 비정상적인 형태의 포르노로 그의 개인 컴퓨터가 물들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회사의 하드 드라이브마저도 그의 "더러운" 취향으로 가득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성적 충동을 억제할 수 없는 그는 회사의 화장실에서조차 자위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등으로도 연기하는 패스밴더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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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유대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그 뿌리가 너무도 깊기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면 사고의 능력도 손상을 받는다.-21p

우리의 개인적 감수성이 어떠하든 간에 특정한 유대감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손상받기 마련이다. 26p

깡으로 재기에 성공한(?) 비 조차도 부러워할 정도의 화려한 밤거리의 조명과 콜걸, 파티들이 브랜든을 감싸지만, 유독 카메라가 그가 혼자 있는 모습을 비추는 장면이 많은 것은, 그는 스스로 부정하고 있지만 그가 매우 외로운 상태임을 암시한다.


 물론 혼자라는 상태가 외로움을 말하는 대명사인 것은 아니다. 외로움을 타는 것 자체가 어떤 사회성이나 사교성의 부족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가 그 외롭다는 상태가 너무 오래되어 그는 이미 그런 "특수한"상황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버렸음을 의미한다. 한 예로, 그는 회사에서 호감을 나누는 여성과의 "정상적인"성관계를 맺는데 실패하고, 그 패배감을 지우기 위해 콜걸을 불러 그가 원하던 형태의 사랑을 나누고서야 겨우 욕망을 채울 수 있었다.



사랑에 목마른 여자, 시시
너라는 사람 하나 외엔 바라는 것이 없다는 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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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외로움을 탄다. 배고픔과 통증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48p


그런 완벽한(?) 브랜든의 일상은 한 도둑의 침입으로 조금씩 변화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다행인 것은 그 도둑이 아무것도 훔칠 생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불행에 가까운 것은 그 도둑이 다름 아닌 여동생 시시라는 것.


 오빠인 브랜든이 하도 연락이 되지 않자 무작정 오빠의 집으로 찾아온 시시는 티 없이 깔끔한 성격을 가진 브랜든의 집에 묻은 먼지처럼. 겉도는 모습을 보인다. 헤어진 남자를 잊지 못해 울부짖으며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도. 컵도 쓰지 않은 채 오렌지 주스를 팩째로 마시는 모습도. 자신이 일하는 재즈 클럽에 와서 자신이 노래하는 모습을 봐 달라며 어리광을 부리는 모든 모습도, 브랜든에게는 그저 성가시고 어리광 부리는 아이처럼만 보일 뿐. 브랜든은 하나밖에 없는 혈육에게조차 따스한 눈길을 함부로 허락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담아 노래하는 시시의 모습에, 브랜든은 결국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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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서 특히 고약한 점은 외로움 그 자체가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적어도 다른 한 사람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외로움이 만성적일수록 다른 사람의 협조를 얻어내기가 더 힘들다는 모순을 말한다-52p

오빠에게 자신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어 한껏 들뜬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던 시시는, 밤의 조명 아래에서만큼은 프로가 되어 보란 듯이 멋진 노래를 브랜든에게 안겨준다. 매력적인 시시의 모습에 브랜든의 직장 상사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껴 손목을 끌어당기며 스킨십을 시도하지만. 그녀의 손목 가득한 자해의 흔적들이 잠시 대화를 가로막는다


술의 힘이었을까. 브랜든의 상사는 슬그머니 대화를 이어 브랜든의 집에서 그녀와 동침을 하게 되지만, 그런 원초적인 신음소리를, 그것도 여동생의, 벽 하나를 두고 마주해야 하는 브랜든은 그녀에 대한 미움과 괴로움으로 몸서리치는 밤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동생이라니. 브랜든은 다음날 아침 시시를 다그쳐 보지만. 시시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그들의 작고 큰 싸움은 계속 쌓여만 간다.



극과 극의 외로움에 상처 받은 둘의 최후
우린 그냥 외로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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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능, 금전적 성공, 명예, 존경 중 어느 하나도 주관적인 고독감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23p

성인으로 성숙하려면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감정과 충동을 제어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외로움은 그런 제어 능력을 약화시킨다-228p

어쩌면 브랜든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자위를 하다 동생에게 들켰을 때도. 음란 채팅이나 포르노를 들켜 버린 것도.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잘못임을. 하지만 브랜든은 오히려 그런 막무가내인 씨씨를 윽박지르며 제대로 살라고 한다. 자신의 세계에 점점 균열을 일으키는 시시는 그런 오빠에게 계속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단지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자꾸 모든 것이 망가질 뿐이라고.


오빠이기 때문에. 가족이기 때문에. 자신을 돌봐줬으면, 그리고 함께 행복했으면. 하는 소망을 가득 담은 시시의 말을 브랜든은 애써 무시한 채. 자신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다. 게이, 남자 친구가 있는 여자, 그리고 그룹섹스. 브랜든은 자신의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을 풀기 위한 수단으로 성행위를 택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토록 즐겼던 행위는 브랜든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아마 그때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까지 왔음을.

 

두 사람의 외로움을 없애기 위한 방법이 만난 그 순간에 결국 두 사람 모두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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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천 개의 가닥이 우리를 우리 동료 인간과 연결해준다. 교감의 실인 이 가닥들을 따라 우리의 행동이 원인으로 전달되었다가 다시 결과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헨리 멜빌, 155p

서로의 몸을 맞대고 지내는 원숭이 사회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결코 진짜 원숭이가 될 수없다. -177p

자신의 고통에서 물러나 앉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요구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성공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작은 발걸음과 겸허한 기대로 시작되지 않는가?-309p

이 불안함은 대체 무엇일까. 브랜든은 이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애써 무시하려 했을 뿐. 집으로 돌아온 브랜든을 맞이한 것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 점점 몸이 차가워져 가는 시시였다.


다행히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 누워있는 시시의 옆에서, 브랜든은 그제야 여동생의 손목을 제대로 쳐다보았다. 많고 많은.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던. 그러나 결국 흉터와 상처, 기억을 남겼을 자해의 역사를 담은 자욱들. 동생이 어떻게 살아왔을지 그제야 브랜든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애써 무시했던 또 다른 사실 중 가장 큰 것은, 성가시지만 시시와 있으면 즐겁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균열이 가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갇혀있는 좁디좁은 감옥이었다는 것도.


단지 자신이 없어 그토록 선을 넘으려 하는 시시를 미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시와 함께한 날들은 그가 먼저 그어놓은 선을 저 멀리까지 밀어내기에 충분했고. 조금은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브랜든은 달리기를 시작한다.


 빅애플(Big Apple).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의 애칭.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고, 늘 모든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 그리고 그곳에는 상처 입은 브랜든과 시시가 있다. 조명이 세지는 만큼 반비례하는 검은 그림자 속에서 그들이 웃으며 나오는 날이 반드시 있기를.



추신.

이 영화를 근친으로 보는 시각도 있음을 알고 있으나 본인은 그리 생각하지 않으므로 영화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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