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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라 미숙해..

남들이 모르는 이면

by 혜선

사람은 누구나 4가지의 모습들이 있다.

그런 4가지의 모습을 창문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4개의 창'이 어느 정도 심리학에 관심 있거나 혹은 관심이 없어도 관련 분야로 방송하는 이들을 챙겨보는 사람들한텐 흔하게 알고 있는 이론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남들도 아는 내 모습,

내가 알지만 남들은 모르는 내 모습,

나는 모르지만 남들은 아는 내 모습,

나도 모르고 남들도 모르는 내 모습.


나는 나에 대해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아내고자 자아탐구를 하며 살아왔다, 정확히는 나만이 아닌 대다수가 그러고 살아오게 된다.


취미, 특기, 취향, 강점, 약점, 장점, 단점 등등

자기소개를 하면서 남들에게 알린 말들이 거짓으로 꾸며낸 듯해도 그게 사실이 될 때도 있고, 진실이라 믿어도 거짓이 되는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MBTI는 INTJ-T 유형이다.

과거에는 MBTI 보단 혈액형이나 별자리를 궁금해하며 장난 삼아 찾아보고 다양한 콘텐츠를 반정도 진실이라 생각하며 즐기고 봤던 기억이 있다.

난 감정적이고 누구에게나 XXFX로 오해받는 사람임에도 정식 검사를 할 때마다 나오는 내 유형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내가 일을 하거나 활동하는 이미지는 결국 INTJ라는 유형과 가장 일치하단 것이 검사지로 나왔으니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했다.


냉정한 사람, 차가운 사람, 사회성 결여된 사람, 공감 부족, 로봇 같은 사람... 온갖 이야기들이 나를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짓게 만들었고, 한창 사회성을 배우고 길러야 했던 시기에 배우는 과정이 부족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비교적 낮은 사회성이 더욱 나를 '이런 사람'에 단정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회성 검사는 점수에 따라 반사회적 혹은 사회적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뉘곤 했다, 난 사회성이 낮으니 반사회적 경향이 있다로 판별됐고 강제적으로라도 사회성을 늦게나마 기르고자 나서다가 실패 경험만 쌓아왔다. 이에 시달리며 스스로도 '사람을 가까이 못하겠는 게 이런 이유겠지' 고정관념을 가지고 더욱이 사람을 피하게 됐다.


내게는 소수의 친구, 다수의 지인, 더 많은 불특정 다수의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중 나를 싫어하는 지인도 친구도 굉장히 많고, 친구라 해도 극소수기에 연락 자체를 잘 안 하고 사는 편이다.

다들 바쁘게 살 텐데 내가 먼저 연락해 봤자 분위기만 깨겠지, 혹시라도 내가 연락한 걸로 날 싫어하게 되면 상처만 되겠지, 실수하게 되면 어차피 날 떠날 텐데.. 실패 경험이 고스란히 내 내면에 쌓여가며 사회성을 기르고자 노력하는 것도 친구를 사귀거나 사람들과 교제를 하는 것도, 믿음을 가지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난 내 MBTI 유형에 '이러한 성향이 있다.'라는 결과는 좋아하지만, '이러한 사람이다.' 하는 비유는 좋아하질 않는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T는 전부 이성이 감정을 잡아먹었다고 생각하나?', '처음 MBTI 유형을 알아낸 학자는 이럴 생각이었던 걸까?', '무슨 생각으로 이런 고정관념을 심는 거지?'하고 비난하기에 이르렀고 특정 유형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내 유형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다 고정된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싫고 더는 고정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아는 나는 늘 부정적인 면부터 보기에 위기를 대처할 수 있고, 게으르지만 성실해해야 하는 일은 잘 수행해 내고, 감정이 앞서기에 더욱 생각을 많이 해서 부정적 감정이 드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행동하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금세 지치고 귀찮고 피곤해해서 실행에 옮기질 않는다.


계획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 스스로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일정과 시간을 고려하고 지내며, 그저 나태하고 참여하거나 나서는 등 행동하기에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다 느껴져서 피하는 이유로 '까먹었다'는 둥 핑계를 쉽게 대곤 한다.


남들을 위하려는 이타적인 마음이 강하지만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늘 이겨서 타인을 위해 나서는 일은 내 안정성이 보장된 때에야 하고, 내 손해와 타인의 이익을 비교해 손해에 비해 이익이 있어야만 돕고자 나서게 된다.


그런 난 나 자신을 이기적으로 생각하기에 딱히 나 자신을 제외하곤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선 아직도 잘 모르고, 사랑하고 싶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랑을 하며 진실한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남이 울면 눈물부터 나고,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일에는 끝까지 잘하고자 악착같고, 경쟁심이 강해서 무조건 지는 조건이어도 이기려고 없는 힘도 다하고, 스스로 혹사하며 노력해서 해낸 걸 결과가 나온 뒤에야 '이정돈 내 재능이니까, 타고났는데 뭐.' 생각하고 금세 노력에 안일해져 버린다.


여기까지가 '나는 알지만 남들은 모르는 내 모습'이고 나를 모르는 불특정 사람들이 보고서 심각하게 꼬여있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남들이 아는 내 모습이 내가 아는 내 모습과 너무도 달라 간극을 피곤할 만큼 심하게 느낀다.


타인에게 나는 남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헌신적인 사람, 모두가 좋아하고 즐겁고 행복해지게 하기 위해 뭐든 하는 착하고 좋은 사람, 매사 열심히 살면서 자기 할 일을 짧은 기간 힘들게 바쁘게 해내면서도 남들을 돕고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 뭐든 잘하는데도 너무 많은 일을 해오고 바빠서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해 어떻게든 봉사하려는 사람,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없이 열심히 사는 인재..


나를 터무니없게도 너무도 과하고 좋게 보려 한다. 그들은 내 일정을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음에도 말이다.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내 모습은 열심히 살고, 뭐든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맡은 일을 기한 내에 성공적으로 마치려고 앞서 나서서 열심히 하고자 하고, 남들이 다 일할 때 혼자 놀지 못하고 도우려는 사람.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건 서툴러서 툭하면 울지만, 타인을 위한 감정은 앞서서 부당한 일에는 '아닌 건 아니다' 외쳐주는 사람.

설명이 많고 잔소리가 심하지만 맞는 말만 해서 듣다 보면, 설명이 필요한 곳에서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분위기도 잘 살피는 줄 알았는데 대화 흐름도 이해 못 하는 허술한 사람.

그럼에도 생활하는데 모자라지 않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은 하는 사람.

너무도 순수해서 좋게 순수한지 나쁘게 순수한지는 몰라도, 생각하는 방식이 꾸며지거나 더럽혀 지지 않고 확고한 주관으로 맑은 사람.

그렇기에 자기만 잘나 보이고 착해 보이려 하는 재수 없는 사람.

너무 독특하고 눈에 띄는데 막상 대화하면 소통도 잘 안 되는 사차원적인 사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서 혼란감만 주고 너무 스스로를 자만하고 고집부리는 사람.


난 내 주관이 너무도 뚜렷해 흑백논리가 강하다, 양가 편차가 심하다, 고정관념이 뚜렷하다, 고집이 세다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길 들어왔고 나 또한 맞는 말이라 수긍할 수밖에 없지만, 주관이 확고한 건 기준이 뚜렷하고 그 기준에 너무 맞춰 다른 군더더기들을 고려하지 않고 판단한단 점이 맑은 사람으로 보여왔던 것이었다.


맑은 물에 비친 대로 볼뿐, 물아래 물고기들이나 주변 생태계나 날린 모래 등등 환경적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물이 맑아 보이니 맑다 판단 한단 것이다.


난 나만이 느끼기에 남들이 알려줄 수 없는 내 감정에 대해서 조차도 잘 알지 못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것 하나 잘 알지 못하기에 늘 나 자신만큼은 부정적인 면만 보지만, 내가 싫어하는 나의 MBTI 유형 속 빗대어진 캐릭터들을 보면 나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난 어쩔 수 없는 사고형이다.

감정이 아무리 섬세하고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라도

'공감'보다 '이해'를 하는 '느낌'보다 '생각'이 먼저 나오는

T인 게 분명하다..


나는 나 자신을 냉혈한 마냥 로봇 같은 사람으로 보진 않지만, 타인은 날 그렇게 볼 수도 있단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넘기게 된다.

그저 유행하는 밈을 인용하며 'T라 미숙해' 하고 적당히 나 자신에게 타협해도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티라미수는 달콤 쌉싸름해 맛있지만, T라 미숙한 건 내겐 어떤 상황이든 생각보다 너무도 쓰고 아픈 일이었다.

미숙한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마음들은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나를 모르는 타인에게도 오해만 생기고 상처만 주는 일이니까.


같이 살아온 가족을 제외한 친척들도 내 친구들도 지인들도 전부 나에 대해 열심히 알아서 살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내 글을 보지 않는 다면 앞으로도 평생 나와 오랜 기간 같이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보며 '바쁘고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볼지 모른다.


그렇기에 굳이 난 나에 대해서도 그리고 내 글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환상을 깰 필욘 없다, 난 남들이 모르는 나도 소중하니까.

내가 그저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 가까워 지려 남몰래 또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난 나 자신에게만큼은 티라미수에 곁들여진 카푸치노 같은 사람이고 싶다.

내 자세한 일과와 일정들은 앞으로도 쭉 평생의 비밀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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