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

이별이 어려운 나에게.

by 혜선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기분을 누구나 느낄 수 있던 거 같다.

누구에게든 이별은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사별은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이별 아닐까 싶으나, 그 외에도 이별의 종류는 많다는 걸 어렴풋이 안다.


사람은 매일 만나고 이별하고 산다.

누군가를 지나치는 와중에도 그 사람과 만나고, 이후 헤어진다.

인사 한마디 나누면 그게 인연이 되기도 하지만, 각자의 집에 가는 그 길로 헤어진다.


헤어짐의 다른 말은 이별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별을 하지 못하는 난, 내가 가장 최근에 했던 이별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오히려 받아들이는 방법을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글로 쓰면.. 그땐 받아들여질지 모르니까.


좋아했던 상대가 있었지만, 싫어할 수 밖엔 없었다.

좋아함이 어떤 건지 조차 알지 못하는 아직 너무 미숙한 나였기에 함부로 좋아한다 할 수 없었다.

그저 싫어하는 건 어떤 건지 알 뿐,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절실하게 좋아해 본 적이 없었던 거 같아 좋아한다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런 난 사람들을 싫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한다 하기에는 좋아함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건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모두를 좋아하는 동시에 모두를 싫어하는 셈일 수 있다면, 가장 잘 아는 상태인 싫어한다 하는 게 더 적합하지 않은가 싶었다.


그 사람도 그랬다. 믿음이나 관심과 별개로 자꾸 떠오르고 의지하게 됐지만, 좋아한다 할 수 없었다.

매일 생각하고, 꿈에 나타나고, 잠시 마주하는 시간을 의지하게 되고, 인사 한마디라도 하려고 신경 쓰게 되고...

순정만화에선 '사랑'이라 표현하지만 그런 두근거림은 딱히 없었던 거 같다. 난 그 사람을 사랑하진 않는다.


좋아함일까? 이별의 순간에는 아무 감정 없이 마음이 아팠다. 단순히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언짢으며, 이별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치 당연하게도 자연스럽게 다음에 또 만날 거처럼.


이별은 버려지는 기분이었는데 그렇지 않으니 너무 이상했던 거 같다.

내게 이별은 '버려진다'가 아니라면 '남겨진다' 둘 중 하나였는데, 최근에 겪은 이별은 '멀어진다' 였던 거 같다.

그 사람은 내게 어쩌면 최선이자 최고의 이별을 주고 간 듯하다. 그렇게 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후회하고 또 배워가게 되었다.


'그렇구나.. 더 못 보는구나..'

울고 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된다.

난 만남을 좋아하는구나,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깨우친 거 같다.

'난 그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했구나.'

그 하나가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울도록 하는 것만 같다.


이별은 아플 수밖에 없는 걸까?

울고 또 울고 나면 난 또 뭔가를 깨우치지 않을까?


더는 깨우칠 수도 없을 거 같다.

이별은 그냥 아픔이 동반하는 것,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 만남의 시간이 기억이나 마음 한 곳에 남은 체 더는 이어질 수 없음에도 다음이 있길 기대하는 마음.


사별 또한 더 만날 수 없음을 알지만 더 만나고 싶은 기대감에 더 아파하고

충분히 아파한 뒤에야 회상하게 되는 그런 것...


아픔을 수용하게 될 때 즈음이면, 난 그렇게나 만나길 좋아했던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자꾸 생각날 그 사람을, 꿈에도 나오는 그 사람을, 늘 함께 하고 싶었던 그 사람을

'그런 사람도 있었지' 하고 넘기게 될 거 같다.


잊기가 무섭고 잃는 감각이 두렵지만

울고 나면 그저 지나가는 이와 다름없었던 존재


지나가는 이와 다르다면 단지, 그 속에 깊이가 남아 기억 속에 남아 마음속에 남아 계속해서 나를 울리는 그런 존재


그런 존재를 더는 볼 수 없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날도 언젠간 오게 될 거 같다.

눈물 나게 아파하는 만큼 남는 것도 많았음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별은 흐르는 대로 수용하는 것이지, 억지로 이으려 하거나 잊으려 한다고 이어지거나 잊히지 않는 것이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혹시 부정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