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의미가 없다. 아니 제목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또 다른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이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한다."
-르네 마그리트
제목은 의미가 없는 그림들이 있다.
아니면 제목만 의미가 있는 그림들도 있다.
마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이 그렇다.
기괴함과 의아함, 새로움과 충격은 서로 다른 단어
같지만 결국은 같은 놀라움의 표현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한
'초현실주의 거장들 달리에서 마그리트까지'에서 느낀 생각들을 기록해본다.
1.
입장하자마자 마그리트의 '붉은 모델Ⅲ' 그림 앞에서 멈춰서 쉽사리 이동하기가 힘들었다.
마치 축구에서 페널티킥 순서를 정할 때 가장 경험이 많고 노련한
선수를 맨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하듯 이번 전시에서도
마그리트의 '붉은 모델Ⅲ'을 시작으로 기선 제압을 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그림의 배경이 되는 나무판의 질감이 너무
사실적인데 반해
전면에 배치된 발 같은 신발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전체적으로 더욱 더 기묘한 광경을 자아낸다.
아쉽지만 사이즈도 그렇고 질감과 특유의 분위기까지,
이 그림을 제대로 느끼고 즐기려면 무조건 원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멀리 해골의 얼굴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해골안에 또 따른 얼굴, 그 안에 또 다른 얼굴들이 보인다.
거리가 10미터고 20미터이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 그림은 그냥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다.
아니 그냥 달리이다.
달리의 그림들은 달리 그 자체이다.
80년도 더 된 그림이지만 슬프게도 저 얼굴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외 ‘스페인’, '아프리카의 인상', '비너스의 이비인후과적 머리' 등 전시회 내 달리의 작품들을 보면
천재적인 초현실주의 작가들 사이에서도 남다른 존재감과 개성을 드러내는 달리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치 블라인드 상태로 노래를 한 소절만 불러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가수처럼
달리의 세계는 너무나 확고한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3.
너무도 맑고 청명한 하늘,
그리고 녹색 들판을 가로지르는 오솔길..
그 자체만으로도 예쁘고 기분 좋은 그림이지만 이렇게
누구나 그릴 법한 그림에 마그리트는 자기만의 오브제들을 오솔길에 나열하며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완성시킨다.
오브제들이 없었다면, 멀리서 아름다운 풍경 속 사자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마그리트의 그림인지 몰랐을 것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이 대개 그렇듯이 '삽화가 된 젊음'은
익숙함에 익숙하지 않음을 덧대어 친근함 속의 친근하지 않은 기이함을 자아낸다.
4.
또한 금지된 재현의 경우 거울 속 남자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데 거울에 비쳤음에도 남자의 뒷모습이 투영될 뿐 앞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거울의 특성을 거스르는 장치를 통해 너무도 익숙한 광경에서 완전히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현실의 세계에서 자연의 특성들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되는 미술에서는
이렇듯 작은 변주를 통해 아주 큰 감정적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5.
마그리트와 달리 외에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에일린 아거 등의 그림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를 더 아름답고 멋지게 그리는 그림과
있는 그대로를 조금은 다르게 그리는 그림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어떤것이 더 좋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받아들이는 관람객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미 살아오며 많은 아름다움들을 경험한 어른들의 경우 익숙한 아름다움을 경험했을때의 편안함과 안도감보다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때 마치 어린아이의 시선처럼 작품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찰나의 순간들이 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6.
전시회를 보고 늘 그렇듯 가벼운 굿즈를 사서 돌아와
집에 전시해두며 다시금 생각해본다.
나의 글 속에서도, 그리고 일상의 순간 속에서도
작지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인생이 보다 새로워지고
활력을 얻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환경과 일상의 변화 속에서 경험한
번아웃과 무료함을 이겨낼 하나의 방법은 일상 속의 새로운 접근과 익숙함 속의
작은 변주를 통해 내 삶을 초현실주의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