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곧 현실이었던 예술가와 만나다
“나는 이상하지 않다, 나는 단지 평범하지 않을 뿐이다.”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 반 고흐 같이, 피카소 인 마이 바디.”
노래가사에도 나오고 녹아내리는 시계 그림으로
유명한 달리는 어떤 광기어린 삶을 살았기에 그런
작품들을 남겼을까?
동대문 DDP에서 진행중인 살바도르 달리의 전시
<상상과 현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을
위주로 불멸의 달리를 돌이켜본다.
달리는 달라.
달리는 다르다.
예술가들에게 다르다는 표현은 극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달리는 정말 대단하다.
그의 독특한 외형(수염과 눈빛)을 모르고 작품만
본다고 해도 여느 화가들과, 예술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도 초기 시절엔 정상적인(비정상과 정상의 개념이 아닌 그래도 좀 일반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어느정도 기반이 잡히고 화가로서의 정체성이 잡힐 시기부터 그림은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슈거 스핑크스와 갈라.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슈거 스핑크스’와 ‘로렌조 데 메디치 조각상의 재해석’이었다.
우선 슈거 스핑크스의 경우 전시 공간을 그림에
녹아들게 잘 꾸며 놓았는데 벽면의 색감과 분위기,
그리고 그림에 조명을 더해
마치 갈라의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보듯 광활하고
입체감 있게 구성해 주었다.
밀레의 역작 ‘만종’에 영향을 받아 제작했다는
이 그림은 만종에서도 느낄 수 있는 목가적인 풍광과 깊숙한 심연을 건드리는 채색의 분위기가 인상적인데
갈라의 뒷모습, 사막 같은 풍경, 입체적인 질감이 그림앞에서 한동안 멍때리게 만드는 최고의 한 점이었다.
(개인적으론 만종 외에도 ‘터너’의 안개 그림과도 분위기가 흡사하다고 느꼈다.)
집착과 편집
달리는 집착적이었다.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특정 오브제에 집착했던거 같은데
대표적인게 바로 시계와 사이프러스 나무이다.
여러 그림에 걸쳐 녹아내리는 시계와 사이프러스 나무가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로렌조 데 메디치 조각상의 재해석' 그림에도 여지없이 상징적인 오브제가 등장한다.
슈거 스핑크스와 더불어 가장 압도당하고 시선을 오래 빼앗긴 그림인데 마치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포스터를 연상케하는 전사의 모습은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좀처럼 떼지 못하게 되는
약간의 ‘스탕달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미켈란젤로의 무덤앞의 조각상을 보고 저런
그림으로 옮길 수 있으려면 대체 어떤 정신세계와
예술혼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할까.
조각상의 눈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고,
귀에는 녹아내린 시계가 걸려있으며,
그림과 사이프러스 나무의 풍경이 절묘하게
크로스오버되어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달리에겐 저 조각상이 저렇게 보였던 걸까.
아니면 오랜 시간 고민의 시간끝에
창작혼을 불태워 저런 작품이 탄생하게 된 것일까?
진실은 창작자인 달리만이 알고 있겠지만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기도, 즐거운 고뇌이기도 하다.
ETC. 재밌는 사실.
1.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달리의 작품들을 접하며
자라왔다. 그 증거는 바로 츄파춥스에 있다.
츄파춥스의 최초 디자인(로고와 포장 디자인 모두)은 사장과 친구였던 달리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직접 앉은 자리에서 신문지에 그려 만들어졌다고 한다.
2.
자신이 우상처럼 여기던 피카소의 역작인 ‘아비뇽의 젊은 여인들’을 달리도 그렸는데
피카소와는 또 다른 화풍이지만 그만의 자유로운 스타일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달리는 죽지 않았다.
달리는 자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과한 자신감이나 허세만은 아니었다.
육신보다 더 그 자체인 달리의 작품들은,
지금도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에서 문전성시를
이루며 전 연령의 관람객들과 만나고 있다.
아마 백년이 더 지나도 인류가 살고 있는 한 그의
그림은 계속 회자되고 사람들의 눈과 마음에 남아있지 않을까?
(다른 행성으로 이주를 한다해도 전시가 이뤄질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화가로서, 예술가로서의 달리는
자신이 남긴 유산들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이 곧 현실이었던, 뒤틀리고 녹아내려
시공간을 초월한 달리의 차원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유영하며 그와 만나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