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의 승률, 96%의 가능성

초인의 모습, 바모스(Vamos) 라파!

by 범섬
호주오픈을 보며 느낀 나달의 초인적 모습,
그리고 테니스 스코어에 담긴 미학


우승 시 강력한 라이벌인 페더러와 조코비치를 넘어서 21개의 '그랜드 슬램'을

가장 먼저 달성하는 선수이자 역대 최고의 선수에 한 걸음 먼저 나아가게 되는 상황,


하지만 3개의 세트를 먼저 가져가면 이기는 상황에서 벌써 0:2의 세트 스코어,

게다가 3세트 스코어는 2: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서브게임이지만 위기의 0:40 브레이크 포인트,

반대편에는 현재 가장 기세와 실력이 좋고 10살이나 어린 상대, 알고리즘이 계산한 승률은 단 4%..


이런 상황이 되었을때는 보는 사람도 실제 게임을

하고 있는 선수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흔들려야 인간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압박스런 클러치 상황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게 된다.


한 포인트만 잃으면 이기기 힘들어지는 최악의 상황


작년 US오픈에서 천하의 조코비치가 같은 상대에게 무너진 것처럼 나달마저 무너진다면

이제는 빅3으로 불리우는 페더러/나달/조코비치의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세대가 테니스계를 이끌게 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 뻔한 그 순간,


나달은 평소 목놓아 외치는 바모스(스페인어로 가자! 우리말로 화이팅과 같은 의미)를 자제하고,

어떻게 보면 의기소침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처럼 보일만큼 조용하고 차분한 상태로

한 포인트, 한 포인트 꾸준히 따라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새 TV를 통해 먼 나라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마저 분위기가 달라지는걸 직감하게 되고

코트의 공기만큼 선수들의 표정도 점차 바뀌어가는걸

지켜보게 된다. 이내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결과는 3:2 역전승, 라파엘 나달은 13년 만의 호주오픈 2번째 우승이자 그랜드슬램 통산 21승을 이룬 지구 상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단순히 정신력과 체력이 좋다고만 말하기 힘든 경지의 수준, 초인이 된 한 테니스 선수의 모습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 순간이었다.


스코어의 미학


테니스는 스코어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포츠이다.

처음 접한 사람들에겐 스코어를 읽기도 세어나가기도 쉽지 않은 구조이지만

스코어를 알고 테니스 경기를 보다보면 우리네 인생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총 4개의 포인트를 따면 한 게임, 6개의 게임을 따면 한 세트, 경우에 따라 2,3 세트를 먼저

따면 매치에서 이기는 구조로 게임의 포인트는

‘15', '30', '40', 그리고 '게임'으로 읽는다.

(시작 전 상태는 0-0으로 0은 ‘러브’라고 읽는다.)

즉 나도 두 포인트, 상대도 두 포인트를 따게되면

30-30이 되고 각자 세 포인트 씩을 따면 40-40이

된다.


하지만 40-40은 '듀스'라는 스코어로 부르고 여기서는 상대방보다 두 포인트를 먼저

따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듀스에서 한 포인트를 먼저 따면 '어드밴티지'라는 스코어가 되고

유리한 상황이지만 여기서 다시 포인트를 잃으면 또 듀스가 되어 다시 공평한 상황이 된다.


테니스와 일상


일상에서, 또는 일터에서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절차대로 실행하는 과정이

총 4개의 포인트라고 할 때 문제와 위기들은

상대방 선수처럼 달라붙어 15-15, 30-15, 40-30의 상황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거기서 문제들을 미리 파악하고 발생하지 않게 하는 사람(40-0),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사람(40-30)으로 나뉠 수는 있지만 일상에서도 하나의 목표(게임)를 달성하는 일은 이렇게 순탄하지만은 않다.


엄청나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절망하다가도 한 포인트를 따면 따라갈 빌미를 마련하게 되고

거기서 한 포인트를 더 따면 오히려 상대방이 쫓기는 입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40-40 듀스가 되는 순간 어느새 조건은 공평해진다.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힘든 상황을 끝내 이겨내면 다 끝난 거 같지만 다음 게임에선 내가 더 앞서 나갈 수도, 다시 붙잡힐 수도 있다.


이런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 분노와 초초함이 뒤섞여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은 테니스 경기는

선수들은 물론 보는 청중마저 극도의 감정 롤러코스터를 타게 해 준다.


가장 잔인한 건 둘중에 한명은 5시간을 넘게 혈투를 벌여도 결국은 지고 패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환희속에 누군가는 승리할수도, 누군가는 허망함속에 퇴장할 수도 있다.


인생의 매치포인트


우리 모두는 인생의 매치속에서 경기를 한다.

비록 라켓은 없고 상대방도 사람이 아닐 수 있지만,

분/시간 단위로 극도의 긴장감과 언더 프레셔 상황을

겪진 않더라도 인생이란 긴 장기전의 매치 속에서

경기를 해 나간다. 때론 지고 때론 이긴다.

때론 큰 상심을 하고 때론 눈물 날만큼 기뻐한다.


게임-세트-매치 그리고 다시 시작할때는

모두가 공평한 러브(0)인 상태의 연속.

테니스 경기의 매력과 테니스 스코어의 미학은

단지 스포츠 관전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너무도 닮은 모습 속에서

선수들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비춰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작고 큰 매치속에서 결국은 나달과 같이

승리하길 바라며, 다시 한번 힘내어 외쳐본다.

바모스!(Vamos!).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