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남았지만 추억은 사라진 여행
아주 오래 전 친구들과 떠난 여행에서 나는 여행 스케쥴을 짠 적이 있었다.
스케쥴에는 몇 시에는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할것이며, 그리고 뭘 먹을것인가 꼼꼼히 적어 넣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친구들은 다들 놀라며 덕분에 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에서 돌아보며 남은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남는것이 없었다.
노을빛이 물들던 하늘, 예상치 못한 길모퉁이의 가게, 즐거웠던 즉흥의 순간들은 희미하다.
사진 속에는 멋진 사진들이 가득했지만, 정작 마음속 추억은 빈약했다.
나는 계획대로 움직이느라, 눈앞의 풍경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완벽을 좇다 보면 순간의 감각이 희생된다. 사진 속 나는 분명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여행의 시간을 맞춰야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결국 데이터 속 기록은 흠잡을 데 없었지만, 기억과 느낌은 엉성하게 남았다.
그 뒤로 나는 계획의 방식을 바꿨다. 여전히 도착 시간과 큰 틀은 정하지만, 빈칸을 남겨둔다.
우연히 들어가게 되는 카페, 예상치 못한 골목길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먼저 생각한다.
놀랍게도 그렇게 남겨둔 여백에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노을빛 하늘을 보며 잠시 멈춰 서 있었던 그 순간, 그게 오히려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
완벽한 순간은 현재의 감각안에 머무른다.
지나치게 완벽을 좇는 순간,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잃는다.
나는 이제 일상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려고만 하고 있진 않은가? 아니면 진짜 머무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