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동안 차 안에서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드디어 목포에 도착했고 시내에서도 한참을 달린다.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오래된 골목에 진입했다. 차 두 대가 동시에 오고 가기 쉽지 않은 좁은 골목길이다. 연지는 조심스럽게 서행한다. 양 옆으로 식당들이 띄엄띄엄 있고 오래된 간판들은 출입문 위에 힘겹게 매달려 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알루미늄 샤시의 유리 미닫이 문으로 된 가게들이 많다. 내비게이션은 거의 다 왔음을 친절하게 음성으로 알려 준다. 가려는 카페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골목의 낡고 오래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 지은 2층짜리 건물이다. 건물 전체가 하얀색에 입구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나무문이고 1층의 큰 창과 2층의 세 개의 작은 창은 붉은 갈색 빛이 도는 창틀과 창살로 만들어졌다. 건물은 현대식인데 반해 문과 창은 예스럽다.
“건물 예쁘다. 여기가 목적지가 아니어도 골목을 지나가다 이 카페를 보면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겠는데.” 연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주차를 어디다 해야 하나?”
카페를 지나자 주차장은 아니지만 차를 대도 무방할 것 같은 공간이 있어 거기에 세웠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안녕하세요, 하고 밝게 인사한다. 남자는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이고 여자는 갸름한 얼굴에 웃는 눈매를 지녔다. 남자도, 여자도 햇빛을 오랫동안 본적이 없는 사람 마냥 피부가 하얗다. 거기에다 두 사람 모두 앞치마와 함께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어서 더 하얘 보인다. 정호는 그들은 마치 태어나서 나쁜 행동, 나쁜 말, 나쁜 생각조차 한 번도 안 해본 하얀 나라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인슈페너 두 잔을 주문했다. 1층 테이블 세 곳은 이미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아인슈페너가 나오기 기다렸다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오니 빈 자리 몇 곳이 보인다. 정호는 커피를 들고 안 쪽 빈자리로 갔고, 연지는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나왔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손가락으로 창가를 가리켰다. 창가에는 앵무새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앵무새는 연두색 몸에 얼굴은 붉은색이고, 다른 앵무새는 몸 전체가 밝은 노란색이며 마치 왕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머리 위로 깃털이 솟아 나 있다.
“어머, 앵무새가 있네. 신기하다.” 연지가 말했다.
“전에 왔을 때는 앵무새가 없었는데.”
“카운터에 있는 여자와 커피 내리던 남자 부부 맞지?”
“글쎄, 그건 모르겠어.”
“느낌에 부부 맞는 것 같아. 둘 다 인상이 선한 게 너무 좋더라. 서로 전혀 싸우지도 않을 것 같아 보여. 깨끗한 이미지가 마치 동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어.”
“신기하게 나도 똑 같은 생각을 했어. 이 카페 건물만해도 여기 골목 분위와 완전히 다른 게 동화적인 느낌이야. 건물도 하얗고 카페 주인들도 하얀 느낌이어서 마치 하얀 나라에 사는 하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저번에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연지랑 오니까 새로운 게 보이나 봐.”
연지는 아인슈페너를 한 모금 마신다. 둥글고 긴 투명한 컵에 아인슈페너가 삼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바닥에 생크림이 깔려 있고 가장 윗부분에도 두터운 생크림 층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간에 짙은 갈색의 커피가 있고 물에 물감이 퍼지듯 위아래에서 하얀 생크림에 커피가 서서히 번져가고 있다. 그리고 맨 위에는 시나몬 파우더가 뿌려져 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가 감탄한다. “와, 너무 좋다. 진한 커피와 생크림의 풍부함이 잘 어우러졌다. 내가 먹어본 야인슈페너 중 최고야. 목포까지 먹으러 올만하다. ”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를 본다.
“짜증나. 짜증나.” 그때 누군가 얇은 쇳소리로 카페에 앉은 모든 사람이 들리게 말했다. 이상한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 싶었더니 범인은 바로 창가에 앉은 앵무새였다.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창가에 앉은 앵무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만 좀 해. 그만 좀 해.” 이번에는 다른 앵무새가 소리를 냈다. “짜증나. 짜증나.”, “그만 좀 해. 그만 좀 해.” 반복해서 같은 말을 주고받는다. 단순히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거겠지만 마치 두 앵무새가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신기한듯 웃으면서 앵무새를 본다. “열 받아. 열 받아.”, “똑바로 해. 똑바로 해.” 앵무새들은 다른 말을 주고받았고 이번에는 사람들이 더 크게 웃는다.
“하하. 재미있다. 손님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는 건가 봐. 정말로 둘이 싸우는 것 같지 않아?” 연지가 말했다.
“그러게. 발음이 정확해서 그런지 더 대화하는 것 같아.”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급한 리듬의 서두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던 여자가 올라오는 소리였다. 잰걸음으로 다가가서 앵무새 한 마리는 어깨위에 나머지는 손등에 올린다.
“도대체 언제 2층에 올라온 거야? 하여간 너희들은 우리가 한 눈만 팔면 여기 와있더라. 이제 내려가자.” 여자는 잰걸음으로 다시 1층으로 내려간다.
“이제 내려가자.”, “이제 내려가자.” 앵무새들은 1층으로 내려가면서 여자의 말을 따라했고 사람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앵무새를 보니 정호는 연지가 겪는 환각이 떠올랐다. “여전히 기린은 안 나타나고 있어?”
늦은 밤, 연지가 방에 있을 때 벽지에서 기린이 나오고는 했다. 기린을 처음 본 것은 눈이 몹시 내리던 중학교 1학년 겨울,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멀뚱멀뚱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다. 그날 이후로 자주 나타났다. 컴퓨터를 하거나 책을 보고 있을 때 기린이 나타나서 주변을 돌아다닌다. 어떨 때는 눈 앞의 벽지 무늬에 굴곡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일렁일렁하면서 벽지가 점점 기린 모양으로 변해가고 그 위에 베이지색 바탕과 갈색 얼룩이 채색이 되면 벽에 기린 그림이 완성이 된다. 크기는 실제 기린 보다 훨씬 작은 1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이다. 그렇게 벽에 만들어진 기린은 현실의 공간으로 툭, 하고 튀어나와서 방안을 또각또각,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자기 멋대로 돌아다닌다. 한 두 시간 그녀 주위를 머물다가 다시 벽지 속으로 쏙, 하고 들어간다. 벽지로 들어가면 나올 때처럼 모양이 일렁일렁 굴곡이 생기면서 서서히 형태가 흐트러지다가 벽지 무늬에 스며들어간다. 기린이 처음 나타났을 때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서웠고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린이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기린의 생김새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그래픽 같이 귀여웠으며, 또각또각 걸어 다니는 소리는 경쾌하고, 예쁘고, 리듬감 있게 귀에 와 닿았다. 기린의 발소리는 귀로만 듣기 아까울 정도로 너무 예뻐서 눈으로도 보고 싶었으나 소리가 눈에 보이는 환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익숙해진 뒤로 그녀는 기린이 돌아다니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방에서 자신의 할 일을 했으며, 어떤 계기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기린과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기린과의 대화는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기린이 말을 한 적은 없고 표정과 몸짓으로 그녀의 말에 반응만 할 뿐이었다.
“응. 석 달 이상 안 나타나고 있어. 이렇게 오랜 기간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처음 기린을 본 게 언제라고 했지?”
“중학교 1학년 겨울이었어.”
“15년 넘는 시간 동안 이렇게 오래 안 나타난 적이 없었어?”
“응.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나타났어.”
“우울증 증상이 좋아지면서 환각도 사라진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우울증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우울한 느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거든.”
연지의 표정을 유심히 보면서 정호가 말한다. “기린이 안 나타나는 게 섭섭한 모양이야?” 그녀의 표정에 분명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당연히 섭섭한 마음이 크지. 비록 그 기린이 진짜가 아니라 환각이지만 그래도 내 삶의 일부였으니까. 어떨 때는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나의 수호자이기도 했으니까. 기린이 걸어 다닐 때 나는 소리가 있어. 또각또각, 또각또각, 하는 소리인데 자려고 누워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내가 이 소리를 내뱉는 거 있지. 그때 내가 기린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었어. 사실 한 편으로는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거든. 진짜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거니까. 심정이 복잡해.”
연지가 자신이 환각 증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정호에게 말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환각이 삶의 일부라는 그녀의 말이 그의 뇌리에 박혔다. 오랜 기간 같은 환시를 보고 환청이 들리는 것을 그녀는 떨쳐내려고 하지 않고 끌어안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했으나, 그간 환각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기린에 대해서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생김새, 크기,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왜 친구이자, 수호자이자, 삶의 일부인지. 그녀는 기린이 나타났을 때의 시각적, 청각적 체험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으나, 기린이 왜 친구이고, 수호자이고, 삶의 일부인지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환각을 경험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도 기린이 나타난 적이 있는지, 기린을 직접 불러낼 수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연지와 기린에 대해서 얘기하는 와중 정호는 갑자기 어렸을 적 자신의 방의 벽지 무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어렸을 때 형하고 같이 썼던 방의 벽지에 얼룩말 그림이 있었어.”
“그래?” 그 말을 들은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면서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리고 놀란 듯 정호를 보면서 잠시 말이 없다 가볍게 탄식을 내뱉는다. “아.. 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방 벽지에 기린 그림이 있었어. 기린하고 얼룩말, 사자. 그런 그림이 벽지에 있었어.”
“정말?” 그의 얼굴 또한 놀란 표정이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바로 그 기린인 것 같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왜 기억이 안 났던 걸까?”
어렸을 때 벽지에 있던 기린이 왜 나타났을까? 그리고 최근에는 왜 나타나지 않는 걸까? 정호는 몹시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