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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Dec 29. 2019

‘애드 아스트라’ 자신을 발견해 가는 심연으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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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오운 더 나잇’, ‘투 러버스’, ‘이민자’, ‘잃어버린 도시 Z’ 등에서 제임스 그레이는 충돌할 수밖에 없거나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고, 이상을 좇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그려왔다. 무질서한 밤의 세계를 동경하는 인물은 결국 경찰이 되고, 이상적인 사랑을 쫓다 버림받은 인물은 현실의 사랑으로 되돌아가고, 꿈과 자유를 찾아 새로운 땅을 찾은 인물은 몸을 팔아야만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고대 문명을 찾으려는 인물은 자신들의 야만적 행위를 정당하기 위해 고대 문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둘러 싸여있다. 이렇듯 제임스 그레이 세계의 인물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결국 운명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거나 원하지 않는 세계로 가게 된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 가정에서 자란 제임스 그레이는 자신의 태생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익숙한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 또한 지적 외계 생명체를 찾고 삶의 진보를 위해 별을 향해(to the star) 나아가는 인류의 이야기이다.


2
대기권 밖으로까지 나아가 있는 거대한 높이의 안테나를 수리하던 중 우주비행사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예기치 못한 전류 폭풍의 발생으로 수리하던 안테나가 파손되고 지상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미국 우주사령부는 전류가 급증하여 폭풍이 일어난 원인을 26년 전 지적 생명체를 찾아 떠났다가 실종된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토미 리 존스)와 관련이 있고 그가 해왕성 근처에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한다. 그래서 다시 발생할 수도 있는 전류 급증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주사령부는 클리포드의 아들인 로이를 화성으로 보내 클리포드를 설득하기로 한다. 아버지는 로이가 16살에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아 우주로 떠났고, 그 이후로 로이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로이 또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우주비행사의 임무에 몰두하느라, 늘 외롭게 지낼 수밖에 없었던 부인 이브(리브 타일러)는 로이를 떠났다. 우주사령부에서 로이를 보내는 것은 그가 클리포드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우주비행사이기 때문이다. 로이는 어떠한 임무를 수행하거나 임무를 마칠 때마다 심리 테스트를 하는데, 그때마다 감정 기복이 없고 심박수는 항상 일정하다. 심지어 전류 폭풍 사고로 안테나에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심박수가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로이는 자신의 감정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 로이의 보이스 오버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복 없는 감정은 연기일 뿐이고 로이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로이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처음 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화성으로 가는 도중 조난당한 노르웨이 우주선에서 실험용 유인원을 만나고 나서부터이다. 조난당한 노르웨이 우주선을 도우러 안으로 들어갔다가 같이 간 태너 대위는 실험용 유인원에게 살해당했고, 로이는 실험용 유인원을 죽이고 자신이 타고 가던 세피우스 우주선으로 무사히 돌아온다. 살아온 로이는 심리 진단에서 실험용 유인원은 분노에 가득 차있었다고 얘기하고 자신은 그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서도 분노를 봤고 자신의 내면도 분노로 가득 차 있다고 털어놓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두고 떠난 것에 화가 나 있고, 그로 인해 세상과 벽을 쌓았고, 마음을 열어두고 누군가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를 한다. 그리고 그 분노 안에는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고백한다.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자 처음으로 진짜 자기의 모습과 마주친 것이다. 임무에 사적인 감정을 완전히 차단해오던 로이는 화성에 가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녹음하는 과정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사적인 감정에 휩싸인 로이는 임무에 부적격하다며 이 작전에서 배제를 당한다. 작전에서 빠진 로이는 세피우스 우주선을 탈취해 아버지를 만나러 홀로 해왕성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지적 생명체를 찾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지구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동료들을 살해하고 해왕성 근처에 혼자 남아있었다. 로이는 아버지를 만나 같이 지구로 돌아가자고 설득을 하지만, 끝내 아버지는 지적 생명체를 찾는 임무를 완성해야만 한다며 로이의 제안을 거부하고 우주 미아의 길을 선택한다. 어렵게 만난 아버지와의 이별과 상실감을 뒤로하고 로이는 지구로 귀환한다.


3
이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결국 인류는 지적 외계 생명체를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흔적 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대신 인간 스스로 생각하기에 인간보다 지적으로 못하다고 여기는 실험용 유인원을 우주공간에서 마주하게 된다. 유인원의 분노를 맞닥뜨리고 그 분노를 이해한 순간, 로이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의 심연을 들여다 보고, 자기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솔직해지는 계기가 된다. 유인원을 만난 후 화성에서 세피우스 우주선을 탈취해서 해왕성으로 가는 과정은 로이가 정서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79일 동안 해왕성까지 가기 위해 자신의 배를 뚫어 급식 튜브를 연결하여 영양을 공급받는 것은 탯줄을 연상시킨다. 벽에 붙어있는 물주머니의 꼭지를 빠는 것은 젖을 먹는 아이의 모습 같으며, 물주머니를 빨아 물을 마시는 숏 바로 다음 숏이 로이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안겨있는 플래시백 숏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연상을 더욱 강화시켜준다.


인간이 지적 외계 생명체를 찾는다는 것은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지적인 생명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오만한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지구에 있는 수천만 종의 생명체가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적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면, 인간은 무슨 기준으로 인간 스스로가 가장 지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착각은 정상과 비정상, 문명과 야만, 상식과 몰상식, 교양과 무식 등을 가르는 잘 못된 이분법적 오류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타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로도 쓰여왔다. 이는 인간의 집단적인 자기애적 인격장애에서 기인하는 허상일 것이다. 어쩌면 모든 생명체 내면의 감정적 심연은 한 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만큼 넓을지도 모른다. 자신 내면의 감정적 심연을 솔직하게 탐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인류가 혹은 개인이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애드 아스트라’에서의 지적 외계 생명체를 찾고 삶의 진보를 위해 별을 향해 떠나는 우주라는 시공간은 로이의 감정적 심연이자 무의식으로 환원된다. 그 시공간 안에는 버림받은 시간 동안의 상처와 고통, 우주에 끌려온 유인원의 분노, 관성과 무중력으로 어쩔 수 없는 무력감, 칠흑 같은 어둠과 끝을 알 수 없는 고요함에서 오는 절대적인 고독, 매개체가 없어 소리를 전달할 수 없는 소통의 단절, 아버지를 닮은 이기적인 욕망,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미워도 하는 양가적인 감정 등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애드 아스트라’의 시네마틱한 우주의 심연에 담겨 있다. 하지만 로이는 자신의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프로이트는 우리 삶의 주인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라고 했고, 융은 정신세계는 자아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즉 로이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긴 시공간의 우주여행은 자기 자신을 발견해가는 여행이자 과정이다.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의 심연을 솔직하게 조금이라도 마주하였을 때 비로소 우리 주위의 소중한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감정의 심연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로이는 그때서야 진짜 자기를 찾을 수가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했던 로이는 지구로 돌아와서 자기를 구출하러 온 사람이 손을 내밀었을 때 눈가가 촉촉해지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있는 감정이 실린 표정으로 그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감정을 연기하고, 일에만 몰두하느라 부인을 외롭게 내버려 뒀던 로이는 심연의 여행 후 주위의 소중한 것에 집중하고, 가까운 사람과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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