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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Jan 05. 2020

‘결혼 이야기’ 남은 감정을 태워버리는 결혼 이야기

1 결혼 이야기? 혹은 이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는 제목처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연극 연출자 찰리(아담 드라이버)의 이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LA에 살고 있던 유망한 배우 니콜은 뉴욕에 갔다가 우연히 찰리가 연출하는 연극을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사랑에 빠진다. 니콜은 LA로 돌아오지 않고 찰리와 결혼을 하였고 찰리가 운영하는 극단의 배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찰리는 점차 연극 연출자로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그에 반해 니콜은 그저 극단에 속한 찰리에게 평가를 받는 배우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낀다. 결혼 생활에서도 니콜은 많은 것을 희생한다. 모든 것을 찰리에게 맞추면서 살아가고 고향인 LA에서 살기를 원하는 니콜의 요구를 특별한 이유 없이 찰리는 묵살한다. 또한 찰리는 자신의 극단의 스텝 중 한 명과 바람을 피웠다. 니콜은 LA에 있는 한 방송국의 드라마 배역을 제안받았고 그 역을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찰리는 니콜이 LA에 가서 그 배역을 맡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니콜의 출연료를 알고 나서 찰리는 그 돈을 극단 운영에 쓰자며 반대하던 입장을 바꾼다. 이러한 이기적인 찰리의 모습을 보고 니콜은 이혼을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배역을 위해 니콜은 아들 헨리를 데리고 LA로 온다. 이혼할 마음이 없었던 찰리는 니콜이 LA에서 변호사를 고용해 소장을 보내면서 어쩔 수 없이 뉴욕과 LA를 오가며 이혼 소송을 하게 된다.


2 데이빗 보위와 투명인간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과 찰리의 결혼과 이혼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찰리는 니콜이 결혼 생활에서 많은 희생을 하고 있고 자신이 사라진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니콜은 더 이상 찰리와의 결혼을 유지할 마음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과정에서도 찰리는 니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뉴욕에서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니콜의 감정은 할로윈 행사의 시퀀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니콜과 찰리는 아들 헨리와 각자 따로 할로윈 행사를 한다. 니콜은 할로윈 행사를 마치고 헨리를 찰리에게 데려다주러 찰리가 머무는 호텔로 가서 찰리를 만난다. 이때 니콜은 할로윈 코스튬으로 ‘Let’s Dance’ 앨범의 데이빗 보위 분장을 하고 있고, 찰리는 영화 ‘투명인간의 사랑(Memoirs Of An Invisible Man)’의 투명인간 분장을 하고 있다. 니콜의 심정은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 뮤직 비디오처럼 자신과 맞지 않는 지금의 현실을 이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니콜의 삶에서 찰리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니콜에게 그는 그저 투명인간일 뿐이다. 영화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와 이혼한 노아 바움백은 ‘결혼 이야기’의 인물 설정을 배우와 연출자로 한 것으로 보아, 이 영화 ‘결혼 이야기'에는 결혼 생활에 대한 자전적 감정이나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혹은 자신의 이야기를 뒤집어서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한들 자전적 경험이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아 바움백은 이 영화가 두 인물 니콜과 찰리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보이지 않게 최대한 유지하려고 한다. 두 인물의 출연 비중, 그들이 결혼에 대해서 갖는 감정, 관객과 두 인물과의 심리적 거리감까지 균형을 맞추고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연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사자인 니콜과 찰리는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균형감을 갖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게 바라볼 필요도 이유도 없다. 결혼 생활에서는 니콜이 찰리에 맞추는 희생을 하였지만, 이혼 과정에서는 니콜이 헨리를 LA로 데려와 이혼과 양육권 소송을 함에 따라 찰리가 니콜에게 맞추고 희생을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어떠한 균형이나 객관성은 존재하지 하고 자기 입장만 남을 뿐이다.


3. 남은 감정을 태워버리는 ‘결혼 이야기’
니콜의 집에 전기가 끊겨 대문이 닫히지 않게 되자, 찰리와 헨리는 니콜을 도와주러 니콜의 집으로 간다. 찰리는 전기가 끊긴 이유를 찾기 위해 배전반을 봐주고, 평소 찰리와 헨리의 머리를 직접 잘라주던 니콜은 자신을 도와주러 온 찰리의 덥수룩해진 머리를 보고 자신이 잘라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얼마 남지 않은 감정으로 배우자로써의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이제는 두 사람 마음속에 아직까지 닫지 못하고 있는 문을 닫아야 할 때다. 찰리, 니콜, 헨리 세 가족은 니콜 집의 닫히지 않았던 미닫이 대문을 안과 밖에서 밀면서 대문을 닫아 버림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시퀀스 다음 씬(Scene)은 법정 씬으로 이어진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니콜과 니콜의 변호사 노라가 의자에 앉아 있다. 노라는 찰리가 새로 선임한 변호사 제이와 인사를 하기 위해서 일어나고, 노라의 자리에는 소송 파일이 놓여있다. 소송 파일에는 ‘Marriage of Barber’라고 쓰여있다. 이 숏에서 우리는 찰리와 니콜의 성이 Barber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Barber라는 단어는 이 두 사람의 성일뿐만 아니라, 이발사라는 의미도 있다. 결혼 생활 동안 니콜이 찰리의 머리를 직접 손질해주었던 것을 상기하면, 니콜이 얼마나 찰리에게 맞추어 결혼 생활을 해왔는지 이 단어를 통해 감독은 보여준다. 이제 니콜은 Barber라는 성으로 살지 않고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야 하고, 더 이상 찰리의 머리를 잘라 줄 이유도 없다. 법정에서 변호사 간 진흙탕 싸움을 하고 나서, 둘이서 원만한 합의를 하기 위해 니콜은 찰리를 찾아가지만 결국 둘 또한 경쟁하듯이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 둘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싸우는 이 시퀀스에서 같은 사건을 두고 둘 다른 기억, 다른 관점,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찰리를 위해 줄 곧 뉴욕에 산 니콜은 “내가 당신을 더 많이 사랑했잖아”라고 얘기를 하자, 한동안이라도 LA에 살고 싶어 했던 니콜에게 찰리는 “그게 LA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니콜은 “당신은 이기적인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 더 이상 자기가 이기적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찰리는 니콜에게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붓는다. 이 장면에서 니콜과 찰리 사이에 원만한 합의는 온데간데없고 불필요한 감정의 과잉과 소모만 있을 뿐이다.


노아 바움백이 생각하는 결혼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나 갖는 사랑, 쾌락, 꿈, 희망, 기대, 배려, 존중 등과 같은 환상적 감정은 결혼 생활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서히 증발해버리고, 각자의 주관적 입장에서의 이야기만 남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니콜과 찰리의 대화를 보면 결혼 생활에서의 함께한 기억이라는 것조차 자기중심적 판타지로써 존재하는 것이지 둘 간의 합집합일 수가 없다. 아마 이 영화의 제목이 ‘결혼 이야기’이면서도 니콜과 찰리의 결혼 생활에 대한 플래시백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혼의 과정 또한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감정의 환상을 현실로 환원시킨 다음 모조리 태워버리는 ‘결혼 이야기’의 일부라고 노아 바움백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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