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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Feb 02. 2020

‘포드 V 페라리’ 한계를 넘어 도전할 수 없는 세상

제임스 맨골드하면 비록 그의 전작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나잇 앤 데이’와 ‘로건’을 통해 추격 액션 장면을 잘 연출하는 감독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좀 더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주기 위해 의미 없이 쫓고 쫓기고, 부딪치고, 전복되고, 폭발하고, 달리는 차에 매달리고, 총을 쏘는 등과 같은 자동차 추격 액션 장면은 이미 너무 많이 소비되었기 때문에 최근 관객들은 웬만해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제임스 맨골드가 자동차 레이싱 영화 ‘포드 V 페라리’를 연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 동안 보기 힘들었던, 레이싱 장면에 긴박한 상황의 긴장감과 스릴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만끽하게 해 줄 그야말로 시네마 본연의 활동사진으로써의 자동차 추격 액션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영화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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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드 V 페라리’는 1965년, 1966년 포드사가 24시간 동안 레이싱이 진행되는 르망24(Le Mans)에 참가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매출이 급감한 포드사는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회사가 폐업을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경제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하여 누구나 타는 저가형이고 올드한 자동차라는 느낌을 탈피하기 위해 포드사는 르망24 레이싱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대회 참가를 위해 파산한 페라리사를 인수하려 했으나, 피아트에게 밀려 인수에 실패한다. 자체적으로 레이싱카를 개발하기로 한 포드사는 르망24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유일한 미국인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레이싱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 레이싱카 설계와 르망24 참가 준비에 들어간다. 캐롤 셸비는 레이싱카 설계에 총괄을 맡고, 레이싱에 참가하는 켄 마일스 또한 직접 테스트 드라이빙을 하면서 좀 더 레이싱에 적합한 차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대했던 대로 제임스 맨골드는 레이싱 장면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속도로 트랙을 달리는 자동차의 물리적인 속도감이 관객의 시각과 청각 신경에 온전히 전달될 뿐만 아니라, 레이싱카를 운전하는 켄 마일스가 갖는 극도의 긴장감과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까지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제임스 맨골드는 관객들이 레이싱 장면이 주는 쾌감을 완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몰입하지 못하도록 연출하였다. 관객들이 보고자 하는 혹은 즐기고자 하는 레이싱 장면에서 어떠한 단절이 자꾸 발생한다. 레이싱이 주는 쾌감을 극단으로 몰고 가기 직전의 단절, 한계를 넘어 질주하는 레이싱카와 레이서가 물아일체가 되기 직전의 단절, 관객들이 오롯이 레이싱 장면에만 빠져들기 시작 직전의 단절. 이 모든 단절은 포드사의 우스꽝스러운 관료주의로부터 시작된다. 포드사의 부사장은 레이서로써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행동이 거칠고 솔직한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하는 켄 마일스를 싫어한다. 그래서 부사장은 그런 켄 마일스가 보수적이고 점잖은 포드사와의 이미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그가 우승할 경우 오히려 포드사 이미지에 안 좋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켄 마일스를 르망24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한다. 캐롤 셸비는 이런 포드사의 부사장과 켄 마일스 사이에서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고, 어떻게든 켄 마일스를 참가시키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실력이 좋은 레이서를 빼버리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결국 켄 마일스가 없이 참가한 르망24 대회에서 포드사는 페라리사에게 참패를 당하고 만다. 관객들은 포드사가 첫 번째로 참가한 르망24 대회를 볼 수 조차 없다. 켄 마일스가 듣고 있는 라디오 중계를 통해서만 레이싱 상황을 알 수 있다.


포드사의 회장 헨리 포드 2세는 페라리에 참패한 것에 격분하여 다음 해 르망24를 위한 레이싱카 개발과 레이싱 준비에 대한 전권을 캐롤 셸비에게 준다. 캐롤 셸비가 전권을 받아 르망24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어떠한 설명도 이유도 없이 포드의 부사장이 갑자기 르망24 대회 참가 준비의 총괄 책임자가 되어 다시 한번 켄 마일스가 레이서로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한다. 켄 마일스 없이는 우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캐롤 셸비는 켄 마일스가 다른 자동차 경주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면 르망24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건다. 부사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켄 마일스는 자동차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르망24 레이싱에 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된다. 켄 마일스가 참가한 르망24 레이싱에서도 우스꽝스러운 일은 계속 발생한다. 회사의 존폐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부사장은 포드가 르망24에서 우승하기를 원하지 않고 포드 팀이 우승하는 것을 방해를 한다. 이 영화 제목인 ‘포드 V 페라리’와 달리 켄 마일스가 참가한 르망24는 그의 뛰어난 활약으로 승부는 일찌감치 결정이 된다. 마지막 레이스를 하기도 전에 켄 마일스와 무리하게 경쟁하던 페라리 레이서의 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켄 마일스를 필두로 포드 팀의 차 세대가 이변이 없는 한 1위, 2위, 3위로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스꽝스러운 이변이 일어난다. 포드사의 부사장은 한 바퀴 이상 선두로 달리고 있는 켄 마일스에게 속도를 줄이고 포드 자동차 3대가 결승선을 동시에 통과하도록 하게 하라고 캐롤 셸비에게 지시를 한다. 캐롤 셸비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부사장에게 화를 내지만, 이 말을 켄 마일스에게 전달하며 그 지시를 따를 필요는 없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마지막 레이싱을 시작한 켄 마일스는 부사장의 지시를 무시하듯 단독으로 트랙을 질주를 한다. 이 장면에서 화난 부사장의 얼굴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관객이 마지막 레이싱을 즐기는 것을 단절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결승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켄 마일스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포드 자동차 3대가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한다. 1966년 현실 르망24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 혹은 영화에서 과장을 했든 간에 이 것이 우스꽝스러운 결과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켄 마일스보다 출발선이 뒤에 있던 멕라렌이 우승을 한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사실상 우승자인 켄 마일스를 제쳐두고 기자들은 멕라렌을 취재하기 위해서 달려가고 포드사 임원진들도 멕라렌에게 축하를 건 낸다. 켄 마일스 실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오히려 경쟁자 페라리사의 엔조 페라리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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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V 페라리’의 첫 장면은 캐롤 셸비가 르망24에서 레이싱하는 장면이다. 캐롤 셸비는 기름을 넣기 위해 피트로 들어온다. 피트에 들어온 캐롤 셸비의 차는 엔진 과열로 차에 불이 붙고 스텝들은 이 상태로는 너무 위험해 더 이상 레이싱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말린다. 하지만 캐롤 셸비는 괜찮다며 계속할 수 있다고 우겨 기름을 넣고 다시 목숨을 건 레이싱을 하기 위해 트랙으로 들어간다. 결국 그는 르망24에서 우승하는 최초의 미국인이 된다. 그런데 불이 난 것은 셸비 차의 엔진만이 아니다. 엔진에 해당하는 셸비의 심장에도 불이 난 것이다. 심박수가 너무 높아 긴장감이 고조되는 레이싱을 계속할 경우 심박수가 너무 빨라져 심정지가 올 수 있다고 의사가 경고한다. 어쩔 수 없이 캐롤 셸비는 레이싱을 그만두고 자동차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영화 ‘포드 V 페라리’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캐롤 셸비, 포드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세계와 켄 마일스, 페라리로 대표되는 이상을 향햔 세계이다. 캐롤 셸비는 심장의 문제로 더는 자신의 이상적인 삶을 쫓지 못하고 현실적인 문제와 시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반대로 켄 마일스는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자신의 이상을 좇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페라리는 파산한 상태이지만, 페라리 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 가치를 버리지 못한다. 반면 포드는 폐업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현실적 대안으로 페라리를 흉내내기로 한다. 이 영화 ‘포드 V 페라리’에서 르망24에 참가하는 포드 팀을 이상과 현실의 수평적 좌표축으로 그린다면, 켄 마일스, 캐롤 셸비, 포드사를 세 점으로 찍을 수 있다. 켄 마일스는 이상에 찍혀있고 포드사는 현실의 끝에 찍혀있다. 물론 영화에서 캐롤 셸비는 현실적인 사람이기는 하지만 수평적 좌표에 놓고 보면 포드사보다는 그래도 훨씬 이상의 좌표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캐롤 셸비는 자신이 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상을 르망24 레이싱을 하는 켄 마일스를 통해 투사를 한다. 이러한 현실과 이상은 르망24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레이싱을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때마다 이상은 현실 앞에서 좌절에 또 좌절을 한다. 앞서 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계속해서 나온다고 반복해서 말을 했다. 이 말은 영화 ‘포드 V 페라리’가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 앞에서 이상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르망24에서 켄 마일스에 투사한 캐롤 셸비는 수평 좌표에서 이상의 방향으로 계속해서 가다가 현실의 방향으로 끌려오고 다시 이상의 방향으로 가다가 현실의 방향으로 다시 끌려 오기를 반복한다. 이와는 상관없이 7,000rpm이라는 한계를 넘나들며 완전한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켄 마일스 조차 결국에는 현실로 끌려 내려와 속도를 줄이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이상적인 성취를 눈앞에 두고 스스로 추락하고 만다. 여기에는 어떠한 씁쓸함이 자리 잡고 있다. 포드가 페라리를 제치고 르망24 레이싱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켄 마일스와 캐롤 셸비의 목숨을 걸고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노력과 열정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포드사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자본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상만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갈 수 없는 구조화된 세상에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여기서 인정은 어쩌면 좌절이라는 단어와 동어반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에 테스트 드라이브를 하다 자동차에 불이 붙는 사고로 인한 켄 마일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너무나도 허망하다. 카메라는 불타는 자동차를 멀리서 바라볼 뿐이다. 사람들이 불이 붙은 자동차로 달려가고 있을 때도 카메라는 멀리 떨어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이 이미지에는 목숨을 건 켄 마일스의 도전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불타는 자동차와 함께 켄 마일스의 꿈과 이상과 열정도 함께 타서 사라지는 것을 차마 가까이서 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제임스 맨골드는 저 높이 있는 이상을 위해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지 않고 도전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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