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은 보리차

일월 수필

by 일월

요즘은 집집마다 정수기가 있거나 생수를 주기적으로 배달시켜 물을 마신다. 그러니 보리차를 맛볼 일이 좀처럼 없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보리차를 끓여 먹는 집이 많았다. 정수기는 비쌌고, 생수를 사 먹는 것보단 보리차를 해 먹는 게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집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 집은 15층짜리 아파트의 11층에 위치해 높은 편이었고, 앞엔 강이 흐르고 그 너머엔 초등학교가 있어 탁 트인 전망이었다. 덕분에 맞바람이 시원하게 들었다. 여름철, 땀을 흘린 채 집에 들어서면 강바람이 몸을 훑어 땀을 앗아갔다. 주방에 직행해 냉장고를 열고 물병에 담긴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켜면 그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타고 흐르며 내장 기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고 더위에 지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면, 시원한 보리차를 마실 생각에 힘이 나기도 했었다.

어머니께서 바삭거리는 시어서커 재질의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커다란 스텐주전자에 수돗물을 끓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보리차 티백을 여러 개 넣고 우려낸 물은 베란다로 옮겨 한 김 식힌 후, 플라스틱 물병에 담아 냉장고에 차곡차곡 들어갔다. 어머니께서는 번거로운 이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여름이 에어컨 없이도 시원했던 이유는 어쩌면 어머니께서 수고하며 끓인 보리차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보리차 끓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늘 그렇게 보리차를 마실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립해 보니 보리차 끓이는 건 고사하고 생수 시키는 일도 귀찮은 거였고, 집집마다 보리차 먹던 문화는 좀처럼 찾기 힘들어졌다. 역시 당연한 것은 없는가보다.

한겨울 동짓날에 웬 뜬금없는 시원한 보리차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겨울이 되면 왠지 곁을 떠난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린 날의 보리차, 그 시절의 주름 없던 어머니의 얼굴, 연락이 끊긴 친구들…. 그리고 내게 남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 어여쁜 아내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 산책, 글을 쓸 수 있는 여유와 내 곁에 남은 소중한 사람들….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나는 내게 남은 것들에 더욱 소중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내게 남은 것 또한 영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리차처럼 홀연히 내 곁을 떠나지 않겠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미리 슬퍼하진 않으려 한다. 보리차처럼 내 속을 타고 흘러 나의 일부가 될 것임을 또한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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