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삶

일월 수필

by 일월

돈이 없었다. 그것이 대학생 시절의 나를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을 아르바이트에 반납해야 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늦으면 새벽 1시까지. 그렇게 한 달에 80만 원을 받아 20만 원은 월세에 보태고, 나머지 60만 원으로 근근이 한 달을 살았다. 교통비, 식비, 통신비, 이발비, 교재비, 시험비, 데이트비... 만약 형의 옷장이 없었더라면 단벌신사로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 식비를 아끼고자 집에 있는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다녔다. 여자친구와 도서관 휴게실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는 것이 우리의 데이트였다. 어느 날은 돼지꼬리뼈찜을 싸서 여자친구에게 한입을 권했다. 맛있어하는 여자친구에게 뿌듯해하며 "이거 한 팩에 만원 정도 하더라. 너도 사 먹어."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침묵이 흘렀다. 여자친구는 말이라도 "내가 사줄까?"라고 물어봐주길 바랐다고 한다. 생각이 깊어졌다. 여자친구를 섭섭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사줄까 고민조차 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적잖이 놀란 것이었다. 그깟 돈 만원이 아까운 건 아니었다. 다만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각자의 몫은 각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이른바 '빈곤적 개인주의'에 이른 것이었다. 깊은 자괴감이 몰려왔다. 여자친구는 나의 과한 반응에 오히려 당황했고, 자책하지 말라며 위로해 주었지만 나는 새롭게 발견한 나의 모습을 톺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는 돈이 없을 때 볼품 없어진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러니 가난해지지 말자'는 것.


경영학과에서 커리어에 욕심을 내본 학생이라면 대개 다음의 루트를 준비한다.(내 주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회계사나 세무사 등 전문자격증 공시준비, 시중은행 입행준비, 금융공기업 입사준비.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뚫고 들어가기만 하면 고용안정성, 높은 급여, 탄탄한 복지가 보장되기에 많은 학생들이 도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애벌레에서 자신만의 방에 틀어박히는 번데기 시절을 거쳐 우아한 나비로 우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철저한 자기 객관화를 통해 내 머리로는 합격이 어려울 거라 결론 내린 것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하루빨리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졸업 전에 연락 온 회사에 첫 면접을 보러 갔고, 합격하자마자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나는 그러니까, 애벌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애벌레의 삶이 어떠한가 묻는다면, 나는 만족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 주변엔 아직 애벌레들이 많다. 내가 아는 녀석 중에 제일 웃긴 L군은 이 나이에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고 있고, 회계사를 준비하던 K군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한 후 취직을 준비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이직을 꿈꾸는 친구도, 생각한 규모는 아니지만 지금 회사에 만족하며 다니는 친구도 있다.

삶의 여러 형태를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커리어의 쟁취만이 나비가 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드에 나온 회계사들이 밤낮없이 일하는 것을 보면 과연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잠이 많은 나로서는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을 듯하다. 결과론적일 수도 있지만, 전문 자격증을 취득했어도 나비가 되었다고 느끼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작가가 되는 날이 비로소 나비로 재탄생하는 순간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자녀를 갖는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GTA6를 플레이하는 날이 그 순간이리라.

만약 나비가 되지 못한다 해도 어떠한가? 내가 생각한 나비가 되는 길은 어쩌면 나방이 되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무엇이, 그리고 언제가 나를 나비로 만들어주는 순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애벌레의 삶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세상엔 경험해 볼 것들이 잔뜩이고, 나비로 변할 날을 기다리는 매일이 가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당연하지 않은 보리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