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수필
10년 전, 서울에 올라와 견문을 넓히겠다며 혼자서 도심 곳곳을 탐방하던 때였다. 종로 어디쯤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내게 두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지방 출신이 서울에서 길을 알려준다는 것은 ‘촌놈’티를 벗은 증표나 마찬가지라서, 나는 내심 뿌듯해하며 걸어온 방향으로 직진만 하면 되는 간단한 그 길을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왠지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보다 내게 “인상이 참 좋으시다”, “뒤에 기운이 느껴진다.”, “조상님이 화가 나셔서 제를 지내드려야 한다.” 등 사이비 종교의 의식을 권하며 한참을 떠들었다. 거절을 좀체 못하는 성격이었던지라, 하나하나 맞장구쳐주며 듣다 보니 어느새 제사를 지내는 걸로 결론이 나 있었다. 당할 땐 당하더라도 얼마인지나 알고 가자는 심산으로 제사를 올리는 데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간단히 성의만 표시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갑을 열어 전 재산인 오천 원권을 꺼내 보여주니, 30분간 떠들어댄 자신들의 수고가 아깝다는 듯 허망해하는 표정으로 “제는 다음에 지내시죠”라며 황급히 길을 떠났다. 어찌저찌 사이비 교인들을 물리친 것 같았으나, 나 또한 30분을 허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좋은 마음을 이용해 지갑에서 돈을 빼가려고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접근하는 누군가에게 결코 호의를 베풀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2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내와 동네 어귀를 산책하던 중 한 무리의 청소년이 다가와 내게 전단을 내밀었다. 나는 무엇인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누가 보아도 ‘귀찮으니 건들지 말아라.’라는 의미였다. 아이들은 머쓱해하며 전단을 거두고, 무어라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멀리서는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깔깔거리며 다가오던 아이들이 나를 스쳐 가며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진 것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아내에게 “내가 좀 심했나?”라고 물었더니, “그래, 좀 심했어. 교회에서 나온 애들인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순간 거두어지던 전단에 직접 붙인 듯한 사탕이 앙증맞게 달려있던 것이 떠올랐다. 떠나가며 건넨 말도 “메리 크리스마스.” 또는 “즐거운 성탄절 되세요.”라는 인사말이었던 것 같다. 후회가 몰려왔다. 내 호의를 이용하려던 것이 아닐뿐더러, 그들의 호의를 내가 차갑게 내친 것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미안하고 창피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나의 방어기제를 만든 것은 내 호의를 이용하려던 수많은 잡상인과 사이비 교인들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합리화하려 해도, 내가 못난 어른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내년을 기약하며 아이들을 또 마주치길, 그리고 그들이 건네는 전단을 받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화답할 수 있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작년 이브 날엔 그 길을 산책하여도 같은 아이들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러나 속죄하는 길이 어찌 그들을 마주하는 것뿐이랴. 곤궁에 처한 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호의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 아이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일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역에서 구세군의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올 연말은 호의에 의심의 눈초리 대신 미소로 화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