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부인

일월 단편

by 일월

먹구름은 할 말 많은 듯 거센 바람에도 꿈쩍 않고 서서 쫘르르 비를 쏟아내고 있다. 대낮도 동짓날 밤처럼 시꺼먼 암흑 속에 침잠하는 장마철이면 스무 살 적 시절이 생생히 떠오른다.


서울의 한 예술대학에 입학한 나는 관악구 빌라촌에 흘러들었다. 3평 남짓 되는 반지하방을 빌려 쓰는 대가로 월 45만 원씩을 내었다. 볕도 들지 않는 음습한 그곳엔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설거지통엔 날파리가 까놓은 알이 통통한 좁쌀처럼 따닥따닥 껴있었다. 그것도 생활공간이라고 나름 정을 붙였으나, 문제는 방세였다. 당시 부모에게 손을 벌릴 처지가 아니어서, 주말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인력사무소에 나갔다. 공사 현장에서 신호수로 일하는 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떤 날은 사무소장이 “당첨이구먼!” 하길래 좋은 곳인 줄 알았더니 도착한 곳은 하수구 청소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고장 난 하수펌프를 고쳤는데, 사흘 간은 콧구멍에 똥 닦은 휴지를 박아 넣은 듯 냄새가 가시질 않아 수시로 헛구역질하곤 했다. 그럼에도 배를 곯는 것보다야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편이 나았다. 수업을 들어야 하는 평일을 제하고 나면 주말에만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토록 벼려온 주말에 비라도 쏟아지면 공사 현장이 멈추면서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그런 날이면 다음 한 주는 무얼 먹고 버티어야 하나 걱정하며 안 그래도 어두운 방에 켜켜이 쌓인 먹빛 습기를 이불 삼아 덮고 선잠에 들곤 했다.


학기가 끝난 방학이었다. 해외여행이니 교환학생이니 기대와 걱정을 반반씩 섞어 들고 분주히 떠나는 동기들을 보며 방에 덩그러니 남았다. 이제는 이곳이 나의 분수에 걸맞은 장소이며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공간같았다. (그마저도 사실 나의 소유는 아니었다) 하늘은 나의 동기들과 나를 철저히 분리하듯, 불행은 모다 내 방에 몰아두고 행복이 봄볕처럼 퍼진 세상 밖으로는 한 발짝도 넘어오지 말라는 듯이 세차게 장맛비를 퍼부었다. 그런 날이 이주가 넘게 이어졌다. 가진 돈은 바닥나서 다음 달 월세는 고사하고 당장에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식욕을 줄이려 담배를 피운다는 말을 떠올렸다. 곧장 계단을 올라 처마 아래를 훑기 시작했다. 처마가 끝나는 지점에 진흙탕에 반쯤 잠긴 장초를 발견했다. 얼마간 망설이다가, 에라 굶는 것보다는 낫다 생각하며 그것을 주워들었다. 흙을 툭툭 털어내고 방에 돌아가 가스렌지로 불을 붙였다. 불이 화륵거리는 틈에 벽에 붙었던 바퀴벌레가 덕트 사이로 얼른 숨어들었다.


다시 방을 나서 처마 아래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쪼옥 빨았다. 독한 연기에 연신 콜록대다가 다시 한 모금, 또 콜록대다가 그럼에도 한 모금.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일탈에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때쯤, 한 노파가 나를 멀거니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계단 아래에서 올라온 듯한 그는 초등학생만 한 작은 키에 비쩍 마르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는데, 총명한 눈이 구슬처럼 반짝여 순수하고 선해 보였다. 다소 민망함 섞인 표정으로 노파를 응시하였더니 그쪽에서 입을 떼었다.


“밥은 먹는가?”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랑 같이 가세. 밥 맥여 줄터니.”

노파는 작은 우산을 펼치고는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저의가 미심쩍어 망설였으나, 사달이 나더라도 힘으로 이기려니 생각되어 따라나섰다.


도착한 곳은 구청에서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였다. 반쯤 열린 창밖에서 들이미는 비 냄새, 대형 솥에서 뿜어지는 찐 밥의 증기, 몰려든 노숙인들의 퀘퀘한 냄새가 한 데 어우러져 묘한 불쾌감을 이루었다. 어쩌면 불행을 짊어진 이네들과 내가 사실은 같은 무리였다는 것을 한 그릇의 식판을 받음으로써 인정하는 꼴 같아 거부감이 든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차마 식판을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노비 인두가 이마에 날아들듯 식판에 배식이 한 주걱씩 담겼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소세지 좀 더 주시면 안 돼요?”였다.


노파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먹었다. 허겁지겁 먹는 나를 보며 노파는 자신의 반찬을 나눠주었다. 감사하다는 말까지 삼켜가며 먹는 행위에 집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그제서야 여유가 찾아들었다. 노파는 한두 마디 질문을 하더니 자기 인생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방에 구멍이 생기고 금이 가더니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듯 빠르고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도중 다른 생각이 찾아들어 모두 기억나지는 않으나, 퍽 기구한 사연이었다. 젊을 적에 남편이 객사한 일, 시누이에게 재산을 빼앗긴 일, 돈 벌어오겠다며 해외로 나간 외동아들의 연락이 끊긴 일…. 승승장구하는 삶의 그래프를 정확히 x축으로 뒤집어놓은 형태였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삶이 반지하에 다다른 것은 꼭 정해진 운명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생을 이어가는 것은 아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 듯싶었다. 아들이 출국하는 날 선물해 준 것이라며 펜던트 목걸이를 보여줄 때엔 비로소 그녀를 연옥에 묶어두는 목줄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날 뒤로 노파는 제법 살갑게 굴었다. 어쩌다 마주치면 갖고 있던 뻥튀기나 강냉이를 한 줌 쥐여주고, 어떤 날은 지원 품목으로 받은 라면박스를 문 앞에 두고 가기도 하였다. 그녀의 집을 두들겨 아껴두었던 비스킷이라도 권했으나 노파는 젊은 사람이나 많이 먹으라며 한사코 거절하곤 하였다. 노파 덕분에 꼬르륵 소리는 면할 수 있었다.


지리한 장마가 끝날 무렵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들어 잠에서 깨었다. 손으로 방바닥을 되짚었다. 참방소리가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문에서부터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들판을 태우는 화마처럼 대형을 갖추고 서서히 진군하며 방을 잠식해 오고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멍한 채로 지켜보다가 200만 원이 넘는 베이스가 물에 잠기려 하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급한 대로 앰프와 베이스를 책상 위에 올리고, 둥둥 떠다니는 슬리퍼를 주워 신고 복도로 나섰다. 홍수라도 난 듯 계단을 타고 물이 왈칵왈칵 들이치고 있었다. 나 말고도 김 씨 아저씨가 복도로 나왔다. 우리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퍼서 계단 밖으로 퍼다 날랐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내다 버린 물은 이내 곧 계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짓을 십수 번쯤 반복했을 때, 김 씨 아저씨가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모서리에 머리를 찧어 피가 흘렀다. 발목도 삐어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고 허둥대는 것을 내가 겨우 일으켜 세웠다. 더는 무리였다. 소지품도 챙기지 못한 채 그를 부축하여 빌라를 빠져나왔고, 땀인지 비인지 모를 정도로 흠뻑 젖은 채로 정처 없이 걸었다.


다음 날 아침, 지친 몸으로 돌아오니 빌라 앞에 인파가 몰려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한 할머니가 어젯밤 미처 대피하지 못해 익사했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무언가를 싣고 계단을 올라왔다. 요가 머리 끝까지 덮여있었는데, 머리 부근에 반짝거리는 것이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노파의 펜던트 목걸이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나를 챙겨주었던 노파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배고픈 시절을 견디게 해준 은인을 나는 그렇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떠나보냈다. 후에 집주인에게서 들은 바로는 노파가 수면제 없이는 잠에 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수면제를 먹었기에 난리통에도 깨지 않은 것이라고. 그녀의 마지막이 비교적 평온했으리라 짐작하는 것이 나의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주었으나, 사실이 어쨌든 한동안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몇 해 전, 나는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동묘 구제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빈티지 시계를 둘러보던 중 한 좌판에서 눈에 익은 목걸이를 발견했다. 노파가 차던 펜던트 목걸이였다. 나는 노점상에게 어디서 구한 거냐 물었다. 주인은 “프랑스 귀부인 거요.”라고 답하더니, “비싼 거요.”라고 덧붙였다. 나는 침묵했다. 노파가 죽어서나마 귀부인이 된 것을 잘된 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귀부인이 된 현실에 개탄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질 않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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