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는 다음에,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일월 수필 2

by 일월


며칠째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열기는 사람들을 떼어놓고 있다. 회사 전화기가 울린다. 받아보니 모 증권사의 S부장님이다. “제가 본사 발령이 났어요. 인사드리러 갈게요.” 이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아쉬움과 함께 찾아들었다.



S부장님은 내가 입사 때부터 함께 협업한 분이다. 우리 회사와의 연은 98년도부터였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그분은 아들뻘인 나에게도 겸손한 태도로 일관하고, 상품 설명을 늘 처음인 것처럼 자세히 해주는 분이라 많이 믿고 의지하였다. 아쉽긴 하여도 지점 이동이 아닌 본사 발령이라니,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영전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S부장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제 영업 못하니까 본사 와서 자리나 지키라는 거예요, 쉽게 말하자면 좌천이죠.”



S부장님이 찾아와 담소를 나눴다. 좌천이라는 말이 과연 빈말은 아니었다. 어느새 임금피크제에 들어선 부장님은 명예퇴직을 하거나, 본사에서 저임금 저강도 사무업무를 하며 정년까지 자리를 보전하거나. 양자택일의 상황이었다. 명퇴를 하고 싶지만 나와서 딱히 할 것도 없고, 자녀가 어린 터라 정년연장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보전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직장에만 청춘을 바친 샐러리맨의 말로인가. 명예퇴직 제도가 없는 회사에 다니는 나로서는 다소 배부른 소리로 들리긴 했다만, 가장이라는 그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 무게감에 공감하기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S부장님이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씀을 끝으로 엘리베이터에 타서 고개를 숙일 때, 내 입에서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뱉어놓고 보니 웃겼다. 감사했습니다가 아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러 와주어 감사하다는 것인가? 여러 번 곱씹어보다 나의 당시 심정을 알아차렸다. S부장님과의 인연을 과거형으로 두기 싫은 것이었다. 작별인사를 하면 영영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늘상 헤어질 때 하던 인사로 떠나보낸 것이다. 서른 즈음은 아직 이별이 어색한 나이인가 보다.



저번 주말, 왕할머니께서 요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100세가 넘은 연로함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섭섭한 것은 달랠 길이 없다. 맞벌이를 했던 외조부모, 나의 부모를 대신해 형과 나를 돌봐준 것은 왕할머니였다. 양반집 규수의 총명함도 세월 앞에서 차츰 생기를 잃었고, 이제는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언제 떠나도 이상할리 없는 나이가 된다는 것은, 당사자만 빼고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일까. 왕할머니를 찾아뵌다고 한들, 정작 면전에서 작별을 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마음으로 감사를 전하고, 서서히 떠나보낼 뿐이다.



누군가 작별인사는 미리 하는 것이라 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그러나 나는 늘 그것이 어렵다. 안녕히란 말은 할 수 있는 만큼 미루고 싶다. 그것이 떠나가는 이를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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