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김에 꽃 본다

일월 수필 2

by 일월

언젠가 배우자란 나를 비추는 거울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행복해하면 아내도 행복해한다. 지나가며 흘리듯 말한 음식을 기억해 뒀다가, “그거, 먹고 싶댔잖아. 먹을래?”라고 물으면 배시시 웃는 표정으로 충분히 보답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준다. 고마웠다는 뜻이다. 아내의 행복한 표정을 자주 본다는 것은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그릇이 좁다 못해 좀스러운 구석이 있는 나는 자주 기분을 상한다. 그럴 때면 아내도 덩달아 울적해한다.


어제는 장을 보러 마트가 있는 대형몰에 찾아갔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웬걸, 마트가 휴업일이다. 주차자리를 찾는 것에서부터 잔뜩 짜증이 나있던 나는 입에서 험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와이프는 나쁜 말 좀 하지 말라며 속상해했다.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여졌다. 이 기분으로 돌아가면 말없이 앉아만 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저녁을 흘려보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내와 옥상정원을 찾아갔다.

소낙비가 한차례 쏟아부은 직후였다. 몇 주간 덧씌워졌던 후끈한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청록빛 풍경과 아이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에 가득 차 있던 분노는 어느새 수증기와 함께 증발해 버렸다. 아빠에게 번쩍 들려서 옮겨지는 꼬마아이와 아내의 손냄새를 맡고 가는 푸들, 발레리나들이 무대 양옆을 넘나들듯 지나가는 평화로운 사람들 틈으로 활기를 충전한 우리는 서점을 방문했다. 당장 집어 들고 싶게 만드는 예쁜 표지들과 그것을 잘 배치한 점원의 감각 덕분에 구경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아내에게 사과를 건넸다. ”마트가 안 닫았으면 장만 보고 돌아갔을 텐데, 휴업한 덕분에 이렇게 좋은 시간 보내네. 엎어진 김에 꽃 보는 건데, 아까는 짜증내서 미안해. “ 아내는 어렵지도 않다는 듯이 너그러이 받아들여준다.


가족구성원 중 누군가가 짜증을 내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불편함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디어야 한다. 단 하루도 평화롭게 지나는 날이 없던 유년시절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기분대로 행하고 나서 돌아오는 죄책감에 마음이 오랫동안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내 자식들도 과거의 내가 느낀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면, 실패한 아빠라는 자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도 삶의 좋은 점은, 매일 밤 해가 저물며 새로 시작할 기회를 준다는 것. 오히려 좋아, 엎어진 김에 꽃 본다라는 마인드를 장착하고 살아봐야겠다. 예측 불가능한 일이라는 파도를 넘고 나면 더욱 멋진 풍광이 맞이할 것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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