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수필 2
별안간 잠에서 깨어 샤워를 하고 책 읽는 새벽. 곤히 잠든 아내가 코를 찡긋거린다. 무슨 꿈을 꾸는지, 어떤 심정으로 지은 표정일지 궁금해진 나도 찡긋, 따라 해 보았다. 아내의 이마에 손을 가만히 대어 본다. 악몽을 꾸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어서,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꿈나라에도 전하고 싶어서. 그럼에도 혹여나 단잠일까 봐, 그것을 깨우게 될까 봐 차마 무겁게 누르지는 아니한다.
결혼이란 걸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남은 평생을 붙어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야근을 해서, 어떤 날은 약속이 있어서. 말을 섭섭하게 했다고 그날 저녁을, 몸이 아파서 사나흘 정도를 그저 그런 채로 흘려보내게 된다. 그런 날을 제하고 나면 우리의 사랑은 도시락이 된다. 마침 화창한 날에, 마침 시간이 떠서, 마침 돗자리가 눈에 들어와서 소풍을 가야만 까먹을 수 있는 도시락. 우리는 내도록 붙어있으면서도 사실은 내도록 붙어있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보고있어도 보고 싶고, 붙어있어도 붙고 싶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내 사랑은 도시락 대신 풍경으로 하고 싶다. 이왕이면 가벼워서 약한 바람에도 소리를 내는 풍경이 좋겠다. 도시락은 날씨와 시간과 장소가 교집합을 이루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다. 산들바람에도, 갑작스러운 돌풍에도, 심지어는 태풍에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그저 바람 하나면 되는 풍경이고싶다.
서울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내 아내는 식물을 닮아 비 오는 날이면 한껏 가라앉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비 오는 날도 제법 즐기게 되었다. 우산을 쓰고 카페에 갔을 때 느낄 수 있었다. 습기를 한껏 머금은 대기가 커피 향을 그윽이 날라다 준다는 것을. 화창한 날에만 즐거울 수 있다면, 삶의 절반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비 오는 날을 즐길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깨달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