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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n 26. 2023

웬만하면 기대를 하지 말자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날 5시쯤, 성수동의 한 까페에서 아는 형을 만나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마주 앉아 나는 글을 쓰고 이 형은 포토샵으로 뭔가 슥슥 만들어내고 있었다. 국문과 동기인 이 형은 시각디자인 복수전공을 해서, 가끔 지인을 통해 디자인 외주를 받곤 하는데, 그 벌이가 쏠쏠해 나도 디자인을 공부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심심했던 나는 형에게 뭘 작업하는 중인가 물어볼까 했지만, 작업 중의 예술을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것과 한창 하고 있던 집중을 깨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내 글이나 계속 쓰고 있던 참이었다. 


 갑자기 이 형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욕을 하는 게 아닌가. 꿍시렁꿍시렁 XX X같네 진짜. 아니 형 그게 무슨 소리야. 뭐 하는데 그렇게 욕을 해? 그 이유란 것은, 이 형이 이번에 한 밴드로부터 앨범 아트웍 의뢰를 받았는데, 요청에 따른 작업물을 보내주면 자꾸 심미적으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수정 요청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이 형은 남의 아트웍이건 뭐건 자기 작업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이라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번에 아트웍을 의뢰받은 밴드가 기독교 CCM밴드인데, 좋은 일에 자기 능력이 쓰인다는 생각과 종교 관련 종사자들의 의뢰는 작업 중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적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에 일부러 보수를 적게 부르고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형은 의뢰자에게 스스로 호의를 베풀었건만 여타 다른 아티스트들과 다르지 않은 정도의 작업 스트레스와 무수한 수정 요청, 의뢰자와의 맞지 않는 취향 등의 이유로 화가 난 거였고, 이럴 줄 알았으면 CCM 밴드라는 이유로 보수를 적게 부르지 말았어야 했으며, 지금은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 중이라는 것이 이 형 말의 골자였다. 형이 욕한 이유를 듣고 나서 든 생각은 이거였다. 


 그러니까 왜 굳이 보수를 적게 부른 거야.


 우리는 보통 종교 단체, 사회 단체, 착한 이미지의 기업, 평소에 인자하신 교수님, 내성적인 사람들처럼 만만해 보이는 유형의 단체, 개인들에게 더 많은 호의를 기대하게 된다. 열정페이를 요구한다거나, 좋은 점수를 받기를 바라는, 이러한 일방적인 기대가 충족될 경우에는 당연한 듯이 그 호의나 희생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 착해 보이는 단체나 개인이 기대를 저버릴 경우에는 당연히 일어났어야 할 이득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배신감이 크게 느껴지게 된다. 이 형도 의뢰인이 가진 종교인의 이미지에 걸맞게 물렁한 작업 강도를 기대했겠지만,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작업에 착수했겠지만, 현실은 형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순진한 녀석.


 대게 불화는 기대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대는 자신 행동에 대한 보상을 상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생각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화가 나지 않겠나. 문제는 “자기가 생각한 보상”에 있다. 사람이란 본디 이기적이라 자신이 받아 마땅한 보상보다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부분의 경우, 충족되지 않는다. 그렇게 혼자 열받아서 주변인들에게 감정의 쓰레기를 던진다거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불만에 따갑게 고통받는다거나. 물론 기대는 상황의 진척을 위해서 필수적이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또 그로 인해 너무도 많은 상처를 받는다. 혼자 하는 기대가 얼마나 파괴적인가. 얼마나 많은 기대들이 연인들을 싸우게 하고, 사회적인 분쟁을 일으키며,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지. 


 오히려 기대가 없음으로 더 풍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건 마치 기념일도 아닌데 선물을 사다 주는 애인에 크게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다. 평소부터 애인의 스윗함을 기대하는 삶이란 실망할 일밖에 없는 것이다. 바랄 정도만 바라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 것. 그런 것이 내가 바라 마지않는 평화롭고 충만한 사고방식이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글들이 잘 팔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난 아무런 연고도 유명세도 뭣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웬만하면 기대를 하지 말자. 기대하지 않음으로 얼마나 많은 불화가 사라질 것이며 개인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이 안 팔려도 괜찮아. 결과물을 내는 게 어디야."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난 아직 기대를 많이 하며 산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미래의 흔적이 너무도 허황된 것들이라 꿈에 다다르든, 꿈의 높이를 낮추든, 그 간극을 좁히고 채우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언제쯤이면 그 균형을 맞추게 되는 때가 오는 걸까. 


 나는 아직 기대로 인한 스트레스를 원만하게 해결해본 적이 없고, 해결할 자신도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만드는 일 자체를 피하기 위해 기대를 하지 말자는, 나약하다면 나약한 내 나름의 방어기제를 세웠다. 이런 방식이 얼마만큼의 효용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이라도, 내게 해가 되는 생각, 분쟁이 없는 세상, 평온 속에서 살고 싶다. 




 약간은 비겁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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