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일 Jun 30. 2023

죽지 않을 이유

죽고 나면 고통스러울 것도 행복할 것도 없다. 

오히려 살아가는 동안에는 고통스러울 일이 더 많고

행복할 일은 그에 비해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살고 싶어 한다. 


그 잠깐의 행복들이 살아갈 이유라도 되는지, 

아니면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희망인지.

죽어 없어지느니 고통이라도 소유하는 게 낫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보다 크다면 

굳이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죽음이 삶보다 더 합리적일 수도 있는데

왜 진지하게 죽음을 고려하지 않는 걸까. 


 현상 유지 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의사결정에서 나타나는 지각적 편향. 사람들은 현재의 성립된 행동을 특별한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이상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데에는 이 현상 유지 편향이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이라는 달리는 기차 위에서 뛰어내리기란, 가만히 기차를 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상태”에서 “죽음의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 아무리 괜찮은 선택일지라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으리라.


아무리 죽음이 합리적인 선택이라 할지라도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일 변화, 돌이킬 수도 없는

죽음을 선택하는 일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라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으려 든다.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느니, 가족이 슬퍼한다거나, 못 먹어본 게 많다거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막연한 삶의 소중함을 말한다거나.

우리는 현상 유지의 당위를 지키기 위해, 

하잘것없는 가치라도 긁어모아, 삶의 이유로 만들어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죽음의 이점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터부시되었고,

자연스럽게 죽음은 합리적 선택지에서 제외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죽는 게 나을지, 사는 게 나을지.

죽음이 낫다면 죽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 그 끝에서 살기로 결정하게 된다면,


그 고민의 결과가 아무리 하잘것없다 하더라도, 그 결정의 이유를 통해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웬만하면 기대를 하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