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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ug 14. 2023

지대방

 내 오랜 친우 윤모 군, 이모 군과 함께 북촌으로 “힙”을 찾으러 간 적이 있다. 여가를 보내는 방식이 비슷한 친구들이라 종종 좋은 까페를 함께 찾아다니곤 하는데, 이번 만남은 점심엔 북촌 삼청동 수제비, 저녁엔 안국역 오레노 라멘, 아침과 점심 두 곳만 대충 정하고 만난 꽤 느슨한 계획이었다.


 먼저 삼청동 수제비를 맛있게 먹고, 근처 커피방앗간이라는 까페에 가서 라떼를 먹었다. 길 따라 오르막을 걷다 남산으로 이어지는 삼청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종로의 한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서울 전경의 단편을 보기도 했다. 기와집의 녹고 있는 고드름을 굳이 쳐내 보기도 하고 각자 가져온 사진기로 풍경을 찍기도 했다.


 언덕을 내려오니 재동초등학교라는 초등학교 정문이 나왔는데 소설가 김유정, 서태지, 양희은, 배두나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는 소개가 정문 옆에 붙어 있었다. 당시에 서태지 노래를 듣곤 했던 우리는 제동초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아 제동초 나올걸~.” “제동초 나왔으면 월 500은 그냥 벌겠네~” 그렇게 웃기지도 않은 얘기를 하다 근처 문방구에 가서 불량식품을 사 먹기도 하고 근처 유명 샌드위치 맛집인 소금집에 가서 잠봉뵈르와 이름 모를 토마토 스프 하나씩을 시켜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안국역 근처 현대건설 노조의 파업 연설을 보기도 하고, 한옥 까페 어니언을 지나치기도 하고, 유명 까페 프릳츠를 구경하기도 했다. 저녁은 예정대로 오레노 라멘을 먹었다. 느슨한 계획으로 기어이 이 정도의 알찬 하루를 보내고 만 것이다. “힙”은 이미 찾을 대로 찾아버린, 운 좋은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저녁을 먹으니 7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집에 가기엔 아쉽고 어디 들어가서 쉴 곳 없나? 지금까지 우리가 거쳐온 장소들은 이미 상당한 흥행을 거뒀고 그 다음 장소는 웬만해서는 우리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터였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해야 하는 잘해야 본전인 상황, 그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 휴대폰을 뒤적이며 추위를 피할 곳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윤모 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찻집이 생각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윤모 군은 자기 여자친구가 정말 좋아했다며, 찻집이 분명 “힙”하리라는 여지를 뒤따라 걷는 이모군과 나에게 조금씩 흘려댔다. 그렇게 그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옹이 자국 가득한 나무로 만들어진 문에서부터 이 찻집은 아주 짙은 “힙”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인사동의 진면목인가. 난 단 한 번도 전통찻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분명 전통찻집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모이는, 까페보다는 탑골공원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젊은이와는 거리가 먼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통찻집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문을 열고 들어갔건만, 그 의심은 사르르 녹고 말았다. 꽃차의 향기, 벽면 빼곡히 적힌 손님들의 애정 어린 낙서들. 큰 솥에 뭔가를 계속 끓이고 있는 주인아저씨.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리워했던 무언가, 그 자체였다.


 자리에 앉으니 주인아저씨가 죽통으로 만들어진 메뉴판을 갖다주셨다. 테이프에 글자를 인쇄하여 그걸 죽통에 붙인 것이었다. 익숙지 않은 모양새라 보기 불편했지만 특이해서 좋았다. 이런 것을 요즘 “힙”이라 한다. 한참 고민하다 나는 송화 유자차, 이모 군은 단팥죽, 윤모 군은 박하차를 시켰다. 그리고는 벽에 쓰여져 있는 낙서를 구경했다. “19XX年 X月X日, 영봉 왔다 감.” “유향이년 진짜 재수없어! -옥향-” 지금은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을 그때 그 시절, 젊은이들의 잡담이었다. 그들은 2021년이 도래하여 자기들이 아줌마 아저씨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나는 아직 내 중년을 상상하는 일이 어렵다. 1 년 뒤의 일도 예상할 수 없으니, 단지 지금 그대로의 무능력한 인간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송화 유자차, 단팥죽, 박하차는 모두 일품이었다. 지대방에 “힙”을 느끼게 되는 이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모 군의 단팥죽을 한입 먹었는데 맛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달달하니 식감도 좋은 게 새알도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팥죽이었다. 팥죽의 진짜 맛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팥죽은 언제나 건강한 맛으로 점철되어 -그야말로 팥 본연의 풍미- 달달하지가 않았으니 즐겨 먹을 수가 없었다. 가족을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어머니의 다른 음식들은 모조리 맛있다. 변명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


 주인아저씨께서 몇 번이고 박하찻잎을 더 가져다주셔서, 우린 계속 박하차를 홀짝일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몇 개월 뒤, 인터넷에서 지대방 주인아저씨를 “연쇄찻잎마”라고 표현한 리뷰를 발견했는데, 이걸 당한 사람이 또 있었다니.. 완전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문득 나도 벽에 글을 쓰고 싶어져서 주인아저씨에게 펜을 빌리러 갔는데, 아저씨는 벽에 쓰지 말고 방명록에 글을 써달라 하시며 “지대방일기”에 대한 말을 꺼냈다. 영업을 시작한 82년부터 이곳을 찾은 손님들이 “지대방일기”라는 방명록에 길고 짧은 글들을 남겼고 그 책들을 보관 중이라는 얘기였다. 주인아저씨를 따라 좁은 통로를 지나 다른 방으로 가니 사람 키만 한 서가에 낡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었다. 이런 게 있다고? 말도 안 돼. 윤모 군과 이모 군을 불러 책장을 보여주고는 무작위로 여러 권을 골라 자리로 돌아왔다.


 고서를 펼쳐보니 빼곡히 적혀있는 정돈된 글씨체의 글들이 보였다. 분명 옛날 사람이 가지고 있을 법한 글씨체였다. 우리 아버지 글씨체가 생각났다. 80년대의 젊은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정돈된, 그렇지만 개성 있는 글씨체를 가지고 있었다. 글의 깊이에도 장난이 없는 수려한 문장들의 향연이었다. 확실히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글에는 고뇌가 있었다. 찻집에 오면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거나 방명록에 글을 끄적이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을 테니 글을 지어내는 일에 더 몰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생각이 “지대방일기”에 담겨 있었다. 본인만의 철학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고, 일기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어색해 글을 쓰던 이도 있었고, 여자친구를 구한다고 자신이 근무하는 삼청파출소의 전화번호를 적은 사람도 있었고, 세워야 할 이렇다 할 의무도 그 대상도 없어 축 늘어져 있는 좆을 가진 사내도 있었다. 고딩의 신분으로 IMF 시대를 사는 꽃다운 소녀, 이름 점을 보는 연인들, 자기들 얼굴을 그려놓고 017-279-54xx으로 전화하라는 자매, 98년 프랑스 월드컵 멕시코전, 네덜란드전 패배에 “통탄!”을 외치는 RED DEVELES -RED DEVILS를 잘못 쓰신듯하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개봉한 날 서울극장에 온 커플, 만남에 상처를 입어 이제는 겸허히 삶을 받아들이려는 남자까지. 82년부터 21년. 40년 가까이 축적된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가 이곳 지대방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 그 사사로운 역사가 지대방이라는 찻집을 더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힙”이라고 부른다. “힙”에는 사사로운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열 시가 다 되어 나갈 시간이 되었다. 계산하며 주인아저씨에게 단팥죽이 정말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대체 무엇을 넣으셨냐고 물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너스레 떠는 일을 즐긴다. 그래서 가끔은 누가 더 너스레를 잘 떠는지 대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질문에 주인아저씨는 좋은 팥을 쓰고 설탕을 많이 넣는다고 하셨다. 이 맛의 비밀이 그게 전부라니. 정말인가. 맛에 비해 단출한 레시피에 반신반의하며 인사를 드리고는 가게를 나섰다. 다음에는 ‘지대방일기’를 전부 읽겠노라고 다짐하며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2개월 전의 일이었다. 봄바람이 조금만 더 따듯해지면 내 발길이 지대방에 닿게 되기를.





 "지대방일기"에서 가장 감명 깊게 본 글이 있다. 결국 출발점을 맴도는 자신을 볼 때가 가장 두렵다는 한 남자의 짧은 글이었는데, 이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무제 (8x년 지대방일기)

작자 미상


늘상. 내가 나를 찾아 돌다 돌다 보면

언제나 느껴지는... 그런.

그런. 어떤 막연한 그런. 그런 불안함.

글쎄...

돌다 돌다 보며 다시 돌아 뒤돌아보면

결국 출발점을 맴돌던 그런 나를 볼 때가 가장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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