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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Oct 02. 2023

본인을 평범하다고 소개하는 심리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저는 XX에 살고 있는 XX살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이런 식의 소개말을 우리는 어디에서든 본 적이 있다. “평범한 직장인입니다.”라는 문장을 구글에 쳐보면 약 6,940,000개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가르친 표현도 아닌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25세 직장인입니다.” 이런 식으로 간단히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평범”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분명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나는 많은 이들이 본인이 평범한 사람이라 굳이 밝히는 지점에서 단순한 습관이나 정말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등의 이유가 아닌,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의도란 것은 바로 자신의 주장에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모습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이 평범하다는 소개말과 함께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제 말이 맞지 않나요?” “상대방이 잘못한 거잖아요?”와 같이 본인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본인 선택에 대한 당위를 누군가 증명,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당위성이 있든 없든,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고, 자신의 선택이 누구나가 할 법한 선택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글을 보는 불특정 다수의 얼굴 없는 대중들이 가지는 평범함이란 특성에 자신을 포함시킨다. 그렇게 본인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글쓴이가 일부러 공감을 유도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할지라도, 글쓴이 본인도 모르게 유도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마스크가 알게 모르게 행동의 자유를 제공해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사람들은 본인을 드러내는 일이 다른 이들에게 판단의 여지를 주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나 위치를 숨기고 이름이 없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 그렇게 본인(개인)에게 쏟아질 관심을 방지하고 대중들이 상황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본인이 대중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유도해낸다. 익명성이 평범하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자신의 민낯이 드러날 경우에는 공감을 받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평범함이라는 일종의 익명성 속으로 숨게 된다. 굳이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심리가 바로 이곳에 있다. 공감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배제한 채, 순전한 공감을 받고 싶으므로.


 이는 악플러와 유명인의 키보드 배틀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유명인은 그 사람 자체의 논리와 당위를 가지고 글을 남기고, 악플러 또한 본인 나름의 논리와 당위를 들고 악플을 다는데, 악플러의 경우에는 익명성을 등에 업고 자신의 의견이 대중들의 의견을 대변한다는 나름의 정의를 배경에 두기 때문에, 악플러들의 주장은 적잖은 공감과 지지를 받으며,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아젠다가 되어버린다. 유명인이 그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한다 하더라도 유명인은 얻을 게 없고 악플러는 잃을 게 없다. 그래서 악플러는 그 존재만으로 유명인에게 사회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큰 타격을 준다. 익명성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소개한 사례로 미루어 보았을 때, 보편성 획득 전략이 실제로 공감을 얻어내기에 유용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본인을 소개할 때 굳이 평범하다는 말을 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닌데? 나 그냥 할 말 없어서 평범하다고 말한 건데?”, “진짜 평범해서 그런 건데?”라고 항변한다면, 뭐 할 말이 없긴 하다. 정말 그렇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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