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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03. 2024

건치의 재능

 양치를 열심히 안 해도 이가 썩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양치를 열심히 해도 이가 썩는 사람이 있다. 


 하루에 두 번. 나는 하루에 두 번이 세상 사람들의 표준이라 믿고 싶다. 하루에 세 번 양치하는 게 기본이라는 걸 유치원서부터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스물다섯의 나는 정오에 일어나 한 번, 자기 전 샤워할 때 한 번 양치한다. 세 번 하는 게 상쾌하고 이에도 좋을 테지만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세 번 양치하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 치과에 갈 일이 있으면 엄마랑 같이 어린이 치과에 갔다. 가격이 더 저렴했던가. 하얀 가운을 입은 치과 의사 선생님은 거울로 내 앞니를 보여주면서 투명한 부분들이 잘 부서지고 잘 썩는 부분이라고 알려줬다. 내 앞니에는 투명한 부분이 꽤 많아 보였다. 치과 선생님은 이가 약하니 양치를 꼭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린 나는 투명한 부분이 약하다는 말을 치아를 구성하는 사골 육수 같은 게 빠져나갔기 때문에 투명해졌고, 그래서 오래 끓여진 소뼈처럼 잘 부서지고 잘 썩는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 이를 잘 안 닦으면 잇속에 있던 사골 국물이 더 빠져나가게 되는 걸까? 날 때부터 사골 국물이 빠져나온 채로 태어난 걸까? 양치하기 싫은데 양치를 열심히 하라고 하는 치과 의사 선생님이 야속했고, 갈 때마다 충치가 생겨있는 내 이도 원망스러웠다. 물론 아플 때만 치과를 가는 내 나쁜 습관 때문이겠지만. 이상하게 검진하러 가는 것 자체가 너무 귀찮고 싫었다. 그래서 충치가 생겨 고통받고, 치과를 가서 치료받느라 고통받고, 고통을 받으니까 치과를 싫어하고, 치과를 싫어하니까 충치가 생기는 끔찍한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는 1년 만에 구강검진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왼쪽 윗어금니에서 충치가 발견됐다. 그다음에는 뭐 별다를 것 없이 충치를 파낸 다음 세라믹으로 때우는 작업을 했다. 평생 쓸 치아를 또 썩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 치과 정기검진을 할 때가 되어 치과를 찾았다. 치과 특유의 기계 냄새, 소독약 냄새를 맡을 때면 종교가 없어도 기도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검진했을 때, 웬만하면 충치가 있었던 터라 안 좋은 표정을 하고 검진을 받았는데, 문제가 없단다. 문제없이 검진을 마친 게 얼마 만인가. 괜찮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게 다시금 놀라웠다. 그리고 물었다.

 “양치가 하루에 두 번으로는 부족한가요??”

 “수시로 하시는 게 좋죠~ 음식물 섭취하시고 30분 정도 있다가 양치하시는 게 좋아요. 치실도 꼭 사용하시구요.”


 멍청한 질문에 전문적으로 대답해주시는 우리 치과 의사 선생님. 수시로 하는 건 알겠는데, 세상에 치실을 쓰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요. 그런 사람은 이미 존경받는 대단한 사람일 거예요. 


 몇 년 전 군대 전역을 앞두고 왼쪽 아래 어금니가 아픈 것 같아 외출계를 내고 치과를 갔는데 거진 대부분이 썩어있었다. 대체 왜 몇 분이면 끝날 검진을 군대에 있는 동안 왜 한 번도 안 한 걸까 후회하며 신경치료를 받았다. 신경치료가 사실상 신경 제거술이라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신경을 제거한다는 건 아픈 것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라 더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더 내 게으름의 처참한 결과에 시무룩해 하고 있었는데, 금니로 바뀐 내 왼쪽 아래 어금니를 보니 미관상 썩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좀 풀려버렸다. 세라믹보다는 금니인 편이 돈이 많은 느낌, 클래식한 느낌이 있을 것 같아 금니로 결정했던 터였다. 금니 관련 스몰토크를 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대학 다니면서 몇 번 했다. (금니를 보여주면서 “부자 같지 않아?” 이런 거)


 신경치료를 한 뒤로 실생활에서 불편한 일들이 정말 많아졌다. 원래도 이가 안 좋아서 차가운 걸 마실 때 이가 시렸는데, 금으로 어금니를 대체한 후로는 이가 시리다 못해 아리다고 해야 할까. 얼음을 치아에 0.5초 이상 대면 미치도록 아리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시원한 냉면을 잘 못 먹게 되었고, 살얼음이 띄워진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지 못한다거나, 친구가 선심을 써서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고 해도 쉽사리 앙깨물기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딱딱한 하드면 어떻게든 송곳니로 베어 먹겠는데, 송곳니로 끊을 수 없는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건 앙깨물기를 쉽사리 할 수가 없다. 그럴 때면 그냥 “나 안 먹을래.” 이러고 마는 것이다. 치료가 잘못된 거였는지, 애초에 내 이가 약골이었던 건지.

 

 선천적으로 이가 좋으면 양치를 안 해도 이가 잘 안 썩고 선천적으로 이가 나쁘면 양치를 잘해도 이가 잘 썩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가 잘 썩는 나의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가 좋은 사람은 어쨌거나 이가 안 썩게 되는 것이고 이가 나쁜 사람은 양치를 잘해도 썩게 될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재력있는 부모님을 만나면 개떡같이 음악하고, 예술한다고 설쳐도 망하지는 않는 것이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열심히 살지 않으면 태어난 그대로 가난한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이가 안 좋은 놈은 썩지 않기 위해서 같은 양치질이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치실까지 동원할 정도의 수고를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담배를 매일 두 갑씩 펴도 폐암이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담배를 평생 입에 대본 적도 없는 사람이 폐암에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이유들이 병에 작용하겠지만, 가족력과 타고난 폐의 상태가 폐암 발병의 여부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면 타고날 필요가 없는 게 있긴 한가? 재력, 외모, 키, 나라, 지역, 부모, 재능, 후각, 시각, 청각, 건치, 미각, 탈모, 피부, 지능..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타고 날 필요가 없는 건 생각나지 않았다. 노력??? 노력의 재능도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특성인 거 같고.. 지구인 모두에게 주어진 공기는 어떨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마저도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하나 있는데,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것은 그저 살아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뿐이었다. 존재한다는 것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유일한 사실이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살아있음, 존재함에 감사해야 하나. 태생부터 기울어져 있는 세상에 불평해야 하나. 모든 것이 평등하여 같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불평등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 고통이니 그 불평등함을 인식할 정도의 지능을 가졌음에 불행을 느껴야 하는지 행복을 느껴야 하는지. 아니면 이런 생각이 쓸모없는 것인지. 나는 언제나 정답이 절대 없을 문제를 계속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는 언제나 정답을 알아내는 일에 실패한다. 


 다시 생각한다. 존재 이외의 모든 조건이 동등하지 않다면, 나의 조건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 반 이상은 되는지, 그 비교의 대상을 세계 전체로 잡아야 하는지, 한국 내에서 잡아야 하는지. 인프라 좋고 치안 좋고 배달문화도 발달하고 물도 물 쓰듯 쓸 수 있는 한국이라는 꽤 편한 나라에 있는 이상, 당장 생존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기만인가. 그럼에도 분명 선진국에도 불행한 사람들이 많고 나도 불행할 때가 많다.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존재에 감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치아가 무사하다는 것에도 겨우 감사할 수 있었는데, 존재에 감사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하지만 돈을 벌고 쓰는 것이 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부여된 의무인 이상, 감사하는 일이 밥을 맥여주지는 않는 것이다. 


 재능이 있는 인간은 열심히 하나 안 하나 굶어 죽을 일은 없겠지. 내 재능은 뚜렷하지가 않아서 열심히 해도 벌까 말까.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재능 선생님도 우리 엄마도 나도 성공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과연 내게 뛰어난 재능이 있는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고, 정말 내가 재능이 없을지도 모르니 선택지는 발버둥 치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노력도 재능이라고 앞서 생각했지만, 노력의 재능이라는 건 종교 같아서 있다고 믿지 않으면 없는 것이고 있다고 믿으면 정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노력의 재능이 있다고 믿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계실지 모를 재능께서 내게 응답해주시길 바라며 끝없이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말까. 아니면 신경치료 같은 걸 받아야 하는 때가 온다. 이가 원래 안 좋다고, 이를 안 닦아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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