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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Feb 05. 2024

떨려도 괜찮아요!

 충치 상태가 심각해서 금니를 씌우거나, 충치를 제거하고 금이나 세라믹, 레진 등으로 때우는 인레이 시술을 하게 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치아를 본뜨는 일인데 보통 물렁물렁한 핑크색의 액체괴물 같은 게 올려져 있는 틀을 물고 있는 일을 말한다. 치위생사가 1분~2분 정도 물고 있으라고 하면 꼼짝없이 그걸 물고 기다려야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생각이 엄청 많아지게 된다. 


 어느 정도의 강도로 물고 있어야 하는 거지? 침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혀로는 그 액체괴물의 신기한 맛이 느껴지는데, 익숙하지 않은 상큼한 맛이라고나 할까. 그걸 깨물고 1분 동안 가만히 있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다. 인상재가 올려져 있는 틀이 움직이지 않게끔 턱에 힘을 줘야 하고, 그러자면 턱이 떨리면서 아파오기 때문이다.


 턱이 떨리고 아프면, 그런 과정에서 나온 본이 제대로 떠졌겠느냐는 의심이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된다. 본이 제대로 떠졌을까? 내가 턱을 조금 움직인 거 같은데..? 침을 삼키다가 좀 움직인 거 같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내 심정을 알 리 없는 치위생사는 순식간에 내 입을 벌린 후, 내 본을 가져가 버린다. 저 망했을 본으로 금니나 인레이를 만들어 봤자, 이에 맞춰보면 분명 치아와 보철물 사이에 빈틈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또 쉽게 금니 내부에 충치가 생길 테니, 걱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본을 다 뜬 뒤에는 파란색 보강재나 임시치아를 시술 부위에 붙이고 찝찝한 기분으로 집에 가게 된다. 


 일주일이 지나 완성된 금니나 인레이를 내 시술 부위에 대보면 분명 틈이 있을 텐데, 그 틈을 치과의사 선생님이 발견할 수 있을까? 만약 치과의사 선생님이 하자를 알아채서 다시 본을 떠 금니를 녹이고 다시 보철물을 만든다 한들, 난 다시 파란색 마이티퍼티 같은 보강재나 임시치아를 한 주 동안이나 더 이에 붙이거나 끼우고, 불편하게 그 부분을 마음껏 사용도 못 하면서 살아야 한다. 실수로 음식을 잘못 씹게 되어 엄청 아프거나, 보강재가 떨어져 다시 치과에 가서 보강재를 붙이거나, 임시치아를 다시 끼우러 가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나는 일주일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며칠이 지나고 치과에 가면 다양한 걱정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보철물들은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보철물들은 몇 년이고 내 치아에 잘 들러붙어 있다. 결론적으로 내가 걱정한 일들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마음먹고 이를 움직이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본이 잘 떠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한 일들은 말 그대로 괜한 걱정이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누구라도 내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먼저 말해줬더라면, 치위생사분이 내게 액체괴물을 물릴 때 약간은 움직여도 괜찮아요, 라거나 약간은 떨어도 괜찮아요, 라고 나에게 한 마디만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약간은 떨어도 괜찮아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다시 하면 되죠.”, “잘 된 거 같은데요?”와 같은 따듯한 진심 말이다. 그랬으면 조금이라도 덜 걱정하면서 며칠을 지냈으려나. 내 그런 격려를 받아본 지 얼마나 되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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