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자리가 있잖아, 왜 여기 있니? 정리당해볼래?
지금 듣고 있는 음악 - I'll be there, Eve
지금 느낌, 분위기 - 이 노래를 왜 흥얼거렸지.. 잊고 살던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다니
회사 복지중 한 가지가 '밀리의 서재' 정기구독이나, 책을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다.
밀리의 서재는 신청 기간이 있는데, 늘 신청 기간을 놓친다. 신청해야지 해야지 했다가, 자꾸 놓쳐서 한번 써 보지도 못했다. 오디오북 들으면서 잠들고 싶었는데.. 이건 깜빡 잊어서가 아니라 게을러서다.
책을 구매하는 것은 구매 기간이 넉넉해서, 결국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사게 된다. 그래도 좋은 것은 종이책은 보는 맛이 있다.
30대 이후로는 흔한 소설책조차 사 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회사 복지를 누려본답시고 재작년부터 몇 권씩 사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가 소설은 너무 심심풀이인 것 같았고, 업무에 관련된 자기 개발서나, 역사와 경제 서적 위주로 읽었다.
자기 개발, 역사, 경제 서적에는 큰 공통점이 있다. 결국 성공한, 업적이 있는 OOO 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 담겨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얻어가는 게 있으리라, 따라 할 것이 있으리라 하는 것 같았다.
책의 주인공이나 글쓴이들은 (*저명한 교수, 자산가, 위인) 대부분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런 습관이 생활 전반에 깔려있어야 무언가를 이루는 것 같이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한번 꺼낸 건전지 묶음이 널브러져 있거나, 시든 꽃을 치우지 않거나, 현관에 웬만한 신발들이 다 꺼내져 있거나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퇴근 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치워야지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생각뿐이고,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조금조금씩은 치우는데, 정리하는 물건 대비, 어질러지는 물건이 더 많게 되니 치우기를 포기했다.
꼴에 또 깔끔한 편이라 정리 안 된 물건을 볼 때마다 늘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그리고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집에 들어왔을 때 막 더럽거나 어지럽고, '이거 언제 치우나'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다. 이런 작은 것조차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성격 탓에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웃긴 것은 그렇다고 내가 부지런하지는 않다. 게으른 게 맞는 것 같다.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고, '딱', '딱' 막힘없이 일들이 처리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것 만 보면 부지런한 것 같은데..? 아니다, 오히려 게으르다. 게으르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다.
주변 정리가 안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창의력이 저하되고, 마음이 지치고, 행복도가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물론, 점점 더 게을러지게 되고 체화되어 생활을 무너뜨린다.
요즘 계속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는데.. 이런 감정 상태를 회복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청소라고 들었다. 머리도 쓸 필요 없다. 보이는 물건들 하나하나에게 물어본다.
"너는 너의 자리가 있잖아.", "왜 여기 있니?", "정리당해볼래?"
청소를 해야만 하는 좋은 이유가 생겼다. 집에 손님들이 오시기로 했다. 집에 누가 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동네 근처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커피는 우리집에서 마시기로 했다.
먼저 화장실 청소를 했다. 거울부터 깨끗하게, 세면대, 변기, 욕실 바닥.. 그동안 신경을 너무 못 썼다. 청소를 하면서 샤워까지 논스톱으로 해 치웠다. 그다음은 나의 밥벌이 공간인 서재. 말이 서재지, 그냥 컴퓨터 방이다. 코로나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에.. 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중요한 곳이긴 하다. 안 쓰는 물건들은 서랍으로 자리를 찾아주고, 펜이며 노트며 할 것 없이 각자의 자리로 보내줬다.
신기하게도 청소를 하는 동안에는 걱정, 근심 했던 것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오롯이 더 깨끗이, '여기다 두면 더 깔끔할까', 여기저기 쓸고, 닦을 뿐. 잡념이 생기지 않아 청소는 청소만의 큰 매력이 있다. 한번 시작하는 건 힘들지만, 시작하고 나면 또 중간에 청소를 멈출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번에는 침실.
겨우내 썼던 두툼한 거위털 이불을 탁탁 턴다. 이불은 집에서 세탁을 하지 못해, 셀프 빨래방으로 간다.
세탁 30분, 건조 40분. 카페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를 먹고, 몇 주만에 머리를 자르러도 갔다.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빨래와 식사와 머리도 잘랐다. 밀린 빨래도 돌려놓고 나갔었다.
돌아와 거실 커튼을 치고, 환기도 시키고, 청소기를 돌리며, 음악을 들었다. 이후에는 밀린 설거지와 세상 모든 물건이 다 놓여있는 식탁을 치웠다.
새 집 같다. 이사 왔을 때처럼. 하얀 벽지가 더욱 밝아 보이고, 밝은 느낌이 드니, 기분도 밝아졌다.
조금 하기 싫더라도 귀찮더라도 싹 치울 것을.. 바보같이 그냥 바라보면서 스트레스만 받았다. 주말마다라도 했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기분이 밝아졌을 거였잖아.
치우기 싫어서 어질러 놓지 말아야지가 아니고, 앞으로도 편하게 계속 어지르자.
그래야 습관처럼 일주일마다 기분이 밝아질 일이 생길테니까.
그리고 지금 기분이 더 좋다. 내일부터 진짜 휴가 시작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