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갖는 1개월 휴가
지금 듣고 있는 음악 - One Summer's Day, Hisaishi Joe
지금 느낌, 분위기 - 여름밤, 가볍지 않은 빗소리가 들리는 아주 시원한 내 방
2023년, 올해는 직장 생활을 한 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지금 4월이니, 정확히는 9년 4개월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10년, '10'이라는 숫자를 생각해 보니 꽤나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한 것 같기도 하고, 10주년 같은 느낌도 들고, 축하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잠시 쉬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 그래도 조금 오래 일 한 것 같지 않아?', '그동안 힘든 일 많았는데', '벌써 10년째라고?', '지나고 보니 열심히 살았었네'
10년 동안 몇 번의 이직을 했고, 퇴사와 입사 사이에 1주~2주 정도 쉬었던 것이 장기 휴가 전부였다. 물론 매년 15일의 연차가 주어지지만, 잔병치례가 조금 있어서 아플 때 쓰려고 마음대로 막 쓰지는 못했다. 돈 빼고는 뭘 그렇게 아끼는 스타일이다. 휴가도 아낀다.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쯤은 9시간, 10시간짜리 비행이 필요한 먼 해외여행을 일주일씩 다녀오기도 했다.
최근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점점 더 많아지고, 풀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로, 마냥 모니터 앞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고, 생각도 집중도 안되고, 우울감이 찾아오는 등의 번아웃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진짜 번아웃 인지도 잘 모르겠다. 일을 하기 싫은 건지 정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건지..
어쨌든, 나는 이 10이라는 숫자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고, 10년째나 되었으니, 이번에는, 이 참에, 이 핑계 삼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 한 달간 쉬기로 했다.
작년에 너무 바빠서 사용하지 못한 휴가가 많고, (*휴가도 아끼는 스타일) 그게 올해로 넘어와 휴가가 아주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한 달 쉬고 싶다고 마음대로 쉴 수 있는 직장이냐? 그렇지는 않다. 나의 보스에게는 내 휴가 내 마음대로 쓰겠다고 선언이 아닌 허락을 구했다.
일수로는 30일, 사용한 휴가는 20일. 일 할 때는 한 달 정말 금방 가는데.. 눈 떴다 눈 감으면 이번달도 지났구나 하는 게 한 달인데.. 휴가는 얼마나 더 짧을까.. 10년 만에 이렇게 쉬어본다는 내심의 짜릿함과 첫 방학 같은 설렘, 그리고 역시나 짧겠지 하는 걱정, 의미 있게 쓰고 싶은 욕심이 든다.
알찬 휴가 보내기의 시작은 브런치에 글을 그냥 써 보는 거다.
1. 휴가 계획 세우기
학생 때 방학이 아니고서는 한 달을 쉬어본 적이 없으니, 쉴 때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 물론 방학 때도 계획을 세워서 보내지는 않았다. 방학은 매년 2번이나 찾아오고 많이 기다릴 필요도 없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뭘 하면 알차게 보내는 걸까?
2. 글 써보기
그동안 여러 가지 생각한 것들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귀찮아서 안 썼다. 메모장에는 키워드 몇 개씩만 적어 놓고 잊어버리지는 말아야지, 나중에 꼭 길게 써야지 하고는 지금까지 한 문단도 채우지 못했다.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든, 생각한 것을 정리하고 기록하든 뭐라도 써서 남기고 싶다.
3. 아무것도 안 하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해보고 싶다. 그냥 먹고, 마시고, 자고, 쉬고, 먹고, 마시고, 자고 이런 생리적 욕구만 채우는 것만 하고 싶다. 먹고, 마시고, 자고, 쉬는 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닌 것 같네, 뭘 하긴 하는 거네.
4. 기획서 쓰기
공상, 상상하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가지 만들어 보고 싶은 서비스나 아이템들이 있다. 이것들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획서를 써 보고 싶다. 물론 한 달 만에 기획서를 다 쓸 수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지만..
이번 휴가의 제일 높은 우선순위는 기획서 쓰기 같다. 이것은 반드시 휴가 동안 완료하고 싶다.
5. 회복하기
번아웃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 내가 내 상태도 모른다. 마음을 많이 혹사시킨 것은 맞다. 열심히 일할 때는 하루에 12시간, 14시간씩 일 해왔다. 새벽 4시에도 퇴근하고, 밤을 새워 일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어쩌다 한두 번이지만은 이런 미친듯한 업무량이 나에게는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한 달 동안 내 마음을 꼭 회복하고 싶고, 다시 예전처럼 열정 넘치는 나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스트레스 때문에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를 않았다. 이 덕에 체중이 너무 많이 감소되었는데, 다시 정상 체중과 체력을 만들고 싶다.
공식적으로 휴가의 시작은 4월 17일.
오늘은 휴가 시작 전날, 미리 설레는 마음으로 설레발을 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 달 동안 잘 쉬어보자, 잘 회복하고, 잘 지내보자. 아깝지 않게.
그리고 다시 잘 돌아가자. 원래의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