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욕이 사라졌다. 1

가져 본 적도 없지만, 갖고 싶지도 않다.

by 일리
지금 듣고 있는 음악 - 있는 그대로, 김혜림
지금 느낌, 분위기 -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80'-90's 시티팝. 약간은 촌스럽지만, 그래도 좋다.





- 1화 -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조건 손에 넣을 궁리를 했다. 가질 수 없는 것도 가지려고 애썼다. 결국 어떻게든 갖게는 되더라. 잠시 손에 쥐었다가 놓게 되더라도.

물론 슈퍼카를 사고 싶다거나, 강남의 아파트를 갖고 싶은 수준의 얼토당토 한 수준은 아니다. 어느 정도 사치스럽고, 어느 정도 자랑할만하며,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그런 수준의 것들이었다.


유년 시절에는 떼를 쓰든, 앵무새처럼 말하든, 세뱃돈을 모아서든, 갖고 싶은 것을 사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반항하지 않는 대가로,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는 사탕발린 말로 부모님의 지갑을 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소위 말하는 '엄마 카드'를 썼다. 대학생 때는 데이트 비용, 술, 담배, 밥, 교통비, 휴대폰 요금.. 한 달에 최소 6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를 썼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한 달 용돈으로 30만 원도 안 쓰는 것 같은데. 심지어 그 시절 100만 원은 지금보다 더 큰돈이었고, 왜 그렇게 많이도 썼는지 모르겠다.

많이 쓴 것도 문제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성인이 아니었던 거였다. 법적으로 만의 성인인 상태.

다 떠나서 이런 부류의 예전 내 행동을 생각하면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 나는 매달 저렇게 썼으면서.. 지금 부모님께 매달 용돈을 드리냐? 10만 원도 못 드리는 상황이다..


취업을 해서는 한 달 월급 그대로를 쓰고도 돈이 모잘랐다. 그래서 또 '엄마 카드'를 썼다.

물론 월급이 작긴 했다. 초봉이 2500만 원쯤 되었던 것 같다. 순수 통장에 찍히는 돈은 200만 원 남짓했다. 돈을 번답시고, 씀씀이는 더 커졌다. 그러다 보니, 월급으로도 돈이 모잘랐다. 신나게 썼다. 그 덕에 엄마의 휴대폰 알림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댔다. 이상하게 그렇게 써도 더 쓰고 싶었다. 먹고, 마시고, 놀고.. 저축을 했었더라면, 지금쯤 어느 정도 목돈이 되었겠지..

후회를 하긴 하는데 '돈을 모았으면 좋았을 걸' 이런 후회는 아니고, '엄마한테 더 잘할 걸' 이런 후회를 한다. 부모님이 부자도 아니고, 100만 원 정도면, 당시 엄마 월급의 30% 정도 수준이었던 것 같다.






점차 점차 경력이 쌓이면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한 직장에는 정말 '능력자' 들이 많았다. 일 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학벌에 기가 죽었다. 팀 동료 대부분이 SKY 출신 또는 외국 유명 대학 출신이었다. 거기서 내 학벌은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보다 더 낮았다. 출신 학교 이름을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그래도 괜찮았던 것은, 동료들보다 학벌이 낮아도, 같은 위치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이 뿌듯했고, 이런 부분으로 늘 자신감이 있었다.

일을 잘한다? 능력이 있다? 모르겠다. 처음에나 실력차이가 나지, 하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물론 걔 중에 한 명씩 천재 같은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전까지는 뛰어난 동료들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대부분 나랑 비슷한 처지였다.

이 회사에 오고 난 뒤 '능력자'들이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 뭘 좋아할까?, 취미는 뭘까?, 어디에 살까? 등 사람들의 배경이나 소유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했고, 관찰했다. 물욕이 넘쳤던 시절이기에, 누굴 만나도 저런 것부터 보이고, 저런 것만 생각하게 되고 그랬었다.


'뭐 눈에는 뭐 만 보인다고'


머리도 좋고, 좋은 대학 출신에 일도 잘하고.. 알고 보니 집안도 다들 좋았다. 그런데 다들 꾸밀 줄 몰랐다. 꾸밀 줄 모르는 것인지, 꾸밀 생각이 없는 것인지, 꾸밀 필요가 없는 것인지. 당시의 팀원들이 이 글을 본다면,


- "무슨 소리야! 엄청 꾸미고 다닌 건데!"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상상했던 이 회사의 직원들의 외향적인 모습은 Fancy 할 것 같아, Gorgeous 하겠지 하며 상상했었다.

아니었다. 그들도 보통의 사람이었다. 나보다 가진 것이 훨씬 많은 사람들도 그냥 보통의 사람처럼 생활했다. 스포츠 브랜드의 후드티를 편하게 입고, 똑같은 청바지를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입고 다녔다. 책가방을 메고, 유행 지난 운동화를 신고, 중저가 시계를 차고.. 되게 멋있다, 되게 이쁘다 하는 그런 기대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실망도 조금 했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또다시 나만의 Wish list에 뭘 자꾸 담았다.


1600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100만 원짜리 신발을 신고, 70만 원짜리 바지에 30만 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차는 당연히 외제차 몰고 다녔고.. 월급을 많이 받게 되어서 그렇게 썼었냐?라고 물어보신다면, 버는 돈이 모잘랐다고..

전 직장에서는 내 아이템 한 개가 바뀔 때마다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 "오, 샀네.. 멋있다. 얼마야? 어디서 샀어?", "대박.. 역시 금수저 맞았구나."


저런 말로 거들어주면 괜스레..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모지리 같지만, 어느 정도 기분이 좋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놈의 회사에서는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한 명 또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뭘 샀을 때 내적 만족은 극에 달하는데 외적 만족은 예전보다 못했다. 만족감이 예전보다 떨어지니 더 더 더 비싼 것을 샀냐? 아니면 SNS 자랑질을 하면서 채웠냐? 아니면..?

오히려, 꾸미는 게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에이.. 예전만 못하네’ 그리고 나이도 먹어갔다. 솔직히, 꾸며서 잘 보일 사람도 없었다. 자기만족 그 자체였다.

그렇게 그렇게 지냈다. 조금 덜 만족스러운 사치를 부리면서 지냈다.






연말의 고과 시즌이 지나고, 연초가 지나, 성과 평가 발표가 났다. 스톡이 어떻다더라, 누가 대박을 냈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았다.

근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꽤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같이 일했었던 유관부서의 매니저였다. 그분의 외형적 모습을 감히 평가하자면, 40대 초반 아저씨, 위에서 말한 맨날 같은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다수 중의 한 명, 회사 후드티, 헤리티지로 나온 줄 알았지만 정말 오래 신어서 헤리티지처럼 보이는 운동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책가방. 별로였다.


'그냥 매니저 아닌가, 무슨 대박이 났다는 거야'


얼마 후, 정말로 기사가 났었다. 신문 기사에서 회사의 이름과 그분의 이름이 보였다. 국내 연봉 Top~ 어쩌고 하는 기사였다. 작년 보수 총액이 50억 수준이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다시. 다시. 0이 몇 개인지 다시 세었다.


첫 번째 놀라운 점은 직장인도 이렇게 돈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놀라운 점은 그냥 매니저라고 생각했지만.. 보통의 매니저는 아닌 '능력자'였다.

세 번째 놀라운 점은 기본급도 높았다. (*기사에 보수 총액의 세부 내역이 공개되어 알게 됨)

많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저분처럼 능력자는 아니기에,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것처럼. ’내 목표야‘ 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동 떨어진,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 이런 느낌으로 다가와서, 부러움은 쉬이 사그라들었다.




- 이이서, 2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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