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울했나봐..
지금 듣고 있는 음악 - 가까이하고 싶은 그대, 나미
지금 느낌, 분위기 - 80'-90's 시티팝에 꽂혔다. 재생 목록을 만들고, 셔플 버튼을 눌렀다. 풋풋했던 시절로 돌아간다.
비교 대상이 될 법한 상황이나, 사람과는 늘 '자신'과 비교를 하게 된다. '쟤는 뭔데 저렇게 행복해 보이지', '저 사람은 좋겠다', '부럽다', 그러다가 갑자기 짜증이 나면서, 비관 모드로 바뀐다.
- "에휴.. 나도 남들처럼 걱정 없이 살고 싶다.."
그런데 비교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나, 사람들과는 비교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재용'과 나를 비교하겠는가..? '이재용에 비해 나는 가진 것이 없네.. 휴..' 이런 생각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도 잘하지 않을 것 같다.
남들보다 비교 우위를 갖고 싶어서 또는 나는 쟤 보다 어디쯤 위치에 있나를 알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는 남들과 비교를 스스로 한다. 부모님한테는 엄마 친구 아들, 딸 이랑 나랑 비교하지 말라고 허구한 날 말하지 않았나.
다시 돌아가서,
비교를 할 대상이 아닌 '다른 세계 사람'으로 보이니, '50억 연봉'의 아저씨가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1화에 소개됨) 나랑 비슷한 위치에 있었으면, 시샘하듯 '짜증 나, 뭔데. 속상해' 이랬을 테지만. 비교 대상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그 사람을 보게 되었다.
원래 연봉이라는 것이 공개되는 것은 한국 직장에서는 매우 금기(禁忌) 시 되고 있어, 그분의 연봉이 기사에 까지 났으니, 그분은 너무 민망해하면서,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 나라도 모든 사람이 나의 연봉을 알게 되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것 같긴 하다.
(*당시에는 국내 회사만 그런 줄 알았는데,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연봉은 서로 간에 비밀이다)
당장은 바뀐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냥 또 그랬다. 똑같은 청바지를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입고 다니셨다. ‘내일도 같은 청바지를 입고 오시겠지?’ 강제 헤리티지가 된 낡은 운동화도 그대로였다. 책가방도 마찬가지. 그냥 그대로였다.
1주일이 지났다.
2주일이 지났다..
3주일이 지났다...
머릿속에서 그분은 사라졌다. 잊혀졌다. 유관부서지만 근무하는 '층'이 다르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마주칠 일도 없었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기회도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잊고 살았다.
몇 달이 지났다.
수개월쯤은 지난 것 같다. 4개월쯤 지났을까.. 카페테리아에서 그분을 보게 되었다. 나는 외향적인 사람 중에서도 내향적이다. 무슨 소리냐? 낯을 많이 가린다. 그래서 잠시 스친 사람들과 오랜만에 마주치면 쭈뼛거리거나, 못 본척한다. 먼저 인사하기 쑥스러워서..
눈이 마주친 것 같지만 애써 모른척하며 눈인사도 하지 않았다. 멀찌기에 있었다. 멀리서 습관이 발동되었다. '뭐 입었지, 뭐 바뀐 거 없나' 욕망 덩어리였던 나는, 또 겉모습만 보고 있었다.
바뀐 거라곤 계절이 바뀐 탓에 후드티에서 얇은 반팔차림이었다. 브랜드도 모르겠는 청바지와 그냥 스포츠 브랜드 운동화. 그게 전부다.
'와, 나였으면.. 비싼 옷에, 비싼 신발에, 비싼 액세서리를 샀을 텐데. 강남에 집도 사고, 페라리도 한대 뽑고..'
너무 바뀐 게 없으니, 보는 재미도 없었다. 그렇게 다시 가을이 왔다. 다시 꺼내 입으신 후드티와 여전한 청바지와 운동화. 그게 전부였다.
이쯤이 거의 이 회사를 다닌 지 1년 반? 쯤 되는 시점이었을 거다. 그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던 것 같다. 주위 누구를 봐도 그들은 외형적인 부분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외형보다 내실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위 환경이 그렇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소비에서 오는 내적 만족과 외적 만족이 점점 사라졌고, 더 이상 소비는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았다.
몇십 년 동안 쌓아온 소비 습관과 물욕이 1년여라는 짧은 기간 동안 타오르는 숯에서 점차 재가 되어 꺼져갔다.
아마 내 소비 습관과 비슷한 사람들은 열에 한두 명 일 것이다. 펑펑 쓰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큰돈 나가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작은 돈 나가는 것을 아낀다. 특히, 모임에서 계산을 할 때 우물쭈물하는 게 싫어서 큰돈이 나갈 것을 알고도 내가 계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스타일이다. 그리고 물건 한 개를 사도 아주 아주 좋은 것을 산다. 싼 거 여러 개를 사서 한 두 번 쓰기보다는 비싼 거 한 개를 꾸준히 쓴다. 잘 버리지도 않는다. 고등학교 때 입던 티셔츠들은 지금 잠옷이 되었다. 나름 비싸게 주고 산 것들이 대부분이라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미련이 남아서 물건에 추억이 있어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나 역시 외형적인 모습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회사에 100억, 300억씩 재산이 있는 임원진들도 대충대충 입고들 다녔다. 그렇다고 멋을 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검소하게 보였다.
그런 분도 잘 차지 않는 비싼 시계를 사원 나부랭이인 나는 당당하게 차고 다녔다. 어느 순간 부끄러웠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충동구매는 최대한 절제했다. 그리고 겹치는 아이템은 두 개 이상 사지 않았다. 신발이 50~60켤레는 되었다. 새거 한 개를 사면 그것만 주야장천 신다 보니, 신지 않던 신발들은 중창이 경화되어 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돈지랄'을 했었다. 웬만하면 잘 안 버리지만, 경화된 신발은 신을 수가 없어 버리게 되었다. 너무 아까웠다.. 앞으로는 꼭 필요한 것만 사야지 다짐하며 마음과 태도를 고쳐갔다.
과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카드 값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통장 잔고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0과 마이너스 사이에서 찰랑 거렸던 통장에 숫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사고 싶은 게 생기면 구매 리뷰를 읽었다. (*쓰다 보니 거의 쇼핑 중독 같은데, 환자는 아니다..) 유튜브에서 '내 돈 내 산' 리뷰 영상들도 봤다. '아, 저런 기기였구나', '디자인 별로네', '실내 인테리어가 멋있긴 하네' 전자 기기, 옷, 신발, 자동차 등등 이거 저거 할 것 없이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이런 식으로 궁금증을 해소하고 마음속에서 치워버렸다.
예전에는 정말 아주 비싼 독일제 자동차를 사고 싶었다. 로망이었다. 그런데 이 자동차도 10번, 100번, 500번쯤 리뷰 영상을 보고 나니까, 사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몇 만 킬로 타 본 것처럼 머릿속에선 이미 Owner-driver 였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내가 속한 업계는 코로나 이후로 대부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니, 정말 집에만 있게 되었다. 밖을 아예 안 나갔다. 커피도 집에서 내려 마셨다. 밖에 나갈 일이 없다 보니, 계절마다 하나 정도는 샀던 티셔츠조차 사지 않게 되었다.
물욕이 사라졌다.
기쁘지 아니한가, 더 이상 헛 돈도 안 쓰고, 알뜰살뜰하게 착실히 모으기만 하면 된다. 필요한 건 이미 다 있다. 웬만한 건 가져봤었고, 다 거기서 거기다. 가져본들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거나, 물건을 산 기쁨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나 이런 기쁨도 3년쯤 지난, 지금은 더 이상 기쁘지가 않다.
- 금쪽상담소(중), 김준수 편
TV를 보다가 나랑 너무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김준수 편을 보게 되었다. 물론 내가 김준수만큼 벌어 본 것도 아니고, 써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고민의 깊이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고민의 종류는 분명히 같았다.
- 금쪽상담소(중), 김준수 편
물욕이라는 나쁜 녀석이, 욕심과 열정이라는 좋은 녀석들까지 함께 데리고 갔다.
의욕이 사라졌다.
'한 달 쉬기를 결심한 이유'는 번아웃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번아웃 때문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물욕이 사라진 반대급부로 욕심과 열정이 사라진 것도 맞다.
그렇다고 다시 물욕이 넘쳤으면 좋겠다는 것은 아니다.
욕심과 열정이 사라진 이유가 트리거가 되어, 삶의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 인생이 재미있지도 않아..
최근에 많이 무너져 내렸다.
몸과 마음이 부서지고, 깨졌다. 그래서 많이 다쳤다. 쉬고 싶었다.
'물욕이 왜 없어졌을까'를 천천히 상기시키다 보니, 이야기가 길었다. 적당한 욕구는 채워 주는 게 맞다. 너무 욕구를 채우지 않으면 욕구불만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렇기에 과하지 않는 선에서 욕망과 현실을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뭐든 균형이 중요하다.
종종, 새 칫솔로 이를 닦을 때, 그렇게 기분이 산뜻할 수가 없고 전환 됨을 느낄때가 있다.
그래서, 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달 쉬기'를 앞두고 확실한 기분 전환을 목적으로 4년 동안 썼던 휴대폰을 을 바꿨다. 한동안 바꾸지 않은터라 새 휴대폰이 마냥 좋았다. 보호 필름을 덜덜 떨면서 붙이다가, '다시 붙일까?' 고민했었던 기억도 났다. 새로운 기능들과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도 찍어봤다.
이렇게 스스로를 기쁘게 해 줬다. 실로 오랜만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우울했나봐...
그래도, 난 전보다 아주 많이 변하긴 했다...